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원문화사전 소개
이 사전은 2012년 1학기와 2013년 2학기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3학년 <문화로 읽는 중국문자> 수업의 최종 결과물이다. 우리는 수업에서 중국문자 즉 漢字를 단순한 표기의 수단이라는 기능의 차원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노력했다. 특히 漢字는 인류가 사용해 온 문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일한 형태와 기능이 지속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가치는 실로 무궁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라는 문자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찾기 전에 우리는 먼저 보편적인 문자가 가지고 있는 위상에 주목하였다. 문자 이전 시기의 인류는 기록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주로 청각적 기억에 의존하였고 이를 통해 감각적이고 다소 즉흥적인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문자의 탄생으로 인류는 시간 속에 사라져버렸던 언어를 공간에 기록함으로서 線적인 인과관계에 근거한 논리적 일관성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패턴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문자는 단순한 기록의 수단에 그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갑골문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문자의 사용으로 인해 구술적 단계로부터 본격적인 문자 문화적 단계로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秦의 書同文 이전 시기까지 漢字는 甲骨文에서 시작되어 金文 그리고 六國의 古文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의 문화권에서 그 형태와 기능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였다. 다양성이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秦의 문자 통일은 주로 그 형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단 字形이 공인되자 이제는 문자의 의미에 대한 정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때 등장한 <說文解字> 는 그 이전 1500년 동안의 한자의 기원과 변화를 토대로 의미의 통일이라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였다. 그리고 <설문해자> 는 그 이후 약 2000년 동안 한자의 형태와 의미의 중심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수업 시간 전반부에 이러한 보편적인 문자의 가치에서부터 중국에서의 문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설문해자>를 통한 한자의 형태와 의미의 통일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러한 사전 학습을 토대로 수업 후반부에서는 하나하나의 한자에 담겨있는 문화적 가치를 미시적으로 탐구하였고 그 결과를 이 사전으로 종합해 낸 것이다. 우리는 먼저 谢光辉의 《常用汉字图解》를 주요 텍스트로 정하고 이 책의 순서에 맞추어 각자 15개의 한자를 선택하여 그 어원과 문화적 함의를 고찰하였다. 어원 부분에서는 熊国英의 《图释古汉字》를 보조 자료로 선정하여 내용을 보충하였고, 문화 해설 부분은 세실리아 링크비스트의 《한자왕국》,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의 《한자의 세계》, 아츠지 데츠지의 《한자의 역사》등 수십 권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그리고 篆書 이후의 字形의 예술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인터넷 중국고대문자 검색 사이트 漢典書法(http://sf.zdic.net)을 뒤져 역대 서예 명가들의 친필 글자들을 集字하여 여기에 수록하였다.
이 사전의 발간은 한자 어원에 대한 많은 사이비 학설이 난무하는 시대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자의 보편적 가치는 물론 중국 고유의 한자의 발생과 발전과정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한자의 어원에 대한 이런 조잡한 이야기들은 자격증 시험을 위해 속성으로 한자를 외우기 위해 고안해낸 것으로 현대인의 조급증의 산물일 뿐이다. 이런 해석에는 그 문자를 사용했던 고대인의 숨결은 물론 그 문자를 사용하여 수 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동아시아 사회의 문명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러분은 이 <漢字語源文化辭典>에 담긴 한 글자 한 글자의 어원과 의미의 변화과정 그리고 글자와 관련된 문화적 설명을 통해 漢字가 가지고 있는 문자의 매력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전의 기획에서 발간까지의 모든 과정은 수강생들의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