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명·청) |
(→명·청) |
||
21번째 줄: | 21번째 줄: | ||
=== 원 === | === 원 === | ||
=== 명·청 === | === 명·청 === | ||
− |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이 바로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16세기 명나라 시기에 기존에 있던 만리장성을 보수, 신축하였다. 장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명대 이전에 자주 일어났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격하는 쪽도, 수비하는 쪽도 기술이 과거보다 진보한 상태이기에, 축조된 장성의 높이도 7~8M에 이르렀다. 이 당시의 장성은 말이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훌륭한 | + |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이 바로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16세기 명나라 시기에 기존에 있던 만리장성을 보수, 신축하였다. 장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명대 이전에 자주 일어났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격하는 쪽도, 수비하는 쪽도 기술이 과거보다 진보한 상태이기에, 축조된 장성의 높이도 7~8M에 이르렀다. 이 당시의 장성은 말이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훌륭한 것인데 기존의 장성보다 평균 100KM나 남하한 위치에 형성되었다.<ref> 기존의 만리장성이 형성된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200ml 인 지역이었는데, 남하한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500ml인 지역이었다.</ref> |
== 건축 방법== | == 건축 방법== |
2019년 6월 24일 (월) 11:52 판
목차
개요
중국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역대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흉노족, 몽골인, 만주족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중국이 세운 성벽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BC 259~BC 210)때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 770~BC 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성벽은 대부분 15세기 이후 명나라 때에 쌓은 것이다. 지금은 흔히 '장성(長城)'으로 줄여서 불러지기도 한다. 만리장성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만 리보다 조금더 길다. 이는 길이가 서쪽의 간쑤성, 자위관에서 동쪽의 허베이성 산하이관까지 2,700km에 이르며, 지형의 높낮이 등을 반영하면 실질적인 성벽의 길이는 6,352K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혁
왜 장성을 지었을까?
장성을 지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북방 민족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에 있다. 예전에 중국 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근심거리는 북방 유목민들의 침략이었다. 그들은 줄곧 침략해 와 사람들을 죽이고, 한 해 동안 정성껏 재배한 작물을 약탈해갔다. 북방의 유목 민족들은 모두 말을 이동 수단으로 삼았다. 말은 기동력이 좋다는 장점이 있으나 앞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활용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 착안해 중국인들이 축조한 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한편 단순히 말의 접근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기 때문에 초기 만리장성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과는 조금 다르다. 진(秦)나라 당시 진시황이 축조한 만리장성은 성벽이라기보다는 담에 가까웠다. 높이는 고작 2~3M에 불과했기 때문에 기마병의 접근을 막는데에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만약 사람이 넘고자 한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정도의 높이이다.
장성의 역사
기원
춘추 전국
진
한
위진남북조
송
원
명·청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이 바로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16세기 명나라 시기에 기존에 있던 만리장성을 보수, 신축하였다. 장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명대 이전에 자주 일어났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격하는 쪽도, 수비하는 쪽도 기술이 과거보다 진보한 상태이기에, 축조된 장성의 높이도 7~8M에 이르렀다. 이 당시의 장성은 말이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훌륭한 것인데 기존의 장성보다 평균 100KM나 남하한 위치에 형성되었다.[1]
건축 방법
현황
기사 위주로, 관광상품으로의, 관광지로서의 장성. 중국을 상징하는 건물
만리장성은 중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문화유산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현재까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칭송되고 있다. 2007년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만리장성은 중국의 관광상품으로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는 험준한 산과 협곡은 물론이고 사막까지 이어진 '자연경관'때문인데, 관광철이 되면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그 인기는 굉장하다. 그래서 현 베이징의 만리장성은 '인간 장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와 함께 '문화재 훼손 문제, 환경 오염 문제'등의 여러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이러한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6년 부터 만리장성 보존을 위한 법률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는 만리장성 훼손과 주변에서 이뤄지는 광물 채굴 작업이 장성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불법적인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는지 등을 알기 위해 드론과 위성을 이용해 이를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만리장성은 중국의 문화사를 바탕으로 바라보았을 때, '중화사상'의 근본으로 중국에게 있어서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관련 논란
만리장성과 북한 논란
2012년 발표
참고문헌
각주
- ↑ 기존의 만리장성이 형성된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200ml 인 지역이었는데, 남하한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500ml인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