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운동
Qkrwjddbs17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2월 21일 (금) 10:30 판
목차
중국의 신여성
정의
중국 신여성담론은 중국에서 청말부터 시작된 여성 평등 사상을 지칭한다. 신여성담론의 시작을 보는 관점을 다양하지만, 대체로 아편 전쟁 후 서양의 문물 수용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를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5·4 운동을 절정으로 생각한다. 신여성이라는 단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신청년이라는 잡지가 창간된 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는 그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으며, 맹아기를 걸쳐 5.4운동에 이르러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여성 운동의 등장을 5·4 운동 시기로 정의하고 무술유신 이전부터 5·4 운동까지의 여성평등 사상을 신여성 사상의 맹아로 정의하겠다.
신여성사상의 맹아
제 1기- 무술유신 이전
무술년 이전 까지의 신여성 운동이 진행된 이유는 중국의 문제를 전통에서 찾은 까닭에 있다. 즉 전통적인 여성상은 낙후된 중국 문화이며,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선 발전된 서양의 여성 문화를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 진행된 신여성 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전족 반대운동과 여성 교육 운동이다. 강유위의 주도로 시작된 전족 반대 운동은 양계초에 의해 구체화 되었고 <전족반대동맹조례>로 구체화된다. 이 시기 전까지 진행되던 중국에서의 여성교육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1884년에 미국 감리교가 진강 보개산에 설립한 여숙을 들 수 있는데, 이 여숙의 규정을 살펴보면, 여숙에서 진행되던 교육이 근대적인 평등 교육이었다기 보다는 중국의 봉건적 여성교육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여숙에서 전족을 한 여성을 그대로 받아드려 교육을 했으며, 중국인에 의해 전족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에야 전족을 금지시켰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까지의 중국 여성교육은 완전한 여성 평등운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청일 전쟁이 지나고 1903년이 지나서야, 양계초에 의해 중국 여성 교육의 필요성인 중국인에 의해 대두되기 시작된다. 양계초는 중국이 여성을 교육시켜야 하는 이유를 '소득을 나누어쓰는 폐단을 극복해야함' , '여성의 재주없음을 극복해야 함', '교육을 통해 좋은 어머니가 되야 함',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태교를 해야 함'으로 정의한다. 종합해 볼 때 이 시기에 등장한 여성운동은 부국에 있다. 이 부국에 도달하기 위해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현모양처가 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성을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신이 실패로 끝나자 양계초와 강유위에 의해 주도되던 이 시기의 여성운동은 막을 내리게 된다.
제 2기- 무술유신 이후
무술유신이 서태후에 의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고, 연합군이 북경을 점거해 서태후가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부터 만주족 정부인 청에 대한 무능력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중국 전역에서는 혁명 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 급진적인 신여성 운동을 주장하는 김일에 의한 여계종이라는 책 한 권이 발간된다. 그에게 중국 여성의 대표적인 문제는 전족, 몸치장, 미신에 빠지는 것, 구속되어 사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여성의 능력이 저하됨을 서술했다. 그의 주장 중 흥미로운 것은 네번 째 구속되어 사는 것인데 그에게 있어 여성 구속의 근본전인 원인은 결혼이었다. 그에게 전통적인 결혼이랑 남성에 의한 여성의 구속이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남녀간의 교제를 공개적으로 하고 혼인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 한다. 이는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사상은 무술유신 이후 지배적인 담론이 아니였다. 무술 유신 이후 부국을 위해 여성에 대한 교육을 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평등을 위한 교육이라고 보긴 힘들다. 실제로 무술유신 시기 전국적으로 여학당이 세워지긴 했으나, 이 학교들의 입학총의를 살펴보면 여성 교육의 목표를 교사를 양성하고 유아 보육 방법을 익힘으로써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정의를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등을 위한 교육이라기 보단 부국을 위한 교육이라 고 할 수 있다. 즉 이 시기 국가나 민간에 의해 실시된 여성교육은 신여성을 위한 교육이라기 보단 현모양처를 만들기 위한 전통적인 여성상에 연장선에 불과했다.
제 3기- 신해혁명
청조가 몰락하고 신사상이 대두되긴 했지만, 신해혁명 이후에도 신여성이라는 담론은 체계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여성의 맹아는 신해혁명에서도 발견된다. 혁명군이 무한에서 세 곳의 진영을 점령하고 병력이 부족해 징집 광고를 내자 오숙경이라는 여성은 무한 혁명 정부의 대도독이었던 여원홍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도 군대에 들어와 힘을 보태고 싶다고 주장했다. 여원홍은 완곡하게 거절했으나 오숙경은 혁명에서 남녀간의 차별이 있어선 안된다고 여원홍을 설득해 여원홍은 여군을 모집하게 된다. 이런 여군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으나, 신해혁명 간부들에게는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여군은 곧 해산되었고, 신여성의 맹아는 발현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남경 임시정부에 여성 평등을 위해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실제로 신주여계참정동맹회, 여자동맹회 같은 단체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당군영 등 20인이 약법에 남녀 평등 조문을 넣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임시 약법에 이런 내용은 들어가지 않게 되고 여권 운동가들은 분노하여 여자참정동맹회의 당군영을 대표로 손문에게 편지를 보내 항의한다. 이들의 항의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참의원의 유리창을 깨고 경비를 걷어차는 등의 난폭한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는 신여성 사상의 맹아가 발현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신여성사상의 등장
신문화운동(잡지 신청년)
진독수에 의해 발간된 신청년이 등장하게 된 시기는 원세계가 황제가 되려고 했던 시기와 비슷하다. 신해혁명을 통해 봉건에서 벗어난 지 몇 해 되지 않아 다시 봉건제도로 돌아가게 될 위기를 느낀 진독수는 계몽 시켜야 할 대상이 청년들임을 깨닫고 신청년을 발간하게 된다. 1916년 원세계가 황제로 집권하려고 할 시기 진독수는 신청년에 기재된 청년들을에게 피정복자의 지위에 자신을 놓아뒤 말 것과 타인의 부속품이 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신여성 운동은 이 글로 인해 본격적으로 발현되며, 결혼제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써의 여성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원세계의 황제의 열망이 무산되자 이번엔 공자가 중국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의 길을 모색하는 위정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진독수는 이런 위정자들을 비판하며 헌법과 공자의 가르침이라는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에서 진독수는 여성의 참정권, 재가의 자유, 공개적인 사교활동, 경제적 독립, 핵가족 제도를 부각하며 공자 사상을 비판한다. 잡지 신청년에서 신여성 사상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건 주작인이 소개한 여사야정자의 정조론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에 도덕적 의무로 강요되어 왔던 정조는 사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취향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중국 여성을 억압하던 것들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 글은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정조문제, 나의 정절관과 같은 글로 이어지게 된다. 전통적인 여성관이 흔들리자, 결혼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호적과 같은 지식인들은 서양의 문학작품을 소개해, 중국 여성의 문제를 지적하며 해결방안을 제안한다. 그는 중국 여성의 문제가 가정에 구속되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초월한 인생을 만들어가라고 주장한다. 신문화 운동의 신여성 사상의 만개는 실질적인 혁명인 5.4 운동과 맞물리며 중국 여성의 삶을 바꾸게 된다.
5.4 운동
5.4운동의 목표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자는 것이 었다. 이는 맹아로부터 서서히 성장한 신여성 담론과 맞물려 폭발적인 신여성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조에서 지식인 계층의 젊은 여성들은 여성들은 교육, 직업, 결혼부분에서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추구하게 된다. 먼저 교육부분을 살펴보면, 이전까지 나뉘던 남과 여의 교육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광범위하게 받아드려졌다. 먼저 소학교에서 남녀공학이 보편화 되었고, 대학에서도 여성의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실제로 1922년에는 여성 대학 신입생이 665명에 달한다. 이는 5.4 운동을 통해 발현된 신여성운동이 교육에 있어 남녀 평등을 어느정도 성취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신여성 운동은 직업 분야에서도 발현되었다. 5.4운동 이전에도 여성이 일을 하고 있긴 했어도 직장에 일정 부분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5.4 이후 여성의 직장 제한은 사라진다. 실제로 남자 학교에서도 여교사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북경, 천진, 상해 등의 대도시에서는 여주가 운영하는 상점도 생겨났다. 즉 신여성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능력만 갖추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여성 운동은 결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지식인들에게 전통적인 결혼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자유 연애들 추구했으며 결혼의 조건이 애정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신여성운동은 신해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여성의 참정권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여성운동을 통해 여성의 고등교육이 가능케 되자, 여성 지식인의 수는 날로 늘어갔으며, 신해혁명에서 여성의 참정을 조롱하던 위정자들도 더 이상 여성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점차 정계로 나아갔다. 실제로 광동의 임시성의회는 여성에게 한정적인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여성의원 10명이 선출되었다. 또한 호남성에서는 비슷한 시기 남녀평등 조항을 법률에 삽입하고 여성 의원 왕창국을 선출했다. 또한 여성의 생활의 측면에서 전족이 부정적인 것이라는 의식이 지식인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자리잡았고, 또한 전통적인 머리카락과 의복 역시도 여성의 억압하는 것으로 지목되어 여자 지식인들은 머리를 자르고 개량된 의복을 입었다.
중국 신여성의 한계
5.4운동과 신문화운동을 기반으로 진행된 신여성 운동이 중국 여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고등교육이 가능해졌고, 정치에 일정부분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통 혼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여성에 대한 한계가 중국 지식인 내부에서 지적되기 시작했다. 이런 한계를 지적한 사람 중 대표적인 지식인은 루쉰이다. 루쉰이 1917년 신청년에 기고한 <나의절열관>을 보면 그는 여성을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므로 남편이 죽어도 다른 사람에게 재가하면 않되고, 그가(남편이) 살아있으면 물론 빼앗길 수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즉 루쉰에게 여성은 남성의 물건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정복당한 국민이 되어보호할 힘도, 저항할 용기도 없어지면 하는 수 없이 이상한 묘안을 짜내어 여자들의 자살을 고취시킨다.”라고 말하며 전통적인 여성관에 대해 비판하며 신여성 담론을 찬성한다. 하지만 루쉰은 5.4 운동때 등장한 신여성 담론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신여성 담론이 뜨거워 지고, 어느정도 실현이 되었을 1925년 <애도(傷逝)>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이 소설에서 자유연애로 대표되는 신여성 사상을 갖는 쯔쥔은 애인 쥐엔셩과 함께 동거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불행하게 되고 결국 쯔쥔은 자살을 하고, 쥐엔성은 반성을 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마친다. 이 소설에서 신여성을 '자살'로 이끄는 것은 완전히 타파하지 못한 여성에 대한 봉건적인 구속이다. 쯔쥔은 동거를 시작한 후 집안일 때문에 지적활동을 할 수 없게된다. 반대로 쥐엔셩은 동거 후 가사 활동을 하지 않고 지적 활동에만 열중하게 된다. 이에 따라 쯔쥔은 쥐엔성이 사랑했던 신여성적인 모습을 잃고, 이 둘은 헤어지고, 쯔쥔은 죽게 되는 것이다. 노신은 뒤에 발표하는 산문 <로라는 집을 나간 후 어떻게 되었는가?>를 통해 신여성의 한계를 더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로쉰은 로라가 집을 나가 할 수 있는 선택이 '타락'아니면 '회귀'이라고 정의하며 5.4 운동 당시의 신여성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즉 여성들이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남성이나 사회가 완전히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여성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존재하며, 사회적 차원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신여성들이 신여성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이제 그녀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부정한 여자이기 때문에 온전한 지위를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루쉰은 신여성들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자리잡기 위해선 경제권 즉 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문헌
가족제도와 국가권력의 벽을 넘어서, 조세현
루쉰 소설의 페미니즘적 해석에 대한 재검토, 전형준
루쉰의 여성 해방 운동, 유세종
중국 여성 그리고 역사, 진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