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답사
2012년도 학술 답사는 7월 2일부터 7월 7일까지 5박 6일간 상해,소주,항주의 강남 문화 탐방에 주제를 두고 진행됐다. 12년도 답사는 이승훈,성근제 두 교수님의 지도 아래 20명의 학우들이 떠났는데, 3조로 나누어 조별 준비와 자유 일정을 소화했다. 상해로 입국하여 소주와 항주를 살펴보고 다시 상해에서 출국하는 코스로 무더운 7월 여름, 40도 고온의 날씨 속에서도 알차게 일정을 준비하여 모두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답사 개요-일정표
제1일 7월 2일
▶인천 국제공항 출발 ▶상해 포동공항 도착 ※운하와 정원의 도시 소주로이동 (약2시간30분 소요) (석식 후) ▶당대 최고의 시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인 소주 운하 유람
제2일 7월 3일
▶태호석의 왕 광운봉이 있는 중국의 명원 유원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의 탄생지, 한산과 습득스님의 일화로 유명한 한산사 탐방 ※지상낙원 항주로이동 (약3시간 소요) ▶중국 10대 명승 중 하나인 서호 유람(유람선) ▶오산꼭대기에 위치한 강남4대 명루각에 속하는 웅장한 성황각 ▶남송시대의 시장 모습을 재현해 놓은 청하방옛거리 탐방 (석식 후) ▶중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중국 전통설화를 각색하여 조명과 음악, 수백 명의 군무를 물 위에서 아릅답게 표현한 인상서호쇼 관람
제3일 7월 4일
▶항주에서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념관인 소동파기념관 관람 ※중국 제일의 국제도시 상해로이동 (약3시간 소요) (중식 후) ▶단체활동(진마오타워, 난징루, 상해도시계획관 등)
제4~5일 7월 5~6일
조별활동
제6일 7월 7일
▶중국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상해박물관 관람 ▶상해의 젋은 문화 예술의 중심인 타이캉루 예술거리 관광 ※중식 후 공항으로 이동 ▶상해포동공항 출발 ▶인천국제공항 도착
답사 장소 정보
소주
4대 명원
- 졸정원(拙政園)
전형적인 강남의 정원양식을 보여주는 졸정원은 강소성 소주시에 위치한 정원이다. 명조 정덕 4년에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북경의 이화원, 승덕의 피서산장, 소주의 유원과 함께 중국 4대 명원이다. 또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국가 5A급 여행 구역으로, “중국 원림의 어머니”라고 칭송 받는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본래 졸정원 부지는 삼국시대에는 손권의 어머니가 살았고 당나라 때는 시인 육구몽의 원림이었다고 한다. 그 리고 원나라 때에는, 대광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원말에 훼손되었다. 명 정덕 4년, 어사 왕헌신이 관직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흥사 자리에 원을 조성하고 진대의 반악이 지은 ‘한거부’ 중에서 “관원육소하고 이공조석지선이면 시역졸자지위정야로다. 정원에 물을 대고 팥과 채소를 심어 조석으로 반찬을 삼으면 이 또한 쓸모없는 사람의 정사가 아니런가?”라는 구절을 따서 졸정원이라 불렀다. 왕헌신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이 도박을 하여 하루 밤에 집을 잃었고 정원은 황폐해졌다. 명 숭정 4년, 시랑 왕심일이 다시 복원하여 “귀전원거”라고 부르고 직향관, 부용사, 난설당 등등을 지었다.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다시 관청이나 학교로 이용되기도 하다가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보수공사를 거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졸정원은 ‘중국 정원의 자존심’이라고도 한다. 컨셉트는 물이다. 소주가 물의 도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건물을 물가에 지어서 건물이 물에 비치는 풍경까지도 같이 감상하란 의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뒤에 멀리 보이는 탑을 경치 안으로 끌어들여 탑이 있는 곳까지 자신의 정원으로 느끼게 하는 차경(빌려온 경치)이다. 무엇이든 크게 보이려는 중국인들의 과장된 정서가 여기서도 보인다. 물 위엔 다리가 있는데, 굴곡지게 표현하였다. 대평원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똑바른 길로 다니다 보니 정원만큼은 멋을 가미하여 구부려 표현하였다. 정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자는 밖의 경관을 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나, 중국의 정자는 보여지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지붕도 밖으로 한껏 꺾어서 표현을 했다.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문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보름달 모양의 동그란 문, 월창을 내서 아름답게 보이고자 했다.
- 망사원(网师园)
망사원은 남송시기(1127~1279년)에 만들어졌다. 소주에서 가장 작은 정원이지만 전형적인 청나라의 주택 정원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송대 순희(1174-1189)때 '만권당'이 지어졌으며 그 뜻은 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정원은 '어은(漁隱)'이라고 불렀다. 청 건륭제에 광록사의 송종원이 만권당의 옛터에 별장을 짓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망사원이라 불렀다. 그 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1950년에 중국 정부 소유가 되었고, 1958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망사원의 내부에는 동쪽에 저택, 남쪽에 연회장, 중앙에 주원, 서쪽에 내원, 그리고 북쪽에 서재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서쪽의 내원이 가장 넓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고 내원 중 작은 방을 ‘전춘이’라고도 부른다. 망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은 야화원이다. 강소성의 지방 희극인 곤곡과 민간문예인 평탄 등 중국 강남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볼 수 있다. 망사원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때로는 망사원의 ‘师’ 글자를 ‘狮’ 자로도 쓰인다. 망사는 ‘고기 낚는 늙은 어부’라는 의미다. 또한 “어은”과도 같은 의미며, ‘강호에 숨어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망사원은 “어부가 낚시하는 오래된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바로 옛날 “어은”의 의미에서 빌려온 것이다. 건륭 말년, 원래 규모대로 복구되고 정자를 늘려 만들었으며, 속칭 “구원”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의 망사원의 규모, 정치는 구원의 유물이다. 옛 시대 명문의 완벽한 주택 군 및 중형의 고전 산수원을 유지하고 있다.
- 사자림(獅子林)
원나라 혜종, 1342년 선승 유칙이 절강성 천목산 사자봉에서 득도한 스승을 위해 조성하였다. 정원 안에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기암괴석이 있다 하여 ‘사자림보리정종사’라 명명하고, 줄여서 ‘사자림’이라고 불렀다. 유칙은 이 원림을 매우 만족해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도시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만개의 산속에 사는 것과 같구나.” 원래는 선사였으나 명·청 시대를 거 치면서 개인 저택으로 사용되었고, 1917년 상인 베이런위안이 폐허가 된 이곳을 매입하여 재건하였다. 1982년 장수성의 문물보호지로 지정되었고, 2000년 소주원림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성 초기 사자림은, 문인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곳으로 유명했다. 강희 황제는 남쪽을 순회하여 사자림에 도착 했을 때 현판을 하사했고 건륭 황제는 이 정원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여섯 번 강남 지역에 내려가면 여섯 번 다 사자림에 방문했고 ‘진취’현판을 남겼다. 북방으로 온 이후에는 원명원과 승덕 피서산장 내에 사자림을 모방하여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