龜
語源
龜는 땅에서도 물에서도 사는 네 발 동물로, 거북이나 남생이를 가리킨다. 거북은 몸이 둥글고 납작하며 배에는 단단한 껍데기가 있다. 사지와 머리, 그리고 꼬리는 모두 수축하여 껍데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갑골문에서 거북이의 머리와 발은 정면으로 그러졌으나, 배는 측면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화폭 안에 물체의 각기 다른 측면의 모습을 나타내는 입체파의 기교를 중국인들은 이미 예전부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1]
『설문해자·13편하』의 龜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龜, 오래되다. 겉은 뼈로 싸여있고 그 안에 살이 있다. 它를 구성요소로 하는 것은 거북의 머리가 뱀의 머리와 같기 때문이다. 천지의 본성은 어깨가 넓고 수컷이 없어서, 거북이나 자라와 같은 동물은 뱀을 수컷으로 삼는다. 그 자형은 다리, 껍질, 꼬리의 형상을 본뜬 형상이다.[2]
文化
거북은 북쪽에 상향하는 방향신이다. 거북은 겨울을 상징하며, 태초의 혼돈 상태를 나타내는 검은색이 바로 거북의 상징색이다.[3]
‘거북’이라는 우리말이 한자에서 온 것이라면? 조선 영조 때 황윤석이라는 학자는 우리말 ‘거북’이 한자어 ‘귀복(龜卜)’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4] 이는 현대의 국어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만큼 한자 龜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북점(龜卜)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 고대 은(殷)나라 때에는 국가의 크고 작은 일들을 행함에 있어 점복(占卜)의 결과를 매우 크게 반영했는데, 그 점복의 재료가 된 것이 짐승의 뼈(獸骨)와 거북이 껍질(龜甲)이었다. 거북점의 경우 거북이 배딱지(보통 등껍질로 잘못 알고들 있다)을 불에 떼어 그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괘를 판단했는데, 卜(점 복)의 자형은 이 갈라진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인들은 거북점을 칠 때 거북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영험하다고 믿었는데, 크기가 큰 거북을 지칭하는 '원귀(元龜)'는 <시경詩經>에서도 인용된 바 있다.[5] 또한, 『사기(史記)·귀책열전』에서 거북을 신귀(神龜)라고 칭했으며, "거북이 천수를 살면 1尺2寸의 크기가 된다. 왕은 군대를 출정시킬 때면 반드시 묘당에서 거북으로 점을 쳐서 길흉을 결정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고대에 점복에 있어서 거북이가 매우 중요한 재료였던 탓에, 거북이는 영물(靈物)로써 여겨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징부여는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서 거북이 우주의 기둥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있다고 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 신화 때문에 거북은 장수(長壽)와 강인함의 표상으로 사용되었다.[6] 또한, 거북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껍데기를 갖고 있고 완만한 호흡과 충분한 수분 및 영양분을 체내에 보존해 두는 습성때문에 줄곧 장수나 불사의 상징이었다.[7]
이렇듯 좋은 상징을 부여받았던 거북은, 원(元)나라 때부터 그 사회적 지위가 떨어지게 된다. 이때부터 ‘거북’이란 표현은 그 생김새의 유사성 때문에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욕으로 쓰였다. 또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거북이 알을 낳아놓으면 자라가 와서 수정을 함) ‘아비도 모르는 자식’이라는 뜻을 품게 되기도 했다.[8] 결과적으로 현대 중국에서 거북이는 긍정적 상징과 부정적 상징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동물이 되었다.
- ↑ 廖文豪, 『汉字树 4』, 吉西平, 2015.
- ↑ 왕닝 등, 『「설문해자」와 중국고대문화』, 2010, p.51.
- ↑ 하영삼, 『한자왕국』, 예담차이나, 2004, p.317.
- ↑ 김언종, 『한자의 뿌리 -1권』, 문학동네, 2001, p.54.
- ↑ 왕닝 등, 『「설문해자」와 중국고대문화』, 2010, pp.381-383.
- ↑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p.87-89.
- ↑ 하영삼, 『한자왕국』, 예담차이나, 2004, p.318.
- ↑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p.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