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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신좌파의 주장은 기존의 주장과는 다른 파격적인 주장이다. 때문에 신좌파에 대한 비판 또한 아주 거세다. 어느 비판은 매도에 가깝기도 한데, 신좌파의 대다수는 문화대혁명 시절 아이들로, 당시의 혁명에 대한 뼈저린 체험이 없어서 그런 세월 속에서 합리적 요소를 찾으려 한다는 비판 또한 있다. 『고별혁명』으로 유명한 리쩌허우李泽厚는 90년대 지식계를 자유주의/인민주의로 양분한다. 그리고는 신좌파의 인민주의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과격해지만 혁명에 호소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양춘스阳春时는 왕후이의 국제자본에 대한 거부 주장에는 민족주의가 숨어있으며 기존의 자본화 사회를 우회하여 근대성을 실현하자는 주장은 인민주의라고 비판한다. 즉, 서구 자본주의 비판을 민족주의의 발로로, 평등, 경제 민주를 인민주의로 보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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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 왕띵띵汪丁丁의 비판은 자유주의적 입장이다. 그는 보편주의가 민족주의보다 낫고,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보다 낫다고 말하며 계몽주의의 보편주의 이성과 개인주의적 자유가 중국에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또한 발전주의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왕후이의 비판에는 발전과 경제발전은 중국 인민들의 보편적 요구이며 낙후되면 당한다는 세계사의 보편법칙 속에서 중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타오뚱펑陶东风은 신좌파의 주장 중, 근대성의 차원에서 중국 사회주의를 해부한 것과 중국 내 기득권 세력이 다국적 자본과 결탁하는 등의 문제 지적은 신좌파의 성과라고 본다. 하지만 신좌파의 편향을 지적하는데, 이들이 자본주의 근대에 대해서는 여지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근대에 대해서는 미화하거나 전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고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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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오우판李欧梵은 신좌파의 관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두 가지에 불만이다. 그는 왕후이가 자본주의 시장의영향력을 강조하는 점은 옳지만 그것이 중국의 환경에서 어떤 변화를 낳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수평적 사고의 부족이다. 중국인들은 동/서보다 중/서라는 표현을 쓰듯, 서구와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만 세계질서를 사고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병폐가 신좌파 들의 무의식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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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8일 (월) 16:00 판
본 문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신좌파(New Left)가 아닌 90년대 말부터 대두된 중국의 신좌파新左派를 다룬다.
목차
개요
90년대 말 등장하게된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그룹.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사상 조류를 대표한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중국 내의 계몽이 서구화와 동일시되었음을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한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국의 역사 속에 존재함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주의/ 서양과 중국/ 전통과 현대의 낡은 이분법을 넘어서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모색한다. 엄밀히 말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기 보다는 중국의 현실과 마오 사회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평가에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분류되고 있으나 신좌파에 대한 논란은 왕후이와 추이즈위안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왕후이는 본래 루쉰 연구자로서 중국 문학의 근대성 문제를 탐구했지만, 최근에는 근대 '과학주의'아 '개인' 등의 근대성 관념이 중국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 공과는 무엇인지를 따지고 있다. 즉, 중국 근대성에 대한 탐구이다. 반면, 추이즈위안은 경제문제, 특히 경제 민주 문제에 천착하면서 마오쩌둥 사상과 마오 시대 경제 정책 속의 들어 있는 합리적인 요소를 부활시켜 경제 민주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90년대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 중국 사회 변혁에 대한 전망 등에 있어서 자유주의와의 논쟁을 벌였는데, 크게 1. 부패와 사회 불공정의 원인, 2. 세계화와 WTO가입에 대한 태도, 3. 중국의 과거 역사에 대한 평가 등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신좌파는 자본화 되어가고 있는 중국을 보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근대를 넘어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모색하려는 사상적 지향이라고 볼 수 있다.
신좌파의 대두 배경
세대적 특징
신좌파의 연령대는 대게 50년대 후반(왕후이 1959년생)에 태어났거나 60년대 초반(추이즈위안 1963년생)에 출생한 세대가 다수이다. 이들은 문화대혁명(1966~1976)시기 직접적으로 이에 가담하거나 수난을 겪지는 않았으며 대게 이 시기 중학교를 마친 세대들이다. 문혁 시기의 교육을 받았고 문혁에 직접적이지는 않았을 지언정 목격자로서의 경험은 가지고 있다. 문혁의 종결 이후, 80년대 신계몽시기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80년대 중국으로 물밀듯 밀려온 서구 사상들을 받아들인 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1989년 천안문 운동에 각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마오쩌둥 시대의 직접적인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사회주의와 등소펴 시대를 모두 겪었으며(그리고 겪고 있으며) 때문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달고 쓴 모든 것을 맛보아 둘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떄문에 이들은 두 체제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모색 중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서구 유학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의 사상은 서구의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세대로의 구별은 대부분 인물들의 특징일 뿐이고 신좌파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이들이 1990년대 중국을 보는 시각이다.
1980년대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 중국의 지식계는 억눌렸던 분위기에서 해방되어 사상적 해방을 맞이하였다. 이를 '신계몽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계몽주의는 전통, 봉건주의 비판, 현실사회주의 비판하였으며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을 받아들이고 중국을 세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것에 찬성하였다. 신계몽주의는 중국 사회의 문제들을 모두 전통의 문제로 간주하였으며 이를 서구의 계몽으로 극복할 것을 제안하였다. 마오의 사회주의를 전통이란 이유로 반봉건의 구호 아래 전면적으로 부정하였고 이후의 중국이 걸어갈 길을 서구의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실현으로 보았다. 이 시기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이 유명 다큐멘터리 하상[河殇]이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개혁개방의 결과가 빚어 낸 중국의 현실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진행되면서 개혁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 중국 사회의 성격, 시장 경제와 사회공정, 자유와 평등, 민주, 중국의 근대화 노선 등에 대하여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과 견해의 극렬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 시기 지식인의 분화와 신좌파의 대두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왕후이의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当代中国思想的状况与现代性问题)」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창비에서 나온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하다』에 번역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든 왕후이의 글이 그렇듯 처음에 읽으면 굉장히 난해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원본과 대조해서 같이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냥 왕후이의 글이 그렇다.....)
사회적 배경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중국 사회의 모습은 나날이 변했다. 자본은 사회의 모든 곳에 침투하였고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의 완전히 편입되는 듯 보였다. 상기하였듯 80년대 지식인들은 문혁으로 대표되는 마오 시기 사회주의를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반봉건 근대화'의 사상적 입지를 찾았다. 이들은 중국/서구, 자본주의/사회주의 식의 이분법 적인 인식으로 중국 사회를 보았고, 서구 자본주의의 근대성을 유일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자 90년대에는 80년대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식인들은 89년대 사상운동을 재점검하고 중국 근대사와 근대성을 재검토하며 새로운 중국학 건립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국학 열풍과 근대 연구 열기는 이런 배경 하에서 나왔다. 각종 포스트 담론 열기가 일기도 하였다. 1990년대 지식계는 1980년대와 다른 사상적 전환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신좌파는 등장하였다 하지만 신좌파의 비판은 비슷한 시기 나타난 '국학파'나 '포스트'주의자들과는 달리 80년대의 신계몽주의 뿐만 아니라 이것의 연장이나 발전으로서의 90년대 자유주의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좌파의 주요 사상적 경향
(신)계몽주의와 자유주의 비판
왕후이는 중국에서 가장 활력 넘치던 사상적 자원이었던 계몽주의는 80년대에는 문혁을 비판하며 활력을 주던 사상자원이었으나 이제는 현재 중국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평했다. 그 이유는 이미 중국이 자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자본화를 주장하면서 마오쩌둥 시기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데에는 역사적 능동성이 존재하였지만, 자본화된 90년대 중국에서 파생하는 현실 문제들을 만나고 나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왕후이는 신계몽주의적 입장이 자본의 운동과정, 시장과 사회, 국가의 상호 침투와 상호 갈등에 대한 분석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신좌파의 주요 비판 대상은 사회과학에서 주류를 점하고 있는 자유주의 사조이다. 1990년대의 자유주의는 80년대 신계몽주의의 발전으로서 '시장만능론'과 경제의 발전이 민주를 가져다줄 것이다.라는 경제 지상주의, 발전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 신좌파의 한 인물인 한위하이가 보기에 중국 자유주의자들은 자본 주도의 시장경제를 자유의 상징으로 본다. 이들은 하이에크 식의 보수적 자유주의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왕후이는 이들의 '경제 발전이 민주를 가져온다'는 식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는 시장경제의 발전이 정치민주화의 동력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개방이 중국 사회 민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발전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압도한 채 유일한 목표가 되었는데 발전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제, 정치적 개혁 요구 등이 묵살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간양의 비판은 더 직설적이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와 평등을 부정하고 자유를 모든 사람의 특권이 아닌 소수인의 특권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는 부자, 강자, 능력있는 자들의 자유이며 약자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자유주의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신좌파와 자유주의자들 사이에는 몇 차례의 논쟁이 전개되었었다. 물론, 현재는 자유주의가 대세이다.
마오쩌둥 재평가
신좌파가 다른 사상적 조류와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은 마오 사상과 마오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에 있다. 신좌파의 마오쩌둥 재평가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근대성과 마오쩌둥 사상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 다른 하나는 마오쩌둥 경제발전 전략에 대한 재검토이다. ①번 작업은 왕후이를 비롯한 문학 연구자들이 ②번 연구는 추이즈위안과 같은 경제학 전공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서구자본주의를 넘어선 또 다른 근대를 중국 변혁의 길로 보고 있다.
우선, 쾅신넨旷新年은 "마오의 시대가 없었다면 덩 시대의 탄생도 불가능했다"고 선언한다. 마오는 "근대성이 지닌 모순의 내부 속으로 들어가 근대 사회의 문제를 사고했다"는 것이다. 이는 80년대의 마오 인식과 상반되는 것인데, 그 시기 지식인들에게 마오는 봉건이자 전근대였고, 그들에게 근대는 오직 서구 자본주의 근대였다. 신좌파가 마오의 시대를 근대로 설정함으로서 다원적 근대가 형성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마오의 근대는 서구의 근대성과는 다른 근대성이다. 왕후이의 말장난 같은 주장, "반자본주의 현대성의 현대성 이론"은 다시 말해,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크게 보면 근대를 지향하는 근대 이데올로기이지만, 자본주의 근대에 대한 비판과 거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즉, 자본주의 근대성을 초월한 새로운 근대성의 창출을 기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왕후이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근대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매우 폭넓고 심층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루쉰,쑨원, 마오쩌둥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 근대를 넘어 새로운 근대성을 창출하려고 하였었다. 신좌파는 이렇게 중국 근대성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의 기본 줄기를 다시 세우고 있다.
한편 경제영역에서의 마오쩌둥 시대에 대판 재검토는 추이즈위안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다. 그는 신진화론을 통해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신진화론은 자연 도태의 결과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며 자연 선택에 의해 도태된 것처럼 보이는 제도가 지닌 합리적인 요소가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시 재생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이 있듯,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서구 자본주의가 적자로서 생존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마오쩌둥 사상이 지금은 도태된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중국의 현실은 그것이 지닌 합리적 유전자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왕후이 등이 혁명 사상으로서 마오쩌둥 사상에 주목한다면,추이즈위안은 그것이 권력이 된 뒤, 마오쩌둥의 경제 운용 방식, 마오식의 근대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신좌파에 대한 비판
위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신좌파의 주장은 기존의 주장과는 다른 파격적인 주장이다. 때문에 신좌파에 대한 비판 또한 아주 거세다. 어느 비판은 매도에 가깝기도 한데, 신좌파의 대다수는 문화대혁명 시절 아이들로, 당시의 혁명에 대한 뼈저린 체험이 없어서 그런 세월 속에서 합리적 요소를 찾으려 한다는 비판 또한 있다. 『고별혁명』으로 유명한 리쩌허우李泽厚는 90년대 지식계를 자유주의/인민주의로 양분한다. 그리고는 신좌파의 인민주의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과격해지만 혁명에 호소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양춘스阳春时는 왕후이의 국제자본에 대한 거부 주장에는 민족주의가 숨어있으며 기존의 자본화 사회를 우회하여 근대성을 실현하자는 주장은 인민주의라고 비판한다. 즉, 서구 자본주의 비판을 민족주의의 발로로, 평등, 경제 민주를 인민주의로 보는 것이다.
한편, 왕띵띵汪丁丁의 비판은 자유주의적 입장이다. 그는 보편주의가 민족주의보다 낫고,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보다 낫다고 말하며 계몽주의의 보편주의 이성과 개인주의적 자유가 중국에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또한 발전주의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왕후이의 비판에는 발전과 경제발전은 중국 인민들의 보편적 요구이며 낙후되면 당한다는 세계사의 보편법칙 속에서 중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타오뚱펑陶东风은 신좌파의 주장 중, 근대성의 차원에서 중국 사회주의를 해부한 것과 중국 내 기득권 세력이 다국적 자본과 결탁하는 등의 문제 지적은 신좌파의 성과라고 본다. 하지만 신좌파의 편향을 지적하는데, 이들이 자본주의 근대에 대해서는 여지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근대에 대해서는 미화하거나 전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고 본다.
리오우판李欧梵은 신좌파의 관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두 가지에 불만이다. 그는 왕후이가 자본주의 시장의영향력을 강조하는 점은 옳지만 그것이 중국의 환경에서 어떤 변화를 낳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수평적 사고의 부족이다. 중국인들은 동/서보다 중/서라는 표현을 쓰듯, 서구와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만 세계질서를 사고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병폐가 신좌파 들의 무의식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인물
관련문서
- 현대성
-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 当代中国思想的状况与现代性问题
참고문헌
- 이욱연, 『세기말 중국 지식계의 새로운 동향-'신좌파'를 중심으로』, 실천문학,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