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복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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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을 타면서 활을 쏜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중반의 제후국 가운데 (趙)나라의 무령왕이 오랑캐의 방식을 수용하여 전술을 다져 강국이 되었던 사실에서 유래하였다.

중원에서 활동하던 중국인들은 중화주의에 빠져, 변방의 오랑캐를 줄곧 폄하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기원전 307년 조나라의 조정은 의상의 단추를 기존의 전통대로 아래쪽 중간에 달 것인지, 아니면 왼쪽에 달 것인지를 두고 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단추의 방향이라니,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이는 주제였지만, 왼쪽에 단추를 다는 유목민들의 복장은 활쏘기에 훨씬 편리했다. 단추뿐만 아니라, 중원의 전통의상에 비해 옷소매가 가볍고, 나풀나풀한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음으로써 가볍게 말을 달릴 수 있었다.

또한 유목민들이 말을 탈 때 사용하던 등자는 몸의 균형을 잡기에 용이하여, 말을 탄 채 허리를 뒤로 돌려 활을 쏠 수 있었다. 무령왕은 오랑캐의 이러한 실용성을 모방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왕의 숙부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자들을 분개시키고 중원 왕국의 일보가 되기를 포기하고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하시기를 권합니다.”

결국 무령왕과 뜻을 같이 하는 실용주의자들의 의견을 따라, 유목민들의 복장과 기병술을 수용하여 조나라는 강대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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