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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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小篆)의 정의

이사는 6국 통일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걸출한 정치모략가였다. 사진은 그의 글씨로 알려진,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역산각석비'다.

상나라 갑골문과 서주의 금문이 각각 당시의 표준문자를 대표한다면, 전국문자의 자체는 그 지역성만큼이나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전국시대는 중국문자의 발전사상 문자형체와 쓰임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자사용의 혼란은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경제발전에 심각한 저해 요소로 작용하여 진시황은 육국을 멸한 후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도량형·화폐·문자 등의 통일을 단행하였다. 진시황제가 도량형을 통일할 때 진나라 효공 18년(B.C. 359년)에 제정한 상앙변법(商鞅變法)[1]을 반영하여 표준기에 조서를 새겨 넣어 전국에 통일된 도량형의 표준을 마련하였다. 이때 제작된 조판문은 필법이 조잡하고 필획이 각지게 꺾여 있어 민간의 속체로 여겨지나 그 기본형태는 소전가 일치하여 소전의 범주에 든다. 이는 진대 초기 문자 연구의 주요 자료가 된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문자는 주문(籒文),[2] 즉 대전으로 서주 이래 춘추전국의 문자에서 이어온 상당히 정돈된 서체였다. 반면 육국의 문자는 진나라의 문자와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진시황은 승상 이사[3] 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서동문(書同文-문자자체 표준화 정책)을 실시해 문자의 통일을 단행하였다. 다시 말하면, 육국의 문자 중 진나라의 문자와 다른 형체를 폐지하고, 진나라 고유의 서체인 주문, 즉 대전의 형체를 기초로 간략하게 줄이고 삭제하여 고쳤다. 그 결과 자형이 정연하고 필획이 고른 새로운 서체인 소전이 탄생하였다.
여기서 ‘소’라고 한 것은 간화의 의미를 갖는다. 진나라 소전의 가장 대표적인 자료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전국을 유람하면서 각석한 역산(嶧山)·태산(泰山)·낭야대(琅玡臺) 각석등이다. 체계적인 소전 위주의 자서는 동한 허신의 『설문해자』로 모두 9,353자를 수록하고 있다. 물론 설문에 수록된 소전 자체가 모두 진나라 소전의 면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소전의 풍격을 고찰하는 데 가장 귀중한 자료이다.
이렇듯 진시황 때 소위 ‘서동문(書同文)’이라는 문자 통일 정책으로 인해 다양했던 육국의 서로 다른 이체자들이 정비되고 최초로 관 주도의 규범화된 서체인 소전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대 통일의 국면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전이 소실되고 군사, 행정 등 안건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문체가 응용되지 못하고 간편한 예서(隸書)가 움튼 가운데 진대에는 대전·소전·충서·각부·모인·서서·수서·예성 등 8종의 서체가 공존하였다.

소전의 특징

소전의 자형은 형체가 길쭉하고 둥글면서 균등하게 배열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 때문에 후세의 서법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필획이 복잡하고 형태의 변화가 심해 위조 방지에 적합하여 도장의 서체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소전의 특징을 갑골문·금문 등과 비교하면 더 자연적으로 드러나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한자의 부호적인 성질을 정립함으로써 한자 자형 결구의 규율을 구비하도록 하였다. 갑골문금문의 결구 형태는 규율성이 엄밀하지 않은 반면, 소전은 선형화되어서 자형이 도화의 특징에서 더욱 탈피하게 되었다.
② 한자 결구를 정형화하여 편방의 위치와 형체를 고정시켰다.
③ 윤곽을 모두 묘사한 갑골문과 윤곽 내부를 다 메운 금문의 자체를 일률적으로 선형화하였다.
④ 자형규격과 필세를 통일하였다. 따라서 소전은 이전의 한자에 비하여 상형성이 약화되어 자체를 통하여 한 눈에 객관 대상을 인식하는 한자 특유의 표의성을 상실하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대전에서 소전으로의 변천

소전은 대전을 “간략하게 줄이고 삭제하여 고쳤다(簡省刪改)”고 하였다. 어떤 방식으로 줄이고 삭제하였는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생략되고 개조되었으며, 일부는 증가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살펴본다.

주문이 생략된 예

생략의 경우 성부와 의부를 고루 생략하였다.

(1)성부의 일부를 생락하여 소전을 만든 경우 : 祺 送 秋 鼓 歎.
祺자를 볼 때 주문의 基를 소전에서는 其로 획을 생략했다.
소전1.png


(2)의부 중 같은 의미의 형체가 중복되었을 때 생략한 경우 : 登 商 是 敗 昔 陸.
敗자를 볼 때 貝가 두 개 있는 주문은 소전에서는 貝 하나를 생략하였다.
소전2.png


주문이 개조된 예

개조시킨 경우 성부와 의부를 고루 개조하였다.

(1)성부를 개조한 경우 : 姻 宇 頌 地 雲 頂을 예로 든다.
頂자를 볼 때 주문의 鼎을 소전에서 동음인 丁으로 개조했다.
소전3.png


(2)의부를 개조한 경우 : 則 昌 城 顔 鷄
소전4.png


주문이 증가하여 소전이 된 예

대전을 생략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획을 증가한 경우도 있다.
성부와 의부를 골고루 증가하였는데 <설문> 주문 225자 중 29자 정도 증가되었다.

(1)성부의 일부가 증가되어 음을 명확하게 한 경우 : 妣 歸 霧 載.
霧자를 볼 때 주문의 矛를 소전에서 務로 고쳐 음을 명확하게 하였다.
소전5.png


(2)의부의 일부가 첨가되어 의미를 완전하게 해준 경우 : 棄 樹 箕 封.
樹자를 볼 때 주문의 尌를 소전에서는 의부에 木을 첨가하여 뜻을 명확하게 하였다.
소전6.png

참고문헌

양동숙,『그림으로 배우는 중국문자학』, 차이나하우스, 2006, pp,165~170.
문준혜,『한자문화』, 역락, 2013, p,68.
풍몽룡, 김구용,『열국지사전』, 솔출판사, 2001.

각주

  1. 상앙(商鞅, B.C.?~338)이 진(秦)나라의 부국강병과 패업(覇業)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진효공(秦孝公, B.C.361~338 재위)의 적극적인 지원과 비호 아래 추진한 대대적인 혁신 정책으로 1, 2차에 걸쳐 약 20여 년 간(B.C.359~338) 단행되었음. 추호의 예외나 사정(私情)을 두지 않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냉철한 개혁 정책을 쉴 새 없이 몰아친 결과, 상앙 자신은 민심을 잃고 각계각층의 원망을 사게 되어 진효공(孝公) 사후 반대파들의 탄핵을 받아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가 강행한 변법의 결과 진나라의 국력과 군사력은 이전 시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눈부시게 신장되었음.
  2. 십체의 하나. 중국 주나라의 주가 창작한 한자의 자체로 소전의 전신으로 대전이라고도 한다.
  3. 이사(李斯, ?~기원전 208) : 진나라의 승상이자 유명한 정치가, 서예가이다. 진시황의 문자통일 작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사가 소전을 제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전이 이사 한 사람의 창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소전은 이사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이미 사회에 널리 쓰이고 있던 대전의 간화체를 수집, 정리하여 표준글자체로 만들고 전체 사회에 널리 보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