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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 사후, 선양제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현명한 백익 伯益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우의 아들 계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계는 천하가 자신의 아버지 하우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해 놓은 것으로 이미 자기 집안의 사유재산임을 언명하고, 아버지가 죽었으니 사유 재산은 마땅히 아들인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계는 무력을 사용하여 백익을 기산의 남쪽으로 내몬 후에 균대 均臺(지금의 하남 우주)에서 대규모의 연회를 거행하고 자신이 하 왕조의 제2대 왕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이 때부터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천하를 물려주던 공천하제도 公天下制度는 계로 인하여 파괴되었으며 부자 제습 또는 형제 상속의 족벌 체제로 급변하였다.
 
우의 사후, 선양제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현명한 백익 伯益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우의 아들 계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계는 천하가 자신의 아버지 하우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해 놓은 것으로 이미 자기 집안의 사유재산임을 언명하고, 아버지가 죽었으니 사유 재산은 마땅히 아들인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계는 무력을 사용하여 백익을 기산의 남쪽으로 내몬 후에 균대 均臺(지금의 하남 우주)에서 대규모의 연회를 거행하고 자신이 하 왕조의 제2대 왕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이 때부터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천하를 물려주던 공천하제도 公天下制度는 계로 인하여 파괴되었으며 부자 제습 또는 형제 상속의 족벌 체제로 급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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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부흥시킨 소강 少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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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의 아들인 태강이 향락에 탐닉하자 국가의 통제권을 동이족의 수령인 이예에게 빼앗기고 태강의 동생인 중강이 괴뢰왕으로 옹립된다. 그러나 이예 자신도 사냥과 오락을 좋아하고,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데에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예는 다시 그의 부하인 한착에게 죽임을 당하고 한착이 국가를 장악한다. 이 과정 중에 괴뢰왕으로 옹립된 중강은 우울함에 금방 죽어버리고 그의 아들 상이 왕위를 계승하나 상 역시 괴뢰왕 노릇하기가 싫어 도망을 가버린다. 상의 아내 후민은 이 때 임신중이었는데, 그녀는 상을 죽이려는 한착의 부하들을 피해 친정집으로 가서 의지하게 되는데 거기서 후민은 아들을 낳게 되니 그 자의 이름이 바로 소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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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꾀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후민은 아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철이 들 무렵부터 선조의 역사를 가르치고 어른이 될 때 반드시 원수를 갚을 것을 당부하였다. 이런 교육 탓인지 소강은 발분노력하여 강해지기를 도모하고 하 왕조를 부흥시킬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친정집인 유잉씨의 부락 안에서 관리직을 거쳐 통치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어느덧 윤이라는 지역에 땅을 얻고 5-6백여명의 사병을 거느릴 정도로 하 왕조를 다시 부활할 근거지와 무장 세력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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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와 한착에 의해 멸문한 세력들을 규합하고 세력을 하나로 모아 소강은 자기 근거지인 윤에서 기병하여 하 왕조의 옛 성읍인 안읍 安邑으로 쳐들어갔다. 이 때 한착은 이미 죽었고 그의 부하인 과요는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대세는 이미 소강에게 기울었고 과요는 결국 소강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천하는 다시 하우의 자손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소강이 나라를 부흥시켰다." 少康中興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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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2022년 12월 22일 (목) 17:45 판

개요

하(夏) 기원전 2070년 - 기원전 1600년으로 추정됨

기원전 2070년 우(禹)가 순(舜)의 직위를 물려받았으니 이는 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우는 하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의 부락을 "夏"라고 칭한다. 우의 사후에 그의 아들 계(啓)는 순의 선양 제도를 타파하고 부자 계승의 왕조 제도를 제정하였으며, 이로부터 중국 역사상 첫번째의 왕조인 하가 출현하게 된다. 하 왕조의 정치 조직 제도는 바교적 간단하였는데, 천체사계天體四季를 책임지도 관찰하는 희씨 羲氏, 화씨 和氏, 정사를 관리하는 목정 牧正, 차정 車正, 포정 庖正과 전문적으로 죄인을 감금하는 곳인 '하대 夏臺'가 있었다고 한다.

하남의 언사 偃師 이리두 二里頭의 하 왕조 유적지 안에서 수많은 돌삽, 돌도끼, 조개칼, 나무쟁기 등의 농기구가 발굴되었으며, 또한 적지 않은 청동제의 병기와 공구 등도 발굴되었다. 도기로는 작 爵, 고 觚, 정 鼎, 두 豆, 관 罐 등의 기물들이 발견되었다.

하 왕조의 농업은 상당히 발달되었기에 당시에 이미 곡물인 쌀, 보리, 콩, 오이 등의 각종 농산품이 있었다. 하 왕조는 '오십이공 五十而貢'의 세금 제도를 실행했으니, 후세의 정전 井田 제도는 하 왕조 때에 이미 출현한 것이며, 단지 대규모로 확대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역사

하 왕조 세계표
우禹 - 계啓 - 태강太康 - 중강仲康 - 상相 - 소강少康 - 여予 - 괴槐 - 망芒 - 설泄 - 불강不降 - 경扃 - 근厪 - 공갑孔甲 - 고皐 - 발發 - 걸桀

우의 아들인 계는 선양 제도를 바꾸고 부자 세습의 왕조 제도를 처음 만들었으며 이 때부터 중국 역사상 첫번째 왕조인 하 왕조가 출현했다고 본다. 기원전 1600년 걸왕桀王을 마지막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니 총 13대 16왕이 재위하였고 그 기간은 총 470년이다.

대사년표 大事年表
기원전 2070년

우가 순 임금을 대신하여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됨. 계 재위시 우의 아들 계는 선양 제도를 개혁하여 정권을 탈취하고, 부자 세습 제도를 창시한다. 계는 제후들과 하남 우주 禹州와 균대 鈞臺에서 회맹하고 유호씨 有扈氏를 멸한다.

태강 재위시

태강이 계를 계승하여 천자가 되었으나 조정이 혼란하자 유궁씨 有窮氏의 수령인 이예 夷羿가 기회를 틈타 태강을 몰아낸다.

상 재위시

이예가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가신 한착 寒浞에게 죽임을 당함. 한착은 또 하의 왕 상을 살해하니 상의 왕비가 친정으로 도망가 거기서 소강을 낳는다.

소강 재위시

소강이 백미 伯靡의 도움 아래 과요 過澆를 죽이고 하 왕조를 중흥시킨다.

여 재위시

소강의 아들인 여가 천자의 자리를 계승한 후, 동이 東夷를 정벌하고 동해까지 나아간다.

괴 재위시

여의 아들인 괴가 즉위하니, 구이 九夷가 모두 알연함, 괴는 환토 圜土(감옥을 뜻함)를 세운다.

제발 7년

태산에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최초의 지진 기록이다.

제걸 원년

이계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제걸이다.

기원전 1600년

상탕 商湯이 하 왕조를 멸한다.

부자 세습의 족벌 체제

우의 치수 성공으로 위엄과 명망이 높아지고 나이가 든 순 임금은 우에게 자신의 천자의 자리를 계승시킬 것을 확정하였다. 순 임금이 죽은 후 우는 순의 아들인 상균 商均에게 양보하려 했으나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우를 추대하였다. 그래서 기원전 2070년, 우는 양성 陽城 (지금의 하남성 등봉 동남쪽)에서 천자로 즉위하고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된 것이다. 우가 통치를 한 후 각 부족의 진일보되 융합과 통일을 가져왔고 이 당시 부터 중화민족은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씨족 부락에 그치지 않고, 보다 고급의 다부족 융합체의 화하 민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게 해준다.

우의 사후, 선양제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현명한 백익 伯益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우의 아들 계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계는 천하가 자신의 아버지 하우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해 놓은 것으로 이미 자기 집안의 사유재산임을 언명하고, 아버지가 죽었으니 사유 재산은 마땅히 아들인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계는 무력을 사용하여 백익을 기산의 남쪽으로 내몬 후에 균대 均臺(지금의 하남 우주)에서 대규모의 연회를 거행하고 자신이 하 왕조의 제2대 왕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이 때부터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여 천하를 물려주던 공천하제도 公天下制度는 계로 인하여 파괴되었으며 부자 제습 또는 형제 상속의 족벌 체제로 급변하였다.

나라를 부흥시킨 소강 少康

계의 아들인 태강이 향락에 탐닉하자 국가의 통제권을 동이족의 수령인 이예에게 빼앗기고 태강의 동생인 중강이 괴뢰왕으로 옹립된다. 그러나 이예 자신도 사냥과 오락을 좋아하고,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데에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예는 다시 그의 부하인 한착에게 죽임을 당하고 한착이 국가를 장악한다. 이 과정 중에 괴뢰왕으로 옹립된 중강은 우울함에 금방 죽어버리고 그의 아들 상이 왕위를 계승하나 상 역시 괴뢰왕 노릇하기가 싫어 도망을 가버린다. 상의 아내 후민은 이 때 임신중이었는데, 그녀는 상을 죽이려는 한착의 부하들을 피해 친정집으로 가서 의지하게 되는데 거기서 후민은 아들을 낳게 되니 그 자의 이름이 바로 소강이다.

소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꾀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후민은 아들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철이 들 무렵부터 선조의 역사를 가르치고 어른이 될 때 반드시 원수를 갚을 것을 당부하였다. 이런 교육 탓인지 소강은 발분노력하여 강해지기를 도모하고 하 왕조를 부흥시킬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친정집인 유잉씨의 부락 안에서 관리직을 거쳐 통치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어느덧 윤이라는 지역에 땅을 얻고 5-6백여명의 사병을 거느릴 정도로 하 왕조를 다시 부활할 근거지와 무장 세력을 갖추게 된다.

이예와 한착에 의해 멸문한 세력들을 규합하고 세력을 하나로 모아 소강은 자기 근거지인 윤에서 기병하여 하 왕조의 옛 성읍인 안읍 安邑으로 쳐들어갔다. 이 때 한착은 이미 죽었고 그의 부하인 과요는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대세는 이미 소강에게 기울었고 과요는 결국 소강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천하는 다시 하우의 자손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소강이 나라를 부흥시켰다." 少康中興이라고 부른다.

참고자료

  • 정암(Jung Ahm),and 최원태(Choi Won-Tae). "하왕조 강역과 우공구주 고찰." 역사와융합 -.4 (2019): 7-37.
  • 이기구. (2005). 풀어쓴 중국 역사탐험 ① 전설의 하(夏)왕조. 역사&문화, 1, 14-正21.
  • 중국사학회. 강영매, 중국 역사 박물관. 서울: 범우사, 2004.
  • 중국사학회, 강영매, 중국통사(1) 선사시대 - 동한, 서울: 범우사, 2008.
  • 유정희, 하왕조, 신화의 장막을 걷고 역사의 무대로 , 아이네아스, 2016.
  • 웨난, 하상주 단대공정, 일빛,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