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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골문 宦자는 눈(사람을 대표함)이 감옥에 갇혀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죄인이 기꺼이 관리에게 협조하여 동료를 감시할 때, 그는 하급관리로 진급될 수 있었다. 눈은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감각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관계로 종종 하나의 눈이 머리 전체나 심지어 신체 전체를 나타내는 문자로 사용되었다. 갑골문 臣자는 하나의 눈이 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머리를 들고 바라보는 행위를 나타낸다. 이것은 낮은 위치에 있는 하급계층의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는 고급관리를 쳐다보는 것이다. 때문에 신(臣)자는 ‘죄수’와 ‘관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소리를 죽이고 순종하는 노예가 관리로 승진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ref>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7.</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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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宦: 하급관리=== | ||
+ | 일반적으로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복하기 이전까지, 주나라의 문화수준이 상나라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주나라는 상나라의 여러가지 문화나 관습을 배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 ||
+ | 이처럼 주나라가 노예를 다루었던 방법은 상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보통은 가혹한 형벌로 위협하거나, 협조한 행위에 대해서 보상하기도 하였다. 《상서》의 <주고>(酒誥)에서 주가 상의 죄수들을 다루는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주공이 강숙(康叔)에게 이르기를, 상의 포로들이 술을 마셔 규약을 위반하면, 먼저 잘 선도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형벌을 가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주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규약을 위반하면 가차없이 처형하라고 하였다. 상의 전쟁 포로들을 관리하는 데 비교적 관용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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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가 상을 정복한 뒤, 모든 상의 백성들을 노예로 전락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의 관리 체계 대부분을 그대로 이행하면서 주나라 관리들의 엄격한 통제를 가하였다. 갑골문 宦([[파일:宦1.png|20픽셀]])을 통해 위와 같은 제도가 상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宦이 하급관리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위와 같은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이용된 노예 관리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인이 기꺼이 관리에게 협조하여 동료를 감시할 때, 하급관리로 진급될 수 있었다고 한다. 宦과 같이 [[臣]]이 '죄수'와 '관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게 된 것 또한, 소리를 죽이고 순종하는 노예가 관리로 승진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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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 ||
==참고== | ==참고== | ||
− | # 王样之, 《圖解漢字起源》, 北京大學出版社, 2009, p.61. | + | # 王样之, 《圖解漢字起源》, 北京大學出版社, 2009, p.61. <br> |
+ | #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주)지식산업사, 1993, p.440. |
2022년 12월 26일 (월) 23:18 기준 최신판
목차
語源
갑골문 宦()은 회의자이다. 집을 가리키는 과 臣()로 이루어져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환(宦)은 벼슬(仕)이다. 집 면(宀)면 과 신하 신(臣)을 뜻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臣은 세로로 쓴 눈을 가리키는데, 머리를 숙여 눈이 아래로 향할 때의 모습을 나타낸다. 세로로 쓴 눈(사람을 대표함)은 머리를 숙여 명령을 듣는 노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宦은 실내에 있는 노예를 의미하는 회의자가 된다. 宦과 臣의 본래 의미는 노예이지만, 관직에 있는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후대에는 본래 의미는 잃고, 관리라는 의미가 되었다.
文化
갑골문 宦자는 눈(사람을 대표함)이 감옥에 갇혀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죄인이 기꺼이 관리에게 협조하여 동료를 감시할 때, 그는 하급관리로 진급될 수 있었다. 눈은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감각기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관계로 종종 하나의 눈이 머리 전체나 심지어 신체 전체를 나타내는 문자로 사용되었다. 갑골문 臣자는 하나의 눈이 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머리를 들고 바라보는 행위를 나타낸다. 이것은 낮은 위치에 있는 하급계층의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는 고급관리를 쳐다보는 것이다. 때문에 신(臣)자는 ‘죄수’와 ‘관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소리를 죽이고 순종하는 노예가 관리로 승진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1]
宦: 하급관리
일반적으로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복하기 이전까지, 주나라의 문화수준이 상나라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주나라는 상나라의 여러가지 문화나 관습을 배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주나라가 노예를 다루었던 방법은 상나라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보통은 가혹한 형벌로 위협하거나, 협조한 행위에 대해서 보상하기도 하였다. 《상서》의 <주고>(酒誥)에서 주가 상의 죄수들을 다루는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주공이 강숙(康叔)에게 이르기를, 상의 포로들이 술을 마셔 규약을 위반하면, 먼저 잘 선도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형벌을 가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주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규약을 위반하면 가차없이 처형하라고 하였다. 상의 전쟁 포로들을 관리하는 데 비교적 관용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주가 상을 정복한 뒤, 모든 상의 백성들을 노예로 전락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의 관리 체계 대부분을 그대로 이행하면서 주나라 관리들의 엄격한 통제를 가하였다. 갑골문 宦()을 통해 위와 같은 제도가 상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宦이 하급관리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위와 같은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이용된 노예 관리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인이 기꺼이 관리에게 협조하여 동료를 감시할 때, 하급관리로 진급될 수 있었다고 한다. 宦과 같이 臣이 '죄수'와 '관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게 된 것 또한, 소리를 죽이고 순종하는 노예가 관리로 승진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참고
- 王样之, 《圖解漢字起源》, 北京大學出版社, 2009, p.61.
-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주)지식산업사, 1993, p.440.
- ↑ 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