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語源) |
(→文化)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語源== | ==語源== | ||
[[파일:조개 패.png|500픽셀|오른쪽]] | [[파일:조개 패.png|500픽셀|오른쪽]] | ||
− | + | ‘貝’는 갑각 연체동물의 총칭이지만, 고대에는 주로 바다조개를 가리킨다. [[갑골문]], [[금문]]의 ‘貝’는 바로 바다조개 껍데기의 형상을 상형한 것이다. <br> | |
+ | 금문에서는 아래로 세로획이 둘 더해졌는데, 이를 두고 조개를 꿰놓은 줄이라고도 하지만 조개의 입수관과 출수관으로 보인다. <br> | ||
+ | 조개는 고대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지만 일찍부터 화폐로도 사용되었으며, 이 때문에 貝는 ‘조개’ 외에 화폐, 재산, 부, 상행위 등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간화자에서는 贝로 쓴다.<ref>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701 </ref> | ||
− | 고대에 중원지역에서는 바다조개는 진귀한 장식품이었다. 이것은 외면이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크기가 작고 일정하기 때문에 휴대가 용이하였다. 또한, 대체로 바다에서 매우 멀기 때문에 얻기에 용이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귀중한 보배로 삼아, 꿰어서 목에 걸어, 가슴 앞에 내걸었으며 이로써 부유함을 보였다. 후에 | + | 고대에 중원지역에서는 바다조개는 진귀한 장식품이었다. 이것은 외면이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크기가 작고 일정하기 때문에 휴대가 용이하였다. 또한, 대체로 바다에서 매우 멀기 때문에 얻기에 용이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귀중한 보배로 삼아, 꿰어서 목에 걸어, 가슴 앞에 내걸었으며 이로써 부유함을 보였다. 후에 ‘貝’는 또한 가장 이른 화폐가 되었으며, 상당한 재산을 대표하였고, 교역에서 사용되는 귀중한 물건에 대한 상징을 나타내었다.<ref>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서울:지식산업사, 1993</ref> <br> |
+ | 그래서 무릇 ‘貝’로 구성된 글자는 대체로 재물 혹은 귀중한 의미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재산([[財]])’, ‘재화(貨)’, ‘관(엽전 천개를 꿴 것을 나타냄, 貫)’, ‘거래하다(貿)’, ‘귀중하다(貴)’, ‘세를 주다(賃)’, ‘대출하다([[貸]])’ 등이 있다. | ||
==文化== | ==文化== | ||
− | 왜 마노조개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았을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의 내륙에서는 마노조개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 + | 왜 마노조개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았을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의 내륙에서는 마노조개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아직까지 마노조개가 신비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157</ref> 그러므로 이는 중국만의 독특한 특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조개의 희귀성, 내구성, 화려함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
− | 특히 마노조개는 최초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마노조개의 공급이 수요를 만족 시키지 못함에 따라, 주나라 후기에 이르러 비교적 발달된 지역에서는 더 이상 마노조개를 화폐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중국 남부와 서부 지역에서는 계속 사용되었었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158</ref>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및 기타 다른 자료들에 근거했을 때, 운남성 지역에서는 17세기까지 조개 화폐가 사용됐다고 한다. | + | 특히 마노조개는 최초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마노조개의 공급이 수요를 만족 시키지 못함에 따라, 주나라 후기에 이르러 비교적 발달된 지역에서는 더 이상 마노조개를 화폐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중국 남부와 서부 지역에서는 계속 사용되었었다.<ref>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p.158</ref><br> |
+ |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및 기타 다른 자료들에 근거했을 때, 운남성 지역에서는 17세기까지 조개 화폐가 사용됐다고 한다. | ||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
2021년 5월 4일 (화) 14:33 기준 최신판
語源
‘貝’는 갑각 연체동물의 총칭이지만, 고대에는 주로 바다조개를 가리킨다. 갑골문, 금문의 ‘貝’는 바로 바다조개 껍데기의 형상을 상형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아래로 세로획이 둘 더해졌는데, 이를 두고 조개를 꿰놓은 줄이라고도 하지만 조개의 입수관과 출수관으로 보인다.
조개는 고대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지만 일찍부터 화폐로도 사용되었으며, 이 때문에 貝는 ‘조개’ 외에 화폐, 재산, 부, 상행위 등과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간화자에서는 贝로 쓴다.[1]
고대에 중원지역에서는 바다조개는 진귀한 장식품이었다. 이것은 외면이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크기가 작고 일정하기 때문에 휴대가 용이하였다. 또한, 대체로 바다에서 매우 멀기 때문에 얻기에 용이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귀중한 보배로 삼아, 꿰어서 목에 걸어, 가슴 앞에 내걸었으며 이로써 부유함을 보였다. 후에 ‘貝’는 또한 가장 이른 화폐가 되었으며, 상당한 재산을 대표하였고, 교역에서 사용되는 귀중한 물건에 대한 상징을 나타내었다.[2]
그래서 무릇 ‘貝’로 구성된 글자는 대체로 재물 혹은 귀중한 의미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재산(財)’, ‘재화(貨)’, ‘관(엽전 천개를 꿴 것을 나타냄, 貫)’, ‘거래하다(貿)’, ‘귀중하다(貴)’, ‘세를 주다(賃)’, ‘대출하다(貸)’ 등이 있다.
文化
왜 마노조개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았을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의 내륙에서는 마노조개 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아직까지 마노조개가 신비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3] 그러므로 이는 중국만의 독특한 특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조개의 희귀성, 내구성, 화려함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마노조개는 최초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마노조개의 공급이 수요를 만족 시키지 못함에 따라, 주나라 후기에 이르러 비교적 발달된 지역에서는 더 이상 마노조개를 화폐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중국 남부와 서부 지역에서는 계속 사용되었었다.[4]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및 기타 다른 자료들에 근거했을 때, 운남성 지역에서는 17세기까지 조개 화폐가 사용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