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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6일 (화) 17:40 판
문정경중은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속셈이나 남의 실력을 의심하는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솥의 무게를 묻는 단순한 행위가 어떻게 야심찬 포부를 비유하는 말이 됐을까? 이에 얽힌 고사는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 중 세력이 으뜸이었다. 장왕(莊王)이 집권하던 때엔 종주국인 주(周)나라까지 초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장왕은 북부의 융족(戎族)을 정벌한 뒤, 일부러 세력을 과시하려고 주나라 도성 밖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 주나라의 천자 정왕(定王)과 그 신하들은 장왕의 등장에 두려워하며 사자 왕손만(王孫滿)을 보내 축사를 전했다. 그러자 장왕은 왕손만에게 '지금 이곳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구정(九鼎)이 안치되어 있는 줄 알고 있소이다. 대체 그 크기나 무게가 어느 정도요(問鼎之大小輕重)?'라고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여기서 구정(九鼎)이란,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주변의 아홉 주에서 구리를 거둬 주조한 청동 솥을 말한다. 정 자체는 물건을 삶는 평범한 기구였으나, 하에 이어 은(殷)나라 이래로 천자에게 전해져 제례용의 기물로 사용되는 보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구정을 가진 왕만이 천하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장왕이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어본 것은 주나라의 왕위를 빼앗을 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 일종의 협박이었던 것이다. 왕손만은 이를 간파하고, 본인은 이것을 아직까지 자세히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나라를 얻고 다스림은 덕행에 의한 것이지 구정이 무슨 소용이냐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장왕은 '솔직히 말해서 과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새로운 구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오'라며 더욱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왕손만은 구정은 그리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라며 구정의 역사와 의의, 조화작용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 주왕실의 힘이 비록 약해지긴 했으나 아직도 하늘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즉 전하께서는 구정이 큰지 작은지,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일갈했다.
장왕은 왕손만에게 화를 내거나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왕손만의 경고는 타당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장왕은 초나라로 퇴군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