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후베이성[湖北省]을 중심으로 활약한 나라로, 시조는 제(帝) 전욱(顓頊)의 자손 계련(季連). 웅역(熊繹) 때에 주나라의 성왕(成王)으로부터 초의 제후로 봉해져, 단양(丹陽)에 정착한 뒤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 초나라 백성은 중원제국(中原諸國)의 백성과는 종족을 달리하는 남방의 만이(蠻夷:荊蠻)로 불려 멸시를 받았다. BC 704년 웅통(熊通)은 스스로 무왕(武王)이라 칭하였는데, 아들 문왕(文王)이 영(郢)으로 천도한 뒤, 더욱 국세가 신장하였다.
특히 장왕(莊王)은 BC 597년 진(晉)나라 군대를 필(邲:河南省 鄭縣)에서 격파하여 결국 중원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이로부터 초는 진나라와 남북으로 대립하여 약 1세기에 걸쳐 싸움을 계속하였는데, 그 사이에 양쯔강[揚子江] 하류에서 오(吳) ·월(越)이 일어나자 한때 초나라의 소왕(昭王)은 오나라에 밀려 도읍을 약(鄀)으로 옮겼다. 그 후 오나라가 월나라에 망하고, 또 월나라가 쇠퇴해지자 초는 다시 세력을 회복,양쯔강 중 ·하류를 모두 차지하는 강국으로서 전국칠웅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위왕(威王)은 BC 334년 월나라를 멸하고 저장성[浙江省] 서쪽의 땅을 차지하였는데, 다시 제(齊)나라 군사를 격파하여 세력을 중원으로 뻗치는 동시에, 영토를 사방으로 확대하였다. 이 무렵에 초는 7웅 가운데서 영토가 가장 컸을 뿐만 아니라 인구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점차 진(秦)의 압박을 받아 BC 278년 수도 영이 함락되자 진(陳)으로 천도하였고, 다시 BC 241년 수춘(壽春:安徽省 壽縣)으로 옮겼으나 BC 223년 결국 진에게 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