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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은 물고기와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무는 형용 기호이며 나무와 같이 되살아난 물고기의 모양을 빌려온 것이다. 소전체에서는 나무를 다시 벼(禾)로 만들었고, 그 뒤에는 풀이 더해져 벼, 풀 그리고 나무를 통해 되살아난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현재 穌는 蘇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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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은 물고기와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무는 형용 기호로서 나무처럼 되살아나는 물고기라는 의미를 표현한다. 소전체에서는 나무를 다시 벼(禾)로 만들었고, 그 뒤에는 풀이 더해져 벼, 풀 그리고 나무를 통해 되살아난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현재 穌는 蘇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文化==
 
==文化==
한파의 기습 때문에, 많은 지역의 강이 얼고 하루 밤이 지날 때 마다 많은 물고기들이 얼어 죽었다. 그 당시의 주민들은 서로 모여 마치 작물들을 수확하는 것 처럼 언 물고기들을 갈퀴로 긁어모았는데, 아직 얼지 않은 물고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穌에서는 되살아나다, 부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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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의 기습 때문에, 많은 지역의 강이 얼고 하루 밤이 지날 때 마다 많은 물고기들이 얼어 죽었다. 그 당시의 주민들은 서로 모여 마치 작물들을 수확하는 것처럼 언 물고기들을 갈퀴로 긁어모았는데, 아직 얼지 않은 물고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穌에서는 되살아나다, 부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br />
『운회』에서는 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중국의 기독교에서 구세주인 예수의 이름은 耶稣라고 번역되었고, 이는 그가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고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벼는 한번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가능하고, 다시 말해 시들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물은 출산하더라도 오히려 되살아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2012년 국제어업박람회에서, 한달간 얼었던 붕어가 다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과학기술이 개발되었다.
 
  
[[허신]]은 穌이 손으로 벼를 잡고있는 보습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언 물고기들을 긁어모으는 것이 갈퀴로 벼를 긁어모으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정작 그 단계를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ref> 廖文豪, 『汉字树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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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회』에서는 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중국의 기독교에서 구세주인 예수의 이름은 耶稣라고 번역되었고, 이는 그가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고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벼는 한번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가능하고, 다시 말해 시들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물은 출산하더라도 오히려 되살아나는 것이 어렵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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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은 穌가 손으로 벼를 잡고있는 모습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언 물고기들을 긁어모으는 것이 갈퀴로 벼를 긁어모으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정작 그 단계를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ref> 廖文豪, 『汉字树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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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017년 12월 27일 (수) 14:37 기준 최신판

語源

깨어날 소.png

금문은 물고기와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무는 형용 기호로서 나무처럼 되살아나는 물고기라는 의미를 표현한다. 소전체에서는 나무를 다시 벼(禾)로 만들었고, 그 뒤에는 풀이 더해져 벼, 풀 그리고 나무를 통해 되살아난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현재 穌는 蘇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文化

한파의 기습 때문에, 많은 지역의 강이 얼고 하루 밤이 지날 때 마다 많은 물고기들이 얼어 죽었다. 그 당시의 주민들은 서로 모여 마치 작물들을 수확하는 것처럼 언 물고기들을 갈퀴로 긁어모았는데, 아직 얼지 않은 물고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穌에서는 되살아나다, 부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운회』에서는 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였다. 중국의 기독교에서 구세주인 예수의 이름은 耶稣라고 번역되었고, 이는 그가 죽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고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벼는 한번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가능하고, 다시 말해 시들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동물은 출산하더라도 오히려 되살아나는 것이 어렵다.

허신은 穌가 손으로 벼를 잡고있는 모습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언 물고기들을 긁어모으는 것이 갈퀴로 벼를 긁어모으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말한 사람들도 정작 그 단계를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1]

주석

  1. 廖文豪, 『汉字树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