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무방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이란?)
(정(鼎)에 대하여)
4번째 줄: 4번째 줄:
  
 
===정([[鼎]])에 대하여===
 
===정([[鼎]])에 대하여===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에서 말하는 정(鼎)은 본래 발이 3개 달린 솥을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귀가 달린 둥글거나 장방형의 불룩한 몸통이 있는 요리솥의 형상인 것이다. 솥이기 때문에 원래의 용도는 취사도구였고, 제작 재료 역시 처음에는 나무와 토기 등 가벼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나라 귀족들은 제사를 지낼 때나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서 청동으로 주조했고, 일반적인 대중들은 나무나 토기로 만든 용기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ref>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p.206~207.</ref> 이러한 상나라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정(鼎)에서 방정(方鼎)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처음에 둥근 형태에 발이 3개 달린 모습에서 이후 사각형의 형태에 발이 4개 달린 모습으로의 변화는 일반 사람들의 사용한 용기의 일종에서 고유한 제사용기로 바뀐 것이고, 나아가 국가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정(鼎)이 국가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은 [[하]](夏)나라 우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왕은 나라를 아홉 개의 성으로 나누고 각 성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을 만들도록 했다는 점에서 '구정(九鼎)'이 군왕과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f>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p.208.</ref>
+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에서 말하는 정(鼎)은 본래 발이 3개 달린 솥을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귀가 달린 둥글거나 장방형의 불룩한 몸통이 있는 요리솥의 형상인 것이다. 솥이기 때문에 원래의 용도는 취사도구였고, 제작 재료 역시 처음에는 나무와 토기 등 가벼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나라 귀족들은 제사를 지낼 때나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서 청동으로 주조했고, 일반적인 대중들은 나무나 토기로 만든 용기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ref>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p.206~207.</ref> 이러한 상나라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정(鼎)에서 방정(方鼎)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처음에 둥근 형태에 발이 3개 달린 모습에서 이후 사각형의 형태에 발이 4개 달린 모습으로의 변화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한 용기의 일종에서 고유한 제사용기로 바뀐 것이고, 나아가 국가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정(鼎)이 국가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은 [[하]](夏)나라 우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왕은 나라를 아홉 개의 성으로 나누고 각 성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을 만들도록 했다는 점에서 '구정(九鼎)'이 군왕과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f>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p.208.</ref>
  
 
===어떻게 제작했을까?===
 
===어떻게 제작했을까?===

2020년 12월 19일 (토) 13:17 판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이란?

사모무방정.jpg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은 1939년 하남성(河南省) 안양시(安阳市) 무관촌(武官村)에서 출토된 (商)나라 후기 주요 청동기 중 하나이다. 현재는 중국국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무게는 832.84kg이고, 높이는 133cm이며 길이는 110cm에 달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은 세계 최대의 청동기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어마무시한 크기의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을 자세히 보면 모양이 굉장히 정교하고, 하단에는 4개의 발이 무거운 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의 모습은 상나라 시기의 주조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며, 학자들은 상나라 시대의 물질문명이 오히려 후대인 주나라보다 발달해 있었다고 말한다.[1]

정()에 대하여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에서 말하는 정(鼎)은 본래 발이 3개 달린 솥을 말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귀가 달린 둥글거나 장방형의 불룩한 몸통이 있는 요리솥의 형상인 것이다. 솥이기 때문에 원래의 용도는 취사도구였고, 제작 재료 역시 처음에는 나무와 토기 등 가벼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나라 귀족들은 제사를 지낼 때나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서 청동으로 주조했고, 일반적인 대중들은 나무나 토기로 만든 용기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2] 이러한 상나라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정(鼎)에서 방정(方鼎)이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처음에 둥근 형태에 발이 3개 달린 모습에서 이후 사각형의 형태에 발이 4개 달린 모습으로의 변화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한 용기의 일종에서 고유한 제사용기로 바뀐 것이고, 나아가 국가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정(鼎)이 국가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은 (夏)나라 우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왕은 나라를 아홉 개의 성으로 나누고 각 성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을 만들도록 했다는 점에서 '구정(九鼎)'이 군왕과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어떻게 제작했을까?

그렇다면 세계 최대의 청동기라는 수식이 붙는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먼저 상나라의 도가니는 하나에 불순물을 제거한 약 12.7kg의 순 청동액을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을 주조하려면 70, 80개의 도가니를 동시에 가열하여 청동액을 만들어 계속해서 주형에 부어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톤에 달하는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은 완성되지 못하고 깨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에 불을 때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청동을 용해하고, 용광로의 온도를 측정하고, 재료를 운반하고, 청동액을 붓는 등의 엄청난 작업이 필요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4] 다음은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을 제조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이다. '처음에 동광석 3~6톤을 준비해서 잘게 부순 다음 목탄을 섞어서 풍구로 바람을 넣으며 10시간 동안 가열한다. 이를 통해 동(銅)을 추출하고 다음에는 진흙으로 틀을 구워 주조한다. 이 때 다시 대규모의 목재가 필요한데 목탄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나무 3톤이 필요하고, 또 이를 10시간 가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나무가 필요하다. 상나라 시기의 도가니를 가지고 이 정(鼎)을 제작한다면 동광을 녹여내는데만 두 달 이상이 걸렸을 것이다. 채광과 운반작업을 고려하면 필요한 노동시간은 배가됐을 것이다. 호북성의 고대 광산인 동록산(銅绿山)에서 채굴된 광석으로 1년 동안 주조한 동의 양을 겨우 100톤 정도로 보고 있으니 채굴은 제련보다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광산이 20km밖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가정해도 동물 20마리가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하는 거리이다.....'[5]

시대문화적 가치

위와 같은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의 제작 과정을 보면 이 유적이 상나라 그리고 청동기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굉장한 가치를 가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상나라를 망국으로 가게 한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청동기의 주조는 중국에서 독자적이고 자생적으로 발달한 것으로서 주조기술이나 정교함에서 현재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그 청동기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나라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나라의 청동기는 후대인 주나라와 달리 강력한 신정(神政)통치를 행한 상나라의 국가관을 보여주는데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6]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을 제작하는 데 소요됐던 노동력은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위에 언급된 제작 과정속의 노동 착취는 상나라 시기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상의 신정(神政)에서 주의 천명(天命)으로 바뀌게 된 은주혁명(殷周革命)을 가속화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1.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p31.
  2.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p.206~207.
  3.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p.208.
  4.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p.143.
  5. 공원국, 『춘추전국이야기 1 춘추의 설계자, 관중』, 위즈덤하우스, 제2장 역사의 시작과 주나라의 탄생 - 2. 혁명과 주周의 탄생
  6.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pp.2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