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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畯(준)은 고대에 농사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상나라 [[갑골문]], 주나라 [[금문]], 그리고 진나라 [[소전]] 모두 왕관을 쓴 인물이 농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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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인물의 체형이 약간 다르지만, 둘 다 농지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전문가의 신분을 나타낸다. 금문에서의 인물 형상은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뛰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畯"이 농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나타내며, 또한 글자가 통일되기전에 다양한 형태로 쓰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ref> 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p.120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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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畯의 구성요소인 田은 『역해』에 따르면 곡식을 심는 곳, 즉 밭을 상형한 글자이다. 특히 ‘十’ 부분은 밭 안에 난 밭두둑을 의미한다.<ref> 염정삼 저,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13, pp.659~660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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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에서 "畯(준)"의 본래 의미는 고대에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자였다. "畯"이 형용사로 사용될 때에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을 형용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畯民(준민)"은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며, "畯臣(준신)"은 현명한 신하를 나타낸다. | + | 중국에서 "畯(준)"의 본래 의미는 고대에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자였다. "畯"이 형용사로 사용될 때에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을 형용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畯民(준민)"은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며, "畯臣(준신)"은 현명한 신하를 나타낸다. 고궁 박물관 소장의 《田畯醉归图》(전준취귀도)에서 “田畯(전준)”은 농사를 괸리하는 관직, “田官(전관)”을 가리키며, 그림에는 한 전관이 취해서 황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2023년 12월 25일 (월) 23:12 기준 최신판
語源
畯(준)은 고대에 농사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상나라 갑골문, 주나라 금문, 그리고 진나라 소전 모두 왕관을 쓴 인물이 농지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인물의 체형이 약간 다르지만, 둘 다 농지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전문가의 신분을 나타낸다. 금문에서의 인물 형상은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뛰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畯"이 농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나타내며, 또한 글자가 통일되기전에 다양한 형태로 쓰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1]
畯의 구성요소인 田은 『역해』에 따르면 곡식을 심는 곳, 즉 밭을 상형한 글자이다. 특히 ‘十’ 부분은 밭 안에 난 밭두둑을 의미한다.[2]
文化
중국에서 "畯(준)"의 본래 의미는 고대에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자였다. "畯"이 형용사로 사용될 때에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을 형용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면 "畯民(준민)"은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며, "畯臣(준신)"은 현명한 신하를 나타낸다. 고궁 박물관 소장의 《田畯醉归图》(전준취귀도)에서 “田畯(전준)”은 농사를 괸리하는 관직, “田官(전관)”을 가리키며, 그림에는 한 전관이 취해서 황소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