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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臣之論:有態臣者,有篡臣者,有功臣者,有聖臣者。(중략) 內足使以一民,外足使以距難,民親之,士信之,上忠乎君,下愛百姓而不倦,是功臣者也。(중략) 故用聖臣者王,用功臣者彊,用篡臣者危,用態臣者亡。態臣用則必死,篡臣用則必危,功臣用則必榮,聖臣用則必尊。(중략) 齊之管仲,晉之咎犯,楚之孫叔敖,可謂功臣矣。 | 人臣之論:有態臣者,有篡臣者,有功臣者,有聖臣者。(중략) 內足使以一民,外足使以距難,民親之,士信之,上忠乎君,下愛百姓而不倦,是功臣者也。(중략) 故用聖臣者王,用功臣者彊,用篡臣者危,用態臣者亡。態臣用則必死,篡臣用則必危,功臣用則必榮,聖臣用則必尊。(중략) 齊之管仲,晉之咎犯,楚之孫叔敖,可謂功臣矣。 | ||
− | ⟨요문⟩편에서는 | + | ⟨요문⟩편에서는 선대 정치인들의 일화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손숙도의 일화도 있다. |
증나라의 국경을 관장하는 봉인이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뵙고 말했다. "제가 듣건대, 벼슬에 오래 있는 사람은 (다른) 관리들이 그를 시기하고,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임금이 그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재상께서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고 있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 증나라의 국경을 관장하는 봉인이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뵙고 말했다. "제가 듣건대, 벼슬에 오래 있는 사람은 (다른) 관리들이 그를 시기하고,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임금이 그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재상께서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고 있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 ||
손숙오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 번 초나라에서 재상노릇을 함에 마음은 더욱 낮추었고, 매번 녹이 늘어나면 더욱 베풀었으며, 지위가 높아지면 예로써 더욱 공경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 손숙오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 번 초나라에서 재상노릇을 함에 마음은 더욱 낮추었고, 매번 녹이 늘어나면 더욱 베풀었으며, 지위가 높아지면 예로써 더욱 공경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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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가 강조하는 정치인의 덕목은 높은 자리에 있어도 겸손하며, 받은 녹봉은 백성에게 베풀고, 임금을 공경하는 인물인 것이다. | ||
원문 | 원문 |
2019년 6월 11일 (화) 17:51 판
손숙오(孫叔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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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B.C 630(추정) |
사망 |
B.C 593(추정) |
생존시기 | 춘추시대 |
목차
개요
춘추 시대 초나라의 명재상. 위가(蔿賈)의 아들이며, 위오(蔿敖), 위애렵(蔿艾獵)이라고도 불렸다. B.C.530년에 태어나 B.C.593년에 사망했다. 춘추 5패의 한 사람인 초장왕을 보좌했다.
2 생애
재상이 되기 전
손숙오는 원래 초나라에서 은둔하는 재야의 선비였으나 당시 재상이었던 우구(虞丘)가 초장왕에게 그를 추천했다. 우구는 손숙오에게 재상의 일을 대신하게 했으며, 이후 손숙오는 석 달만에 재상의 자리에 앉게 된다.
다스리지 않아도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未治而國人信之)
손숙오는 재상으로써 "(그가) 다스리지 않아도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未治而國人信之)"[1]고 평가될 정도로 훌륭한 정치를 펼쳤다. 실제로 관리와 백성의 사이가 화목하고, 풍속이 순박해질 정도였다. 가벼운 정치로 백성들은 금지 사항을 반드시 지켰고, 관리들은 그를 속이지 않았으며, 도적떼가 나타나지 않았다. 백성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잘못된 화폐 제도를 바로잡다
낮은 수레
관련인물
초장왕
손숙오 모(母)
사상가들이 본 손숙오
유가
맹자
『맹자』의 ⟨고자 下⟩에서는 손숙오에 대해 순임금, 부열, 교격, 관중(관이오), 백리해의 훌륭한 정치인들과 나란히하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하늘이 점지한 인물들로, 하늘은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먼저 고생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孟子曰:「舜發於畎畝之中,傅說舉於版築之閒,膠鬲舉於魚鹽之中,管夷吾舉於士,孫叔敖舉於海,百里奚舉於市。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為,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人恒過,然後能改;困於心,衡於慮,而後作;徵於色,發於聲,而後喻。入則無法家拂士,出則無敵國外患者,國恒亡。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맹자』의 ⟨고자 下⟩ 中
순자
『순자』에서는 ⟨비상⟩편, ⟨거도⟩편, ⟨요문⟩편에서 손숙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비상⟩편에서는 손숙오에 대해 '기사(期思)라는 고을의 촌사람으로, 튀어나온 대머리에다 왼 팔이 길었으나, 수레에 기대앉은 채로 초나라의 패업을 이룩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비상⟩편의 구절은 선대의 훌륭한 정치인들의 외모는 각기 달랐고, 손숙오처럼 기이한 형상을 띠는 자도 있었으니,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품고 있는 뜻이 중요한' 것이다.(故事不揣長,不揳大,不權輕重,亦將志乎爾) 위 구절을 통해 손숙오의 외모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蓋帝堯長,帝舜短;文王長,周公短;仲尼長,子弓短。昔者衛靈公有臣曰公孫呂,身長七尺,面長三尺,焉廣三寸,鼻目耳具,而名動天下。楚之孫叔敖,期思之鄙人也,突禿長左,軒較之下,而以楚霸。(중략) 故事不揣長,不揳大,不權輕重,亦將志乎爾。長短大小,美惡形相,豈論也哉!
⟨거도⟩편에서는 선대의 정치가들을 태신, 찬신, 공신, 성신으로 나누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태신과 찬신은 간신 무리를, 공신과 성신을 충신이자 나라를 평안하게 안 명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순자는 손숙오를 공신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공신은 '안으로는 족히 백성을 하나가 되게하고, 박으로는 족히 환난을 막게해주며, 백성들이 그와 친하고, 선비들이 그를 믿고, 위로는 임금에게 충성스러우며, 아래로는 백성을 사랑하고 게으르지 않은' 자이며, '공신을 등용하는 자는 (세상의) 강자가 되며' '반드시 영화로워지는' 것이다. 순자는 손숙오를 고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人臣之論:有態臣者,有篡臣者,有功臣者,有聖臣者。(중략) 內足使以一民,外足使以距難,民親之,士信之,上忠乎君,下愛百姓而不倦,是功臣者也。(중략) 故用聖臣者王,用功臣者彊,用篡臣者危,用態臣者亡。態臣用則必死,篡臣用則必危,功臣用則必榮,聖臣用則必尊。(중략) 齊之管仲,晉之咎犯,楚之孫叔敖,可謂功臣矣。
⟨요문⟩편에서는 선대 정치인들의 일화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손숙도의 일화도 있다.
증나라의 국경을 관장하는 봉인이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뵙고 말했다. "제가 듣건대, 벼슬에 오래 있는 사람은 (다른) 관리들이 그를 시기하고,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임금이 그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재상께서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고 있지 않으니 어째서입니까?" 손숙오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 번 초나라에서 재상노릇을 함에 마음은 더욱 낮추었고, 매번 녹이 늘어나면 더욱 베풀었으며, 지위가 높아지면 예로써 더욱 공경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초나라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벌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순자가 강조하는 정치인의 덕목은 높은 자리에 있어도 겸손하며, 받은 녹봉은 백성에게 베풀고, 임금을 공경하는 인물인 것이다.
원문 語曰:繒丘之封人,見楚相孫叔敖曰:「吾聞之也:處官久者士妒之,祿厚者民怨之,位尊者君恨之。為相國有此三者,而不得罪於楚之士民何也?」孫叔敖曰:「吾三相楚而心瘉卑,每益祿而施瘉博,位滋尊而禮瘉恭,是以不得罪於楚之士民也。」
도가
장자
법가
한비자
원문
사기 열전
孫叔敖者, 楚之処士也. 虞丘相進之於楚荘王, 以自代也. 三月為楚相, 施教導民, 上下和合, 世俗盛美, 政緩禁止, 吏無姦邪, 盜賊不起. 秋冬則勧民山採, 春夏以水, 各得其所便, 民皆樂其生. 荘王以為幣軽, 更以小為大, 百姓不便, 皆去其業. 市令言之相曰:「市亂, 民莫安其処, 次行不定.」相曰:「如此幾何頃乎?」市令曰:「三月頃.」相曰:「罷, 吾今令之複矣.」後五日, 朝, 相言之王曰:「前日更幣, 以為軽. 今市令來言曰『市亂, 民莫安其処, 次行之不定』. 臣請遂令複如故.」王許之, 下令三日而市複如故. 楚民俗好庳車, 王以為庳車不便馬, 欲下令使高之. 相曰:「令數下, 民不知所従, 不可. 王必欲高車, 臣請教閭里使高其梱. 乗車者皆君子, 君子不能數下車.」 王許之. 居半歳, 民悉自高其車. 此不教而民従其化, 近者視而效之, 遠者四面望而法之. 故三得相而不喜, 知其材自得之也;三去相而不悔, 知非己之罪也.
신서(新書) - 春秋
孫叔敖之為嬰兒也,出遊而還,憂而不食。其母問其故,泣而對曰:「今日吾見兩頭蛇,恐去死無日矣。」其母曰:「今蛇安在?」曰:「吾聞見兩頭蛇者死,吾恐他人又見,吾已埋之也。」其母曰:「無憂,汝不死。吾聞之:『有陰德者,天報以福。』」人聞之,皆諭其能仁也。及為令尹,未治而國人信之。
참고문헌
사기 열전 여씨춘추 십이기 맹자 열자(列子) 8.설부편(說符篇 열녀전
순자 제 5편 비상
- ↑ 신서 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