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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애== | ||
+ | 순자는 [[전국시대]] [[조]](趙)나라 출신이다. 이름은 황(況)이며, 자는 경(卿)이다.순(荀)과 손(孫)의 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br /> | ||
+ | 순자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이상이 높았으며, 15세에 조나라를 떠나 [[제]](齊)나라 [[직하학궁|직하]]에 유학하였다. 직하는 당시 상당히 유명한 학술의 중심으로 천하의 명사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논의하고 정치에 대해 비평하던 학관이다. 순자는 여기서 20여 년간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br /> | ||
+ | 기원전 286년경, 순자는 제나라에 위기가 다가옴을 감지하고 당시 재상에게 건의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기원전 275년 제나라가 잃었던 땅을 되찾고 양왕(襄王)이 임치에 직하를 다시 설치하자, 순자는 제나라로 돌아왔다. <br /> | ||
+ | 순자는 직하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선생으로서 좨주(祭酒)의 지위를 세번이나 역임했다. 이후 질시와 모함으로 기원전 255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나라에 갔다. 당시 춘신군이 재상이었는데, 순자를 난릉의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어떤 이가 춘신군에게 모함하여, 순자는 사퇴하고 초나라를 떠나 조국인 조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조나라에 돌아와서는 평원군의 상경이 되었지만, 기원전 251년 평원군이 세상을 떠났다. 후에 춘신군이 거듭 지난 일을 후회하면서 초빙하자, 순자는 이에 다시 초나라로 가서 난릉의 수령 지위에 올랐다. 기원전 238년 춘신군이 피살되고 순자 또한 난릉의 수령에서 파면되었다. 당시 대략 91세가 된 순자는 저술을 통해 자신의 학설을 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이다 기원전 235년경 세상을 떠났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순자는 난릉에 매장되었다. | ||
− | 순자는 | + | ==중심사상== |
+ | ===인간관=== | ||
+ |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되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전국시대]]의 말기는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했었으며, 비인간적인 시대 상황이었다. 순자는 이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맹자의 성선설에 입장을 달리하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찾아보고자 하였다. 순자는 도덕이나 선,악을 천이나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에 속한 것이요, 사회적인 산물로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규정하며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순자는 배울 수 없고, 힘쓸 수 없고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있는 것을 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성은 인위적인 노력이나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래 바탕으로서 가공되지 않은 것이다. 순자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좋아함, 미워함, 기뻐함, 분노함, 슬퍼함 등의 감정을 성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보고, 이를 정이라고 명명하였다. 순자는 성을 인간 본연의 성질이라 보고, 성에서 자연스럽게 분출한 정이 인간 본연의 성질이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한다. 이후 정이 발생한 후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을 려(慮)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감정이 규범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 그것들이 예의 마땅함을 얻었는지 여부를 분별하여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이 마음의 사려기능이다. | ||
+ | 이제 사람의 성은 태어나면서 이익을 좋아함이 있다. 이에 따라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이 없어진다. 태어나면서 미워하고 싫어함이 있다.<br>이에 따라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겨나고 신의나 충신은 없어진다. <br>태어나면서 귀와 눈의 욕심을 가지고 있으며, 소리와 색깔을 좋아함이 있다. 이에 따라가므로 음란이 생겨나고 예의 문리가 없어진다. <br>그렇다면 인간의 성품을 따르고 인간의 감정에 따라가 버리면 반드시 서로 싸우고 다툼이 생겨나 사회 질서를 깨뜨리고 이치를 어지럽혀 난폭한 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
+ |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知)와 능(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선하게 될 수 있는 내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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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법=== | ||
+ | 순자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가지 감정과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성정을 이기적 측면에서 관찰하여 인간의 성품 속에 이기적 욕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사람의 천성에만 맡겨두면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예의염치를 돌보지 않는다 하였다. 순자는 정과 성을 따르면 어떤 사람이 배고플 때 부모 형제를 제쳐놓고 제가 먼저 먹으려고 하고, 추울 때 따뜻히 하고자 하며, 힘들 때 쉬고자 하므로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다. 성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 천연으로 이루어져서 인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성은 동시에 교정될 가능성이 있다. 성의 가화성(可化性)이 순자의 수양론의 기초이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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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를 악하다고 보아 적극적인 [[화성기위]](化性起爲)가 필요하다고 한다. 순자는 성인과 군자가 성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인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여, 이 인위의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필연적인 [[예의]](禮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순자는 성을 변화시키는 인위의 노력을 예의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래서 순자는 '예의란 성인이 만든 것으로서 우리가 배워서 능하고, 일삼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예는 바로 표지이며, 절도의 표준이라고 하여, 예를 인간 언행의 표준으로 간주하였다. 예는 법의 근본이고, 율조의 강기이며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근본이다. 사람에게 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일의 예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며 나라에 예가 없으면 안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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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는 | + | ===천(天)에 대한 인식=== |
− | <br> | + |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 요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왕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br>거기에 다스림으로 호응하면 곧 길하고, 거기에 혼란으로 호응하면 곧 흉하다 |
− | <br> | + | 순자는 천을 객관적 존재인 자연계로 보는 한편 이러한 자연계는 규칙적으로 운행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객관적 존재로서의 자연계는 인간사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순자는 인간세상의 길흉화복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순자는 천하의 안정됨과 혼란한 문제에 당면하여, 일월성신으로 대표되는 천과 춘하추동으로 대표되는 때와 삶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대지 모두가 천하의 안정됨과 혼란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자는 인간이 농사에 힘쓰고 소비를 절약하며, 건강을 잘 챙기고 시의적절한 운동을 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 천은 인간을 곤궁하게 만들거나 질병이 생기게 만들거나 혹은 재앙에 빠지게 만드는 등의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즉, 순자는 인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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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는 천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한 경계를 구분했다. 이는 인간이 객관적 실재로서의 천과 마주하였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한다.<br> | ||
+ | 순자는 천의 본질을 두가지 측면으로 구분했는데, 한 측면은 천직(天職)과 천공(天功)이고, 다른 한 측면은 천정(天政),천관(天官),천군(天君),천양(天養),천정(天情)이다.<br> | ||
+ | 천공은 이루어 놓은 것은 알지만, 이루어 놓는 방법은 그 형체가 없어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천직은 작위를 가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추구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천의 자연적 의미의 형이상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천을 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천정(天政),천관(天官),천군(天君),천양(天養),천정(天情)은 천이 현상계의 본질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순자는 천의 직무가 성립되고 천의 공적이 이루어진 이후에 이어서 논의를 진행하는 문제들이다.<br> | ||
+ | 순자는 구분을 사용할 때 천과 인간의 구분 만을 처리하지 않고, 천과 천의 구분도 처리했다 할 수 있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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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가 [천인분이(天人分二)]를 말한 것은, 하늘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전국시대의 혼란함을 설명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참고문헌== | ==참고문헌== | ||
− | 종청한, | + | 종청한, 《50인으로 읽는 중국사상》, 임태홍 역, 무우수, 2007 ISBN 978-89-91334-12-0 <br> |
+ | 윤무학, 《통일제국을 위한 비판 철학자 순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2005 <br> | ||
+ | 순자, 《순자》 <br> | ||
+ | 민황기,《순자의 도덕적 인간관》,한국동서철학회,2011.03,261-276(16pages) <br> | ||
+ | 홍원식,《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예문서원,1996 <br> | ||
+ | Won Il Cho,《사상 : 순자(荀子)의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 연구(硏究)》,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퇴계학논총 21권0호,2013.06, 65-90(26pages) | ||
[[분류:인물]] | [[분류:인물]] |
2020년 11월 4일 (수) 14:59 기준 최신판
순자 | |
---|---|
| |
출생 |
B.C 298 |
사망 |
B.C 235 |
관련 활동 | 유가, 성악설 |
생애
순자는 전국시대 조(趙)나라 출신이다. 이름은 황(況)이며, 자는 경(卿)이다.순(荀)과 손(孫)의 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손경(孫卿)이라고도 불렸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이상이 높았으며, 15세에 조나라를 떠나 제(齊)나라 직하에 유학하였다. 직하는 당시 상당히 유명한 학술의 중심으로 천하의 명사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논의하고 정치에 대해 비평하던 학관이다. 순자는 여기서 20여 년간 여러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기원전 286년경, 순자는 제나라에 위기가 다가옴을 감지하고 당시 재상에게 건의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제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기원전 275년 제나라가 잃었던 땅을 되찾고 양왕(襄王)이 임치에 직하를 다시 설치하자, 순자는 제나라로 돌아왔다.
순자는 직하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선생으로서 좨주(祭酒)의 지위를 세번이나 역임했다. 이후 질시와 모함으로 기원전 255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나라에 갔다. 당시 춘신군이 재상이었는데, 순자를 난릉의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어떤 이가 춘신군에게 모함하여, 순자는 사퇴하고 초나라를 떠나 조국인 조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조나라에 돌아와서는 평원군의 상경이 되었지만, 기원전 251년 평원군이 세상을 떠났다. 후에 춘신군이 거듭 지난 일을 후회하면서 초빙하자, 순자는 이에 다시 초나라로 가서 난릉의 수령 지위에 올랐다. 기원전 238년 춘신군이 피살되고 순자 또한 난릉의 수령에서 파면되었다. 당시 대략 91세가 된 순자는 저술을 통해 자신의 학설을 정리하는 데 힘을 기울이다 기원전 235년경 세상을 떠났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순자는 난릉에 매장되었다.
중심사상
인간관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되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전국시대의 말기는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했었으며, 비인간적인 시대 상황이었다. 순자는 이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맹자의 성선설에 입장을 달리하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찾아보고자 하였다. 순자는 도덕이나 선,악을 천이나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에 속한 것이요, 사회적인 산물로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규정하며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순자는 배울 수 없고, 힘쓸 수 없고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있는 것을 성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성은 인위적인 노력이나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래 바탕으로서 가공되지 않은 것이다. 순자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좋아함, 미워함, 기뻐함, 분노함, 슬퍼함 등의 감정을 성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보고, 이를 정이라고 명명하였다. 순자는 성을 인간 본연의 성질이라 보고, 성에서 자연스럽게 분출한 정이 인간 본연의 성질이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한다. 이후 정이 발생한 후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을 려(慮)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감정이 규범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 그것들이 예의 마땅함을 얻었는지 여부를 분별하여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이 마음의 사려기능이다.
이제 사람의 성은 태어나면서 이익을 좋아함이 있다. 이에 따라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이 없어진다. 태어나면서 미워하고 싫어함이 있다.
이에 따라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겨나고 신의나 충신은 없어진다.
태어나면서 귀와 눈의 욕심을 가지고 있으며, 소리와 색깔을 좋아함이 있다. 이에 따라가므로 음란이 생겨나고 예의 문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품을 따르고 인간의 감정에 따라가 버리면 반드시 서로 싸우고 다툼이 생겨나 사회 질서를 깨뜨리고 이치를 어지럽혀 난폭한 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知)와 능(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선하게 될 수 있는 내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양법
순자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가지 감정과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성정을 이기적 측면에서 관찰하여 인간의 성품 속에 이기적 욕망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사람의 천성에만 맡겨두면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예의염치를 돌보지 않는다 하였다. 순자는 정과 성을 따르면 어떤 사람이 배고플 때 부모 형제를 제쳐놓고 제가 먼저 먹으려고 하고, 추울 때 따뜻히 하고자 하며, 힘들 때 쉬고자 하므로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다. 성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 천연으로 이루어져서 인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성은 동시에 교정될 가능성이 있다. 성의 가화성(可化性)이 순자의 수양론의 기초이다.
순자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를 악하다고 보아 적극적인 화성기위(化性起爲)가 필요하다고 한다. 순자는 성인과 군자가 성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인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여, 이 인위의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필연적인 예의(禮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순자는 성을 변화시키는 인위의 노력을 예의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래서 순자는 '예의란 성인이 만든 것으로서 우리가 배워서 능하고, 일삼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예는 바로 표지이며, 절도의 표준이라고 하여, 예를 인간 언행의 표준으로 간주하였다. 예는 법의 근본이고, 율조의 강기이며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근본이다. 사람에게 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일의 예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며 나라에 예가 없으면 안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천(天)에 대한 인식
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 요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왕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다스림으로 호응하면 곧 길하고, 거기에 혼란으로 호응하면 곧 흉하다
순자는 천을 객관적 존재인 자연계로 보는 한편 이러한 자연계는 규칙적으로 운행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객관적 존재로서의 자연계는 인간사와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순자는 인간세상의 길흉화복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순자는 천하의 안정됨과 혼란한 문제에 당면하여, 일월성신으로 대표되는 천과 춘하추동으로 대표되는 때와 삶과 죽음으로 대표되는 대지 모두가 천하의 안정됨과 혼란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자는 인간이 농사에 힘쓰고 소비를 절약하며, 건강을 잘 챙기고 시의적절한 운동을 하고, 올바른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 천은 인간을 곤궁하게 만들거나 질병이 생기게 만들거나 혹은 재앙에 빠지게 만드는 등의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즉, 순자는 인간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순자는 천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한 경계를 구분했다. 이는 인간이 객관적 실재로서의 천과 마주하였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한다.
순자는 천의 본질을 두가지 측면으로 구분했는데, 한 측면은 천직(天職)과 천공(天功)이고, 다른 한 측면은 천정(天政),천관(天官),천군(天君),천양(天養),천정(天情)이다.
천공은 이루어 놓은 것은 알지만, 이루어 놓는 방법은 그 형체가 없어 알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천직은 작위를 가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추구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으로, 이러한 것들은 천의 자연적 의미의 형이상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천을 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천정(天政),천관(天官),천군(天君),천양(天養),천정(天情)은 천이 현상계의 본질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순자는 천의 직무가 성립되고 천의 공적이 이루어진 이후에 이어서 논의를 진행하는 문제들이다.
순자는 구분을 사용할 때 천과 인간의 구분 만을 처리하지 않고, 천과 천의 구분도 처리했다 할 수 있다.
순자가 [천인분이(天人分二)]를 말한 것은, 하늘과 인간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전국시대의 혼란함을 설명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종청한, 《50인으로 읽는 중국사상》, 임태홍 역, 무우수, 2007 ISBN 978-89-91334-12-0
윤무학, 《통일제국을 위한 비판 철학자 순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2005
순자, 《순자》
민황기,《순자의 도덕적 인간관》,한국동서철학회,2011.03,261-276(16pages)
홍원식,《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예문서원,1996
Won Il Cho,《사상 : 순자(荀子)의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 연구(硏究)》,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퇴계학논총 21권0호,2013.06, 65-90(26p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