졸정원
졸정원 소개
전형적인 강남의 정원양식을 보여주는 졸정원은 강소성 소주시에 위치한 정원이다.
명조 정덕 4년에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북경의 이화원,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과 함께 중국 4대 명원이다. 또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국가 5A급 여행 구역으로, “중국 원림의 어머니”라고 칭송 받는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본래 졸정원 부지는 삼국시대에는 손권의 어머니가 살았고 당나라 때는 시인 육구몽의 원림이었다고 한다. 그 리고 원나라 때에는, 대광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원말에 훼손되었다.
명 정덕 4년, 어사 왕헌신이 관직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흥사 자리에 원을 조성하고 진대의 반악이 지은 ‘한거부’ 중에서 “정원에 물을 대고 팥과 채소를 심어 조석으로 반찬을 삼으면 이 또한 쓸모없는 사람의 정사가 아니런가?”라는 구절을 따서 졸정원이라 불렀다.
왕헌신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도박을 하여 하루 밤에 집을 잃었고 정원은 황폐해졌다. 명 숭정 4년, 시랑 왕심일이 다시 복원하여 “귀전원거”라고 부르고 직향관, 부용사, 난설당 등등을 지었다.
졸정원 역사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다시 관청이나 학교로 이용되기도 하다가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보수공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졸정원은 ‘중국 정원의 자존심’이라고도 한다.
컨셉트는 물이다. 소주가 물의 도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건물을 물가에 지어서 건물이 물에 비치는 풍경까지도 같이 감상하란 의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뒤에 멀리 보이는 탑을 경치 안으로 끌어들여 탑이 있는 곳까지 자신의 정원으로 느끼게 하는 차경(빌려온 경치)이다. 무엇이든 크게 보이려는 중국인들의 과장된 정서가 여기서도 보인다.
물 위엔 다리가 있는데, 굴곡지게 표현하였다. 대평원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똑바른 길로 다니다 보니 정원만큼은 멋을 가미하여 구부려 표현하였다.
정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자는 밖의 경관을 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나, 중국의 정자는 보여지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지붕도 밖으로 한껏 꺾어서 표현을 했다.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문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보름달 모양의 동그란 문, 월창을 내서 아름답게 보이고자 했다.
졸정원 고사
충왕 이수성이 군대를 이끌고 소주로 진격할 때 공무를 처리하기 위한 곳을 찾아보던 중 추천으로 졸정원에 도착했다. 들어서서 정자 누각과 회랑을 보니 그윽하고 품위가 있어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자는 너무 작았고 대청은 너무 컸다. 물가의 정자는 아름다웠지만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충옥을 봤는데, 연못 중앙 가산 옆에 지어졌다. 비록 층옥이지만 위 아래층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창을 밀어보니 산과 물이 단번에 뛰어난 설계자와 장인에 의해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수성은 이 지역의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살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에 기상한 후, 창문을 여니 사방이 멀리 다 보여 먼 산과 가까운 물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날, 정원 북쪽에서 노인이 일어나 풀을 베다가 허리를 피고 싶어 고개를 들다가 졸정원 내를 보니 황색비단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이가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매우 이상히 생각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들으니, 그제야 황색비단을 두르고 있던 이가 바로 충왕 이수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