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분자
5·16분자는 처음에 1967년 8월 초 베이징의 강철학원의 급진 조반파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저우언라이 총리를 공격하는 대자보를 붙인 '5·16 병단'의 극소수 학생들에 해당하는 명칭이었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사전에 중앙문혁소조에 보고까지 된 바 있었지만, 심각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후의 문혁 시기에 점점 더 운동 속에 잠입한 반동분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대되어, 1970년대에는 '5·16 전안조(專案組)'까지 결성되었고, '왕·관·치(왕리, 관펑, 치번위)'의 실각에서 '양·위·푸(양청우, 위리진, 푸충비)'의 실각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천보다와 린뱌오의 실각에 이르기까지, 실각한 중앙정치 무대의 핵심인물들조차 '5·16 분자'의 배후로 규정될 만큼 그 범위가 끝없이 확대되었다. 장칭의 '9·5 연설'은 '5·16 병단'으로 대표되는 '극좌파'의 범위를 당중앙, 군대, 혁명위원회에 반대하는 자들로 확대한다는 '세 가지 지향점'을 이미 담고 있었다.
참고자료
백승욱,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중앙문혁소조장 천보다와 조반의 시대』, 그린비, 2012, p.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