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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狗(犬)는 인류가 최초로 길들인 가축 중 하나이다. 이미 4-5천년 전 채색 도기에 명확하게 개의 모양으로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이후 [[갑골문]]에서도 개의 말린 꼬리까지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금문]]에서는 개의 몸통을 모두 검은 색으로 칠했다. [[소전]]에서는 개의 모습을 상실하였으며 동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犬을 형태부로 句를 소리부로 하는 형성자 狗자를 만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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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犬(개 견)이 의미부이고 句(글귀 구)가 소리부로, 개를 나타내는데 등이 굽은 짐승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후 나쁜 사람, 욕 등의 비유로도 쓰인다. 혹자는 수입 개의 번역어라고도 하고 방언의 차이라고도 여기지만, 『예기』에서의 주석처럼 ”큰 개를 犬, 작은 개를 狗라고 한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ref>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83</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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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양만큼이나 일찍 사육된 것 같다. 갑골문 개의 犬의 갑골문은 돼지의 갑골문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개의 갑골문은 길고 야윈 몸체와 위로 올라간 꼬리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글자의 형태에서는 꼬리가 길고 가늘며, 아래로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개는 상나라 때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최소한 한나라 때까지 남아있었다. 상나라 때 개를 관장하는 관리인 구감(狗監)은 사냥감이 어디에 있는가를 왕에게 보고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를 따라 군대 일에도 참가하였다. 개는 집을 지키는 임무가 있다는 이유로 집의 기초를 놓을 때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또 개는 상나라 무덤의 시체 아래에 있는 오목한 웅덩이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f>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p.79-80</ref> | 개는 양만큼이나 일찍 사육된 것 같다. 갑골문 개의 犬의 갑골문은 돼지의 갑골문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개의 갑골문은 길고 야윈 몸체와 위로 올라간 꼬리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글자의 형태에서는 꼬리가 길고 가늘며, 아래로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개는 상나라 때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최소한 한나라 때까지 남아있었다. 상나라 때 개를 관장하는 관리인 구감(狗監)은 사냥감이 어디에 있는가를 왕에게 보고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를 따라 군대 일에도 참가하였다. 개는 집을 지키는 임무가 있다는 이유로 집의 기초를 놓을 때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또 개는 상나라 무덤의 시체 아래에 있는 오목한 웅덩이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f>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p.79-80</ref> | ||
− | + | 有縣蹄[한쪽 발을 들고 있는 개]를 犬이라고하고 叩氣吠[공기를 진동시키면서 짖는 개]를 狗라고 하니 모두 발음에서 의미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사물이 이름을 달리하게 된 유래를 밝힌 것이다. ≪장자≫에서 “狗는 犬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사마표는 “실제(實)는 같고 이름(名)만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체로 이름이 다를 때에는 반드시 실질이 다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 이치에 밝아 (여러 가지 지식에 두루 통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犬의 발음은 苦(고)와 泫(현)의 반절이다. 또 공자는 “牛(우)와 洋(양)은 그 형체를 가지고 만든 글자들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牛, 洋, 犬은 소전의 자형이며 곧 공자 시대의 고문이다. 공자가 말한 것을 보면 犬은 곧 狗라는 뜻이니 이는 혼언한 것이다.<ref>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p.506-507</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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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6일 (월) 14:32 기준 최신판
語源
狗(犬)는 인류가 최초로 길들인 가축 중 하나이다. 이미 4-5천년 전 채색 도기에 명확하게 개의 모양으로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이후 갑골문에서도 개의 말린 꼬리까지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금문에서는 개의 몸통을 모두 검은 색으로 칠했다. 소전에서는 개의 모습을 상실하였으며 동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犬을 형태부로 句를 소리부로 하는 형성자 狗자를 만들었다.
文化
犬(개 견)이 의미부이고 句(글귀 구)가 소리부로, 개를 나타내는데 등이 굽은 짐승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후 나쁜 사람, 욕 등의 비유로도 쓰인다. 혹자는 수입 개의 번역어라고도 하고 방언의 차이라고도 여기지만, 『예기』에서의 주석처럼 ”큰 개를 犬, 작은 개를 狗라고 한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1]
개는 양만큼이나 일찍 사육된 것 같다. 갑골문 개의 犬의 갑골문은 돼지의 갑골문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개의 갑골문은 길고 야윈 몸체와 위로 올라간 꼬리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글자의 형태에서는 꼬리가 길고 가늘며, 아래로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개는 상나라 때 제물로 사용되었으며 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최소한 한나라 때까지 남아있었다. 상나라 때 개를 관장하는 관리인 구감(狗監)은 사냥감이 어디에 있는가를 왕에게 보고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를 따라 군대 일에도 참가하였다. 개는 집을 지키는 임무가 있다는 이유로 집의 기초를 놓을 때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또 개는 상나라 무덤의 시체 아래에 있는 오목한 웅덩이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2]
有縣蹄[한쪽 발을 들고 있는 개]를 犬이라고하고 叩氣吠[공기를 진동시키면서 짖는 개]를 狗라고 하니 모두 발음에서 의미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사물이 이름을 달리하게 된 유래를 밝힌 것이다. ≪장자≫에서 “狗는 犬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사마표는 “실제(實)는 같고 이름(名)만 다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체로 이름이 다를 때에는 반드시 실질이 다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 이치에 밝아 (여러 가지 지식에 두루 통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犬의 발음은 苦(고)와 泫(현)의 반절이다. 또 공자는 “牛(우)와 洋(양)은 그 형체를 가지고 만든 글자들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牛, 洋, 犬은 소전의 자형이며 곧 공자 시대의 고문이다. 공자가 말한 것을 보면 犬은 곧 狗라는 뜻이니 이는 혼언한 것이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