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紅燈)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화 <홍등(紅燈)> -1920년, 격동의 중국을 보다
<사진 1> 송련의 거처에 홍등이 걸린 장면, <사진 2> 미쳐버린 송련의 모습

1920년대 중국, 여성의 지위는 전적으로 남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결혼 전에 속했던 친정의 지위는 결혼 하는 순간 의미를 잃었으며 오직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 그리고 집안 내에서의 서열이 그녀의 지위를 재정립했다. 영화 <홍등>의 주인공 송련은 계모에 의해 대학을 중퇴하고 진씨 가문의 네 번째 부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남편인 진씨의 총애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의 사랑을 받아 동침한 부인은 거처에 홍등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의 식단을 결정할 수 있고 전속 시녀의 발마사지를 받는 등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이는 곧 그녀의 입지가 된다. 송련 또한 부인들 간의 알력 다툼 속에서 이런 체제를 점점 순응해간다. <사진 1>은 송련의 거처에 홍등이 걸린 장면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송련의 신분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니며 교육을 받던 여성으로 봉건주의적 세계관 속의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 봉건적 사회구조의 축소판과도 같은 진씨 가문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속에서 적응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남편의 총애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권력은 고작해야 식단 결정, 자식 생산, 마사지와 같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 속의 부인들은 그 작은 권력이나마 누리기 위해 그 속의 질서를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대학 교육의 흔적은 그녀가 이러한 구조 속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로서 기능한다. 이 때문에 그 안에서의 그녀의 삶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말에 이르러 <사진 2>와 같이 송련은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진씨 가문의 절대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남편을 거부하고 다른 이와의 사랑을 꿈꾸던 셋째 부인이 자신의 말실수에 의해 살해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미쳐버린 그녀의 모습은 1920년대, 이념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옮겨놓은 듯하다. 즉, 자신의 이상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려 했으나 그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광기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갈피를 잡지 못했던 사회의 혼란을 영화 속에 옮겨 놓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