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알찬 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
===섬서성===
 +
[[파일:섬서성 지도.jpg|100픽셀|오른쪽]]
 +
'''[[섬서성]]'''은 간단하게 "섬(陝)"혹은 "진(秦)"으로 불리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급 행정단위 중 하나이다. 성회는 고도인 서안이다. 지리는 경도 105°29′~111°15′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북위 31°42′~39°35′이다. 자연적인 구획은 진령산맥과  회화 라인의 위쪽에 있으며, 북방과 남방을 가로지른다. 서북내륙내지에 위치하며 황하와 장강 두 흐름의 중부를 가로지르며 중국 동쪽에 연결되어 있고, 중부지구와 서북지구, 서남지구가 중심지이다. <br>
 +
섬서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며 중화문명의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이다. 상고시대에 옹주, 양주가 위치했으며, 염제  신농씨와 황제의 매장지 이기도 하다. 서주초기 주나라 성왕은 섬원(고대지명)을 경계로 삼고  서쪽부터 소공에게 관할하게 하였다. 후에, 사람들은 섬원의 서쪽을 섬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섬서는 자고로 제왕이 수도를 세웠던 곳이고 9개의 통일 왕조 주 5개의 황조가 서안을 수도로 삼았다. 남아있는 제왕의 능묘는 총 79개이며 이를 동방의 금자탑이라 부른다.
 +
<br>>
 +
'''[[섬서성|자세히 읽기...]]'''
 +
 
===커커시리===
 
===커커시리===
[[파일:커커시리포스터.jpg|100픽셀|왼쪽]]
+
[[파일:커커시리포스터.jpg|100픽셀|오른쪽]]
 
중국 6세대 영화 감독 [[루추안]]의 영화 커커시리는 장어(티베트어,藏语)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이는 중국 칭하이성 쿤룬산과 탕구라산 사이의 있는 고원 분지를 가리키는 말로,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br>
 
중국 6세대 영화 감독 [[루추안]]의 영화 커커시리는 장어(티베트어,藏语)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이는 중국 칭하이성 쿤룬산과 탕구라산 사이의 있는 고원 분지를 가리키는 말로,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br>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br>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br>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br>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br>
6번째 줄: 13번째 줄:
  
 
===중국의 화폐===
 
===중국의 화폐===
[[파일:공수포.jpg|100픽셀|왼쪽]]
+
[[파일:공수포.jpg|100픽셀|오른쪽]]
 
동양에서 화폐가 사용된 기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의하면 중국에서 최초로 화폐가 사용된 것은 전설상의 삼황(三皇) 중 한명인 신농(神農)으로 그는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장터를 만들고, 물물교환을 편하게 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지만 전설이 아닌 역사에서 화폐의 정확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려운데, 확실한 것은 적어도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한 경제가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br>
 
동양에서 화폐가 사용된 기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의하면 중국에서 최초로 화폐가 사용된 것은 전설상의 삼황(三皇) 중 한명인 신농(神農)으로 그는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장터를 만들고, 물물교환을 편하게 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지만 전설이 아닌 역사에서 화폐의 정확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려운데, 확실한 것은 적어도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한 경제가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br>
 
[[춘추]][[전국]]시대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 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경영'의 인식이 최초로 나왔던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의 시대로“그들이 밟지 않은 사유의 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평할 정도로 넓고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 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경영'의 인식이 최초로 나왔던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의 시대로“그들이 밟지 않은 사유의 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평할 정도로 넓고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14번째 줄: 21번째 줄:
  
 
===갑골문===
 
===갑골문===
[[파일:갑골문.jpg|100픽셀|왼쪽]]
+
[[파일:갑골문.jpg|100픽셀|오른쪽]]
 
[[갑골문]](甲骨文)은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 상나라(B.C.1600~B.C.1046)후기 은허(殷墟) 시기에 사용됐던 문자로서 한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이다. 갑(甲)은 거북의 뼈를 의미하고 골(骨)은 짐승의 뼈를 의미한다. 여기에 새겨진 문자를 갑골문이라고 한다.
 
[[갑골문]](甲骨文)은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 상나라(B.C.1600~B.C.1046)후기 은허(殷墟) 시기에 사용됐던 문자로서 한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이다. 갑(甲)은 거북의 뼈를 의미하고 골(骨)은 짐승의 뼈를 의미한다. 여기에 새겨진 문자를 갑골문이라고 한다.
 
<br>
 
<br>
 
'''[[갑골문|자세히 읽기...]]'''
 
'''[[갑골문|자세히 읽기...]]'''

2017년 4월 10일 (월) 15:51 판

섬서성

섬서성 지도.jpg

섬서성은 간단하게 "섬(陝)"혹은 "진(秦)"으로 불리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급 행정단위 중 하나이다. 성회는 고도인 서안이다. 지리는 경도 105°29′~111°15′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북위 31°42′~39°35′이다. 자연적인 구획은 진령산맥과 회화 라인의 위쪽에 있으며, 북방과 남방을 가로지른다. 서북내륙내지에 위치하며 황하와 장강 두 흐름의 중부를 가로지르며 중국 동쪽에 연결되어 있고, 중부지구와 서북지구, 서남지구가 중심지이다.
섬서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며 중화문명의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이다. 상고시대에 옹주, 양주가 위치했으며, 염제 신농씨와 황제의 매장지 이기도 하다. 서주초기 주나라 성왕은 섬원(고대지명)을 경계로 삼고 서쪽부터 소공에게 관할하게 하였다. 후에, 사람들은 섬원의 서쪽을 섬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섬서는 자고로 제왕이 수도를 세웠던 곳이고 9개의 통일 왕조 주 5개의 황조가 서안을 수도로 삼았다. 남아있는 제왕의 능묘는 총 79개이며 이를 동방의 금자탑이라 부른다.
> 자세히 읽기...

커커시리

커커시리포스터.jpg

중국 6세대 영화 감독 루추안의 영화 커커시리는 장어(티베트어,藏语)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이는 중국 칭하이성 쿤룬산과 탕구라산 사이의 있는 고원 분지를 가리키는 말로,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
자세히 읽기...

중국의 화폐

공수포.jpg

동양에서 화폐가 사용된 기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는 어려운 문제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의하면 중국에서 최초로 화폐가 사용된 것은 전설상의 삼황(三皇) 중 한명인 신농(神農)으로 그는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장터를 만들고, 물물교환을 편하게 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지만 전설이 아닌 역사에서 화폐의 정확한 기원을 찾는 것은 어려운데, 확실한 것은 적어도 춘추전국시대부터 화폐를 사용한 경제가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 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경영'의 인식이 최초로 나왔던 제자백가백가쟁명의 시대로“그들이 밟지 않은 사유의 땅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평할 정도로 넓고 깊은 사유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중국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의 한 갈래로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즉, 현대적 의미에서의 경제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화폐는 중요한 통치수단으로 국가가 관리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자세히 읽기...

갑골문

갑골문.jpg

갑골문(甲骨文)은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 상나라(B.C.1600~B.C.1046)후기 은허(殷墟) 시기에 사용됐던 문자로서 한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약칭이다. 갑(甲)은 거북의 뼈를 의미하고 골(骨)은 짐승의 뼈를 의미한다. 여기에 새겨진 문자를 갑골문이라고 한다.
자세히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