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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야초』는 루쉰 본인이 내외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5.30사건]]’과 ‘[[북경여사대사건]]’, ‘[[3.18참사]]’등에 의한 충격과 아우 [[저우쭤런]]과의 불화, 수차례의 폐병 재발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특히 수차례의 폐병 재발은 루쉰으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내면이식에 깊이 자리잡게 하였다. 이는 그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고독과 방황의 정서를 심화시켰다. 궁극적으로는 루쉰 본인의 근본적인 존재의미를 성찰하게 하였다. 삶과 죽음을 비롯한 그의 실존적인 고민은 「묘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r> | |
− | 『야초』는 루쉰 본인이 내외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5.30사건]]’과 ‘[[ | ||
「죽은 후」가 죽어있는 자신의 ‘현재’와 직면하여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상 속 여러 곤혹스러운 상황들을 보여주었다면, 「묘비문」은 시신과 묘비문을 마주하는 ‘나’의 모습을 통하여 다소 음산한 장면을 보여준다. 꿈 속의 살아있는 ‘나’는 오래 전 죽은 ‘내’앞에 마주하여 묘비문을 읽는다. 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br> | 「죽은 후」가 죽어있는 자신의 ‘현재’와 직면하여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상 속 여러 곤혹스러운 상황들을 보여주었다면, 「묘비문」은 시신과 묘비문을 마주하는 ‘나’의 모습을 통하여 다소 음산한 장면을 보여준다. 꿈 속의 살아있는 ‘나’는 오래 전 죽은 ‘내’앞에 마주하여 묘비문을 읽는다. 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br> | ||
앞의 묘비문에서는 자신의 내면 속 ‘어둠’과의 대결 끝에 결국 운명했음을 보여준다. <br> | 앞의 묘비문에서는 자신의 내면 속 ‘어둠’과의 대결 끝에 결국 운명했음을 보여준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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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도려내어 참 맛을 알려 하지만, 고통이 극심하여 그리하지 못한 것은 자기 존재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픔이 가라앉은 후 다시 음미하려 하지만 결국 참맛은 느끼지 못하고 ‘나’는 더욱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지며 그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자아인 살아있는 ‘나’에게 자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통해 깨어있는 현실주의적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br> | 심장을 도려내어 참 맛을 알려 하지만, 고통이 극심하여 그리하지 못한 것은 자기 존재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픔이 가라앉은 후 다시 음미하려 하지만 결국 참맛은 느끼지 못하고 ‘나’는 더욱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지며 그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자아인 살아있는 ‘나’에게 자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통해 깨어있는 현실주의적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br> | ||
루쉰은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거듭하고 스스로의 어두운 측면과 부정적인 요소를 드러내며 끊임없는 실존적 고민을 하였다. <br> | 루쉰은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거듭하고 스스로의 어두운 측면과 부정적인 요소를 드러내며 끊임없는 실존적 고민을 하였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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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금) 23:00 기준 최신판
원문
我梦见自己正和墓碣对立,读着上面的刻辞。那墓碣似是沙石所制,剥落很多,又有苔藓丛生,仅存有限的文句——
……于浩歌狂热之际中寒;于天上看见深渊。于一切眼中看见无所有;于无所希望中得救。……
……有一游魂,化为长蛇,口有毒牙。不以啮人,自啮其身,终以殒颠。……
……离开!……
我绕到碣后,才见孤坟,上无草木,且已颓坏。即从大阙口中,窥见死尸,胸腹俱破,中无心肝。而脸上却绝不显哀乐之状,但蒙蒙如烟然。
我在疑惧中不及回身,然而已看见墓碣阴面的残存的文句——
……抉心自食,欲知本味。创痛酷烈,本味何能知?……
……痛定之后,徐徐食之。然其心已陈旧,本味又何由知?……
……答我。否则,离开!……
我就要离开。而死尸已在坟中坐起,口唇不动,然而说——
“待我成尘时,你将见我的微笑!”
我疾走,不敢反顾,生怕看见他的追随。
해제
『야초』는 루쉰 본인이 내외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5.30사건’과 ‘북경여사대사건’, ‘3.18참사’등에 의한 충격과 아우 저우쭤런과의 불화, 수차례의 폐병 재발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특히 수차례의 폐병 재발은 루쉰으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내면이식에 깊이 자리잡게 하였다. 이는 그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고독과 방황의 정서를 심화시켰다. 궁극적으로는 루쉰 본인의 근본적인 존재의미를 성찰하게 하였다. 삶과 죽음을 비롯한 그의 실존적인 고민은 「묘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죽은 후」가 죽어있는 자신의 ‘현재’와 직면하여 자신의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상 속 여러 곤혹스러운 상황들을 보여주었다면, 「묘비문」은 시신과 묘비문을 마주하는 ‘나’의 모습을 통하여 다소 음산한 장면을 보여준다. 꿈 속의 살아있는 ‘나’는 오래 전 죽은 ‘내’앞에 마주하여 묘비문을 읽는다. 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앞의 묘비문에서는 자신의 내면 속 ‘어둠’과의 대결 끝에 결국 운명했음을 보여준다.
……于浩歌狂热之际中寒;于天上看见深渊。于一切眼中看见无所有;于无所希望中得救。……
……有一游魂,化为长蛇,口有毒牙。不以啮人,自啮其身,终以殒颠。……
모두가 열광적으로 노래하고, 천상이라 생각하며, 실재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때 또다른 극단을 보았던 자아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과 정서에 둘러싸여온 일생을 상징한다. 이 구절은 냉철한 현실인식을 통해 천상에서 심연을 볼 수 있는 통찰에 이르고, 그 결과 ‘무소유’의 사상을 획득함으로써 희망이 없는 데서 구원을 얻는 경지에 도달함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이는 루쉰이 도달한 삶이나 사상의 깊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해주는 구절로 평가되기도 한다.
떠도는 넋이 뱀이 되어 독니로 자신을 물어 죽인 것은, 자신의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정서를 스스로 끝맺겠다는 또 다른 자의식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루쉰이 본인 내면의 어두운 측면에 대하여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고 이러한 어두운 측면이 젊은이들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우려하고 있었음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에 새겨진 묘비명에서는 삶을 음미하고 회의와 반성을 거듭하는 루쉰의 현실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抉心自食,欲知本味。创痛酷烈,本味何能知?……
……痛定之后,徐徐食之。然其心已陈旧,本味又何由知?……
심장을 도려내어 참 맛을 알려 하지만, 고통이 극심하여 그리하지 못한 것은 자기 존재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픔이 가라앉은 후 다시 음미하려 하지만 결국 참맛은 느끼지 못하고 ‘나’는 더욱 초조하고 고통스러워지며 그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자아인 살아있는 ‘나’에게 자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대답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통해 깨어있는 현실주의적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루쉰은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거듭하고 스스로의 어두운 측면과 부정적인 요소를 드러내며 끊임없는 실존적 고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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