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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하() 기원전 2070년 - 기원전 1600년으로 추정됨

기원전 2070년 (禹)가 (舜)의 직위를 물려받았으니 이는 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우는 하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의 부락을 "夏"라고 칭한다. 우의 사후에 그의 아들 계(啓)는 순의 선양 제도를 타파하고 부자 계승의 왕조 제도를 제정하였으며, 이로부터 중국 역사상 첫번째의 왕조인 하가 출현하게 된다. 하 왕조의 정치 조직 제도는 비교적 간단하였는데, 천체사계天體四季를 책임지도 관찰하는 희씨 羲氏, 화씨 和氏, 정사를 관리하는 목정 牧正, 차정 車正, 포정 庖正과 전문적으로 죄인을 감금하는 곳인 '하대 夏臺'가 있었다고 한다.

하남의 언사 偃師 이리두(二里頭)의 하 왕조 유적지 안에서 수많은 돌삽, 돌도끼, 조개칼, 나무쟁기 등의 농기구가 발굴되었으며, 또한 적지 않은 청동제의 병기와 공구 등도 발굴되었다. 도기로는 작 , 고 , 정 , 두 , 관 등의 기물들이 발견되었다.

하 왕조의 농업은 상당히 발달되었기에 당시에 이미 곡물인 쌀, 보리, 콩, 오이 등의 각종 농산품이 있었다. 하 왕조는 '오십이공 五十而貢'의 세금 제도를 실행했으니, 후세의 정전 井田 제도는 하 왕조 때에 이미 출현한 것이며, 단지 대규모로 확대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역사

하 왕조 세계표
우禹 - 계啓 - 태강太康 - 중강仲康 - 상相 - 소강少康 - 여予 - 괴槐 - 망芒 - 설泄 - 불강不降 - 경扃 - 근厪 - 공갑孔甲 - 고皐 - 발發 - 걸桀

우의 아들인 계는 선양 제도를 바꾸고 부자 세습의 왕조 제도를 처음 만들었으며 이 때부터 중국 역사상 첫번째 왕조인 하 왕조가 출현했다고 본다. 기원전 1600년 桀王(걸왕)을 마지막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니 총 13대 16왕이 재위하였고 그 기간은 총 470년이다.

대사년표 大事年表
기원전 2070년

우가 순 임금을 대신하여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됨. 계 재위시 우의 아들 계는 선양 제도를 개혁하여 정권을 탈취하고, 부자 세습 제도를 창시한다. 계는 제후들과 하남 우주 禹州와 균대 鈞臺에서 회맹하고 유호씨 有扈氏를 멸한다.

태강 재위시

태강이 계를 계승하여 천자가 되었으나 조정이 혼란하자 유궁씨 有窮氏의 수령인 이예 夷羿가 기회를 틈타 태강을 몰아낸다.

상 재위시

이예가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가신 한착 寒浞에게 죽임을 당함. 한착은 또 하의 왕 상을 살해하니 상의 왕비가 친정으로 도망가 거기서 소강을 낳는다.

소강 재위시

소강이 백미 伯靡의 도움 아래 과요 過澆를 죽이고 하 왕조를 중흥시킨다.

여 재위시

소강의 아들인 여가 천자의 자리를 계승한 후, 동이 東夷를 정벌하고 동해까지 나아간다.

괴 재위시

여의 아들인 괴가 즉위하니, 구이 九夷가 모두 알연함, 괴는 환토 圜土(감옥을 뜻함)를 세운다.

제발 7년

태산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최초의 지진 기록이다.

제걸 원년

이계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제걸이다.

기원전 1600년

상탕 商湯이 하 왕조를 멸한다.

부자 세습의 족벌 체제

우의 치수 성공으로 위엄과 명망이 높아지고 나이가 든 순 임금은 우에게 자신의 천자의 자리를 계승시킬 것을 확정하였다. 순 임금이 죽은 후 우는 순의 아들인 상균 商均에게 양보하려 했으나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우를 추대하였다. 그래서 기원전 2070년, 우는 양성 陽城 (지금의 하남성 등봉 동남쪽)에서 천자로 즉위하고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된 것이다. 우가 통치를 한 후 각 부족의 진일보해 융합과 통일을 가져왔고 이 당시 부터 중화민족은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씨족 부락에 그치지 않고, 보다 고급의 다부족 융합체의 화하 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게 해준다.

우의 사후, 선양제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현명한 백익 伯益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우의 아들 계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계는 천하가 자신의 아버지 하우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해 놓은 것으로 이미 자기 집안의 사유재산임을 언명하고, 아버지가 죽었으니 사유 재산은 마땅히 아들인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계는 무력을 사용하여 백익을 기산의 남쪽으로 내몬 후에 균대 均臺(지금의 하남 우주)에서 대규모의 연회를 거행하고 자신이 하 왕조의 제2대 왕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이때부터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천하를 물려주던 공천하제도(公天下制度)는 계로 인하여 파괴되었으며 부자 제습 또는 형제 상속의 족벌 체제로 급변하였다.

나라를 부흥시킨 소강 少康

계의 아들인 태강이 향락에 탐닉하자 국가의 통제권을 동이족의 수령인 이예에게 빼앗기고 태강의 동생인 중강이 괴뢰왕으로 옹립된다. 그러나 이예 자신도 사냥과 오락을 좋아하고,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데에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예는 다시 그의 부하인 한착에게 죽임을 당하고 한착이 국가를 장악한다.
이 과정 중에 괴뢰왕으로 옹립된 중강은 우울함에 금방 죽어버리고 그의 아들 상이 왕위를 계승하나 상 역시 괴뢰왕 노릇하기가 싫어 도망을 가버린다. 상의 아내 후민은 이 때 임신중이었는데, 그녀는 상을 죽이려는 한착의 부하들을 피해 친정집으로 가서 의지하게 되는데 거기서 후민은 아들을 낳게 되니 그 자의 이름이 바로 소강이다.

소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꾀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후민은 아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철이 들 무렵부터 선조의 역사를 가르치고 어른이 될 때 반드시 원수를 갚을 것을 당부하였다. 이런 교육 탓인지 소강은 발분노력하여 강해지기를 도모하고 하 왕조를 부흥시킬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친정집인 유잉씨의 부락 안에서 관리직을 거쳐 통치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어느덧 윤이라는 지역에 땅을 얻고 5-6백여명의 사병을 거느릴 정도로 하 왕조를 다시 부활할 근거지와 무장 세력을 갖추게 된다.

이예와 한착에 의해 멸문한 세력들을 규합하고 세력을 하나로 모아 소강은 자기 근거지인 윤에서 기병하여 하 왕조의 옛 성읍인 안읍 安邑으로 쳐들어갔다. 이 때 한착은 이미 죽었고 그의 부하인 과요는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대세는 이미 소강에게 기울었고 과요는 결국 소강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천하는 다시 하우의 자손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소강이 나라를 부흥시켰다." 少康中興이라고 부른다.

나라를 망친 하의 걸왕 桀王

桀은 하 왕조의 제 16대 군주로 중국 역사상 유명한 폭군이다. 그는 왕위를 계승한 후에 자신의 궁궐이 너무 협소한 것을 싫어하여, 곧 낙양 洛陽에 경궁을 크게 짓게 하였다. 이 궁궐은 7년의 공사 끝에 비로소 완공이 되었으며, 수천만 명의 노예를 동원하였다. 대량의 재력과 재물을 이런 일에 낭비하였으니 결국 백성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게되었다.
또한 걸왕은 여색을 탐닉하여 후궁의 미녀들이 매우 많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총애한 것은 바로 말희 妺喜였다. 말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는데 한 일화에 따르면 말희가 음악에 싫증을 느끼고 비단 찢는 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자 걸왕은 전국의 대량의 비단을 징집하도록하고 경궁에 쌓아 사람을 시켜 계속 비단을 찢게하고 말희의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음식에도 무척 욕심이 많았던 걸왕은 산해진미를 모두 먹고자 하였다. 또한 술도 좋아하였는데 특이한 버릇으로 그는 반드시 맑디 맑은 술만을 마셨다고 한다. 혹시 조금이라도 술이 탁하면 바로 주방장을 죽였을 정도였다. 술에 취해 사람을 말처럼 타고 놀면서 매로 때리고 죽이기까지하며 극도로 방탕한 날들을 보냈다.
그는 또한 아부하는 자들을 좋아하고 직언하며 규범을 지키는 충신들을 멀리하였다. 관용봉 關龍逢이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걸왕의 그릇된 행동을 보고 늘 그에게 개과천선하기를 권하였다. 하지만 걸왕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나중에가서는 그를 죽여버리고 만다. 이렇게 되자 충신들은 다시는 걸왕 주변에 있으려 하지않고 벼슬을 버리고 떠나는 등 걸왕 주변에는 간신들만이 주위에 가득했고 하 왕조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부패해져만 갔다.

하 왕조 세력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걸어갈 무렵, 황하 하류의 상 商이라는 부락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상 부락의 수령인 탕 湯은 걸왕이 수많은 백성들의 반대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민심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하 왕조를 공략할 준비를 하였다.
걸왕은 상 부족의 탕의 이러한 낌새를 알고는 하 왕조에 복속되어 있는 3개 소국가에 병력을 요청하였으나 탕은 미리 이럴 것을 예측하여, 먼저 3개국에 병력을 파병해 멸망시키고 나중에 가서는 직접 하 왕조의 중요 도시인 명조까지 치고 들어갔다. 걸왕이 친히 병력을 이끌고 명조까지 가서 응전했지만 그의 사병들은 모두 걸왕의 지휘를 듣지 않고 도망가거나 투항하기 바빴다.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는 걸왕은 낙양으로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3개 소국가 중 하나인 곤오국에 잠시 의탁하였다. 이후 탕이 승세를 타고 곤오국까지 쳐들어가 멸망시키는 것으로 하 왕조는 끝나게 된다.

문화

하 왕조가 활동했던 중심 지역은 하남의 서부와 산서 남부 지역으로 이 지역의 기후는 온난하고 토양은 기름져서 농경에 아주 적합하다. 우 임금 시대에 오랫동안 홍수와 투쟁을 하였기에 수해의 환난도 제거되고 관개 공사도 건설되어 농업 생산의 발전에 유리하였다. 농업 생산의 발전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이미 최초의 천문 역법 지식을 장악하고 실천하였다. 문헌 중에 "하 나라 때의 시간"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전국시대에 전하던 <하소정 夏小正>이라는 책이 부분적으로 하 왕조 시대에 이미 축적된 천문 역법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하 대의 국왕 중에 어떤 이들은 이미 간지로 이름을 지었으니 예를 들면 공갑孔甲,계啓 등이 있는데 이는 당시에 이미 간지로 날짜를 기록하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목축업 또한 당시에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수많은 노예가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전문적으로 목축업을 관리하는 관리도 있었으니 이들을 목정 牧正이라고 했다. 수공업 생산도 이전에 비해 규모가 더욱 확대되었고 기술 역시 향상되었다. 청동기의 주조 등 새로운 생활이 출현하여 하 대에는 이미 청동기 시대로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고고학 자료 중에서도 이 시기의 청동기 찌꺼기나 주조할 때 남은 파편이나 작은 청동기 제품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고 청동기 제련 기술의 발명은 이후 생산력에 아주 큰 촉진 역할을 한다.

특히 주목해봐야할 점은 점치는 일에 전업하는 무당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생산 노동에서 벗어나 사람과 신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담당했는데, 동시에 그들으 고대 문화의 장악자이며 전수자이다. 전문적인 무당들의 재현은 이 때에 이미 정신적인 노동과 육체적인 노동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러한 분리는 생산력이 아주 낮았던 상황에 몹시 커다란 진보적 의의를 지니며, 과학과 문화 예술을 전문적으로 담당함으로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이리두 二里頭 문화

하남성 언사 서남쪽 약 9km 되는 곳에 이리두라는 촌락이 하나 있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곳에서 동서 길이 2.5km, 남북 너비 1.5km의 대규모의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유적지에서는 풍부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도기 작품만 하여도 360여점에 이르며, 각종 작은 기물도 7천여 점에 달한다. 그 중에서 농기구, 어렵도구, 수공업 기구와 각종 무기, 또 중국 최초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사람들은 주목을 끄는 것은 유적지 중부에서 발견된 거대한 면적의 토대이다. 토대 위에는 대형의 궁전 유적지가 있는데 이 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국 최초의 궁전 건축물이다.

후에 예서 豫西, 진남 晋南 지역에서 이리두 유적지의 문화 양상과 똑같은 유적이 몇십 군데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적지 중에 가장 전형적인 것은 이리두 유적지이다. 면적도 가장 크고 유물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문화 유적을 통칭 '이리두 문화'라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연구 실증에 의하면 이리두 문화가 바로 사람들이 찾고자 했던 하 夏의 문화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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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사학회, 강영매, 중국통사(1) 선사시대 - 동한, 서울: 범우사, 2008.
  • 유정희, 하왕조, 신화의 장막을 걷고 역사의 무대로 , 아이네아스, 2016.
  • 웨난, 하상주 단대공정, 일빛,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