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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 자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갑골문을 보면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든 모습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氏에 ’씨‘, ’뿌리‘, ’낮다‘, ’들다‘ 등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든 것은 ’씨앗‘으로 추정된다. 먼저, 씨를 뿌리는 모습에서 ’씨‘와 ’뿌리‘의 개념이 나왔는데, 씨족(氏族)이나 성씨(姓氏)는 이런 뜻을 반영하였다. 이후 씨를 뿌리려 허리를 굽힌 데서 ’낮(추)다‘의 뜻이 나왔는데, 금문의 자형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후 氏는 ’씨‘를 뿌리는 곳인 땅을 강조한 지사 부호(丶)를 더해 [[氐]](근본 저)로 분화하여 ’낮다‘는 의미를 주로 표현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410.</ref> 갑골문의 氐와 氏는 동일한 글자이다. 氏는 후대에 특별히 가리키게 되었다.<ref>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2006, p.4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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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자이다. 자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갑골문]]을 보면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든 모습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氏에 ’씨‘, ’뿌리‘, ’낮다‘, ’들다‘ 등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든 것은 ’씨앗‘으로 추정된다. 먼저, 씨를 뿌리는 모습에서 ’씨‘와 ’뿌리‘의 개념이 나왔는데, 씨족(氏族)이나 성씨(姓氏)는 이런 뜻을 반영하였다. 이후 씨를 뿌리려 허리를 굽힌 데서 ’낮(추)다‘의 뜻이 나왔는데, [[금문]]의 자형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후 氏는 ’씨‘를 뿌리는 곳인 땅을 강조한 지사 부호(丶)를 더해 [[氐]](근본 저)로 분화하여 ’낮다‘는 의미를 주로 표현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410.</ref> 갑골문의 氐와 氏는 동일한 글자이다. 氏는 후대에 특별히 가리키게 되었다.<ref>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2006, p.4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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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때 서역에 있던 이민족인 월지(月氏)를 지칭하며, 한나라 때 [[흉노]]족이 임금의 정실부인을 부르던 알지(閼氏)를 말할 때 쓰이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지‘로 읽힘에 유의해야 한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4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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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姓]]은 여자가 낳았다는 뜻이다. 물론 [[生]]은 소리부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원시사회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는 경제적으로 여자의 채집 행위가 남자의 사냥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당시 성행했던 군혼제(群婚制) 하에서는 어미만 알 뿐 아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의 혈통은 모계로 따질 수밖에 없어다. 그래서 이 단계의 사회를 모계사회라 한다. 이후 점점 남자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자녀의 혈통은 모계가 아닌 부계를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아비를 알기 위해서도 여성의 정절이 반드시 요구되었으며, 점점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갔다. 이때 부계를 따른 성을 氏라 한다. 지금은 이를 합하여 성씨(姓氏)라고 쓴다.<ref>하영삼, 『연상한자』, 예담차이나, 2004, pp.93-9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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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2021년 1월 9일 (토) 00:46 기준 최신판

語源

성씨 씨.jpg

상형자이다. 자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갑골문을 보면 허리를 숙인 채 물건을 든 모습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氏에 ’씨‘, ’뿌리‘, ’낮다‘, ’들다‘ 등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손에 든 것은 ’씨앗‘으로 추정된다. 먼저, 씨를 뿌리는 모습에서 ’씨‘와 ’뿌리‘의 개념이 나왔는데, 씨족(氏族)이나 성씨(姓氏)는 이런 뜻을 반영하였다. 이후 씨를 뿌리려 허리를 굽힌 데서 ’낮(추)다‘의 뜻이 나왔는데, 금문의 자형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이후 氏는 ’씨‘를 뿌리는 곳인 땅을 강조한 지사 부호(丶)를 더해 (근본 저)로 분화하여 ’낮다‘는 의미를 주로 표현했다.[1] 갑골문의 氐와 氏는 동일한 글자이다. 氏는 후대에 특별히 가리키게 되었다.[2]

文化

한나라 때 서역에 있던 이민족인 월지(月氏)를 지칭하며, 한나라 때 흉노족이 임금의 정실부인을 부르던 알지(閼氏)를 말할 때 쓰이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지‘로 읽힘에 유의해야 한다.[3]

은 여자가 낳았다는 뜻이다. 물론 은 소리부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원시사회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는 경제적으로 여자의 채집 행위가 남자의 사냥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당시 성행했던 군혼제(群婚制) 하에서는 어미만 알 뿐 아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의 혈통은 모계로 따질 수밖에 없어다. 그래서 이 단계의 사회를 모계사회라 한다. 이후 점점 남자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자녀의 혈통은 모계가 아닌 부계를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아비를 알기 위해서도 여성의 정절이 반드시 요구되었으며, 점점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갔다. 이때 부계를 따른 성을 氏라 한다. 지금은 이를 합하여 성씨(姓氏)라고 쓴다.[4]

참고문헌

  1.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410.
  2. 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2006, p.48.
  3.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410.
  4. 하영삼, 『연상한자』, 예담차이나, 2004, pp.9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