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주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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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주제 연구 발표


김지향



처음말

중국에서 식당에 가면 생수는 돈으로 사야하는데 차는 공짜이고 더워죽겠는 여름인데 뜨거운 차를 주고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또 많은 중국 사람들이 차컵을 들고 다시면서 수시로 마시죠. 이처럼 중국에서 차는 일상적이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굉장히 큰 문화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차 하나를 가지고도 중국 곳곳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이러한 차의 기원과 종류에 대해 최대한 간단히 말씀을 드린 다음 셀 수 없이 많은 차 중에 제가 한 학기 동안 다루었던 보이차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차의 기원

차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중국에서는 차 문화의 시작이 중원이라고 하여 신농씨가 처음 발견하고 마셨다고 하지만 사실은 중원의 황실과 남쪽 변경의 소수민족, 외래 종교인 불교가 만나 형성된 즉 다양한 문화교류의 산물입니다.

차의 종류

차의 종류입니다. 차는 크게 6가지로 나뉘는데, 백차, 황차, 녹차, 청차, 홍차, 흑차 이렇게 색깔로 구분을 합니다. 세세하게 들어간다면 제조법에도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발효도입니다. 위의 3차는 전혀 발효를 하지 않았거나 약하게 발효를 한 것이고 밑의 차들은 발효도가 강한 차입니다. 발효는 보통 볶거나 건조시키면 멈추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녹차는 바로 볶아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것이고, 청차는 오룡차라고도 하는데 반발효를 한다음 볶은 것입니다. 향긋면서도 달콤 씁쓸한 맛이 나는 아주 매력적인 차죠. 홍차는 완전 발효차로 아시다시피 독특한 향과 맛이 납니다. 특히 전홍차라고 운남의 홍차인데, 한 번 마셔보고 정말 반했어요. 꼭 마셔보시길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흑차는 좀 특이합니다. 볶거나 건조를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발효를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후발효차라고 하는데 바로 보이차가 이 흑차에 속합니다. 이제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보이차

현재 보이차

보이차를 마셔본 분 계시나요? 보이차는 운남 지역의 차죠! 운남은 아시다시피 가장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고 사시사철이 봄으로 경치가 빼어나 좋은 여행지기도 합니다! 제가 보이차를 처음 접한건 고등학교 때 중국으로 단체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여행사에서 차가게를 데리고 갔는데 역시나 상품설명회를 시작했고, 특히 보이차에 대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였습니다. 동맹경화, 피부미용, 암예방, 다이어트 등등에도 좋을 뿐 아니라 와인처럼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는 겁니다. 심지어 자기네 차는 10년이 된 것이니 어서 빨리 사라는 거죠. 그 때 혹해서 너무 사고 싶었는데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못 샀습니다. 그게 가짜가 아니었다면 샀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보다 보이차의 가격이 몇 배로 뛰었거든요. 실제로 1920년대 보이차는 2-3천만원, 1910년대는 2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투기용이나 뇌물로도 많이 쓴다고 하죠.

과거 보이차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며 고급차로 여겨지는 보이차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 크게 주목받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흑차는 예로부터 저 변방의 오랑캐들이 마시는 보잘 것 없는 차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흑차가 생산되고 유통된 운남과 사천 티베트가 중국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도 되겠죠.
운남은 따리 라는 독자적인 국가였고 사천서부는 티베트 지역이었습니다. 사천동부도 중원에 일찍이 편입되었지만 변방의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산이 풍부하기도 했고 차의 기원지이도 합니다. 반면 티베트와 북쪽의 유목민족들의 지역은 매우 척박한 땅으로 채소가 잘 나지 않은 지역입니다. 문제는 티베트 사람들이 주로 야크고기와 젖을 먹고 사는데 야크가 동맥경화를 일으켜서 일찍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비타민과 채소 공급은 너무나 절실했지만 또 너무나 어려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 운남과 사천에서 나는 차가 채소를 유일하게 공급받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티베트의 차에 대한 절실한 수요가 해발 5000미터의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는 차마고도라는 길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선 수천km에 달하는 국제무역로이기도 합니다. 이 차마고도에서 차가 습기를 먹어 발효되어 흑차가 되었고 티베트 사람들에게 생명이 됩니다. 그리고 차마고도의 길은 운남에서 시작하는 전장고도와 사천에서 시작하는 천장고도로 크게 나뉩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운남은 좀 더 사무역적인 성격을 띠였습니다. 운남의 수많은 소수민족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를 재배하고 만들고 독자적인 차조를 섬기기도 하며 차제례를 드리기도 합니다. 특히 서쌍판납의 지역은 운남의 주요 차 생산지였고, 바로 보이차의 원생산지이기도 하죠.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마방을 통해 티베트로 갑니다. 마방은 차 뿐만 아니라 여러 교역 물품들을 싣고 가는 차마고도 상의 독특한 운송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험준한 산과 고개를 넘어 큰 이익을 남겼습니다. 마방은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되었고, 195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물품이 바로 마방을 통해 교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차마고도를 지나는 마방 사진이구요. 밑의 사진은 운남의 누강인데, 난창강, 금사강과 함께 물살이 너무 쎄서 배로 건널 수 없는 강이었습니다. 다리를 놓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줄 하나로 건너가기도 합니다. 동영상을 통해 그 모습을 잠깐 보겠습니다.
반면 사천 특히 아안에서는 중원의 황실의 엄격한 관리 아래 공무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북방유목민족들의 기마에 대항하기 위해 티베트의 건장한 말을 차로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차는 점차 티베트지역의 장족들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도 발전이 됩니다. 티베트들에게 차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차를 대량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중원과 사이좋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중원의 황실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차의 가격은 올라가고 말의 가격은 자꾸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몽골과 티베트 연합을 저지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흑차는 서북부 유목민족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때문에 차와 말의 무역을 담당했던 기관인 차마사도 있었고 명나라때는 차를 밀매시키는 자는 사형에 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명황제의 처형도 사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천과 운남에서 제공받은 흑차는 야크젖으로 만든 수유와 만나 수유차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유목민족들도 말젖, 양젖과 섞어 마셨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밀크티 나이차의 원조입니다.
결국 흑차는 서남지역을 잇는 매게체였고, 중원에서는 서남지역을 통치하는 중요한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중원에서 흑차를 마시는 일 소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소비하였나? 바로 역시나 유목민족인 만주족청나라를 세우면서부터입니다. 서남지역에는 각각의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는데 그들을 토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운남 특히 서쌍판납의 토사들은 거의 중원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돈줄이 역시나 차였습니다. 바로 청이 그들의 가장 핵심적 경제권인 차의 생산지와 매매권을 빼앗아버립니다. 그렇게 운남의 서쌍판납과 보이를 지배하고 그곳에서 나는 최상급의 차를 공차로 받치라고 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차의 원류인 보이공차입니다.

맺음말

이처럼 보이차의 형성은 운남이라는 지역이 중국이라는 곳에 편입되는 과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드디어 한족들이 보이차를 마시면서 운남 소수민족의 차 생산방식이 변화되고 또 그로 인해 생활방식이 변한다는 것도 재밌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차는 단순한 음료 차원을 넘어 많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흑차나 보이차 뿐만 아니라 청차, 홍차, 녹차 등등에도 중국의 지역을 이해하는 정말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중국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아편전쟁도 차로 인해 발발하게 되죠. 어쨌든 중국에 대해서 배우고 우리가 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