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웨이인
천웨이인 (陳偉殷, Chén Wěi Yī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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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5년 7월 21일 |
국적 | 대만 |
학력 | 대만국립체육학원 |
키 | 182.9cm |
몸무게 | 88.5kg |
목차
개요
천웨이인은 대만 출신의 야구선수이다. 데뷔는 2004년 주니치 드래건스 입단이며, 현재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좌완 투수로 활동 중이다.
경력
소속팀 | 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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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 2004-2011 |
볼티모어 오리올스 | 2012-2015 |
마이애미 말린스 | 2016~ |
출생 및 유년시절
천웨이인은 1985년 7월 21일 대만 가오슝 현에서 태어났다. 가오위엔 공업상업고교 시절부터 그는 특급 유망주로 분류됐다. 마운드에서 최고 구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렸고 스위티히터로 나선 타석에서도 맹타를 휘둘렀다. 이 가운데 가장 빛을 발휘한 건 탈삼진 능력으로, 한 경기에서 22개의 삼진을 잡아낸 적도 있다. 천웨이인은 고교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쿠바에서 열린 대륙간컵 야구대회 출전 명단에 이름을 포함시켰다. 천웨이인은 2003년 야구특기생으로 대만체육대학에 진학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다. 메이저리그 8개 구단이 1학년인 그를 두고 영입경쟁을 벌였으나, 천웨인 영입에 성공한 건 의외의 구단인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천웨이인이 일본 프로야구에 발을 내딛은 건 다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의 활약 덕이 컸다. 일찌감치 천웨이인의 능력을 눈여겨본 다이호는 야구 월드컵이 열린 쿠바까지 쫓아가 주니치 입단을 설득했다. 끊임없는 구애에 천웨이인은 계약금 1억 엔(약 14억 4천만 원), 연봉 1200만 엔(약 1억 7천만 원)을 받는 조건에 일본행을 결심했다. 계약금은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던 9개 구단의 제시액 가운데 가장 많았다. 파격적인 배팅에는 두 가지 이유가 뒷받침됐다.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라는 점과 강한 체력이다. 그러나 천웨이인은 기대와는 달리 입단 첫해인 2004년 1군에서 한 개의 공도 던지지 못했다. 이듬해에도 10경기(19.1이닝)에서 남긴 평균자책점은 6.05에 불과했다. 2006년 그는 부상까지 당해 내내 팔꿈치 통증에 시달려 2군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다. 정밀검진을 통해 드러난 병명은 왼 팔꿈치 피로 골절과 왼 팔꿈치 인대파열이었으며, 천웨인은 바로 나고야의 한 병원에서 4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이후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주니치 구단은 천웨이인을 선수단 명단에서 말소시켰다. 대신 3년(2007년-2009년) 동안 구단이 일방적으로 방출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육성선수로 재계약을 맺었다. 연봉도 600만 엔(약 8600만 원)을 받았으며, 이는 육성선수의 연봉 상한선이었던 240만 엔(약 3500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재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구단이 내놓은 배려에 천웨이인은 구속 상승과 제구력 향상에 집중했다. 천웨이인은 2008년 4월 2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이후 경기에 자주 투입돼며 승승장구하여 600만 엔이던 연봉은 3500만 엔으로 6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2008시즌의 경험은 경기 운영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져 이듬해에는 생애 첫 월간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천웨이인의 특급 활약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앞 다퉈 러브콜을 보냈으며, 당시 스포츠호치의 보도에 따르면 관심을 보인 구단은 무려 15곳이었다. 천웨인은 잇단 구애를 뿌리치고 주니치와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연봉 재계약을 마친 뒤인 2009년 12월 22일 일본 취재진 앞에서 “나의 꿈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다. 구단이 내년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을 통해서라도 이적을 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계속될 것 같던 상승곡선은 외복사근과 다리에 생긴 부상으로 잠시 주춤하였지만 양호한 경기력으로 시즌을 마치고, 주니치 구단은 잦은 부상에도 열심히 경기를 소화해 준 천웨이인에 고마워하며 8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오치아이 감독의 퇴진과 함께 이내 천웨이인을 FA로 풀어줬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은 2011년 1월 10일, 3년 동안 총 1130만 달러(약 129억 원)를 받는 조건으로 대만인 투수 천웨인을 영입했다. 메이저리그 도전 소식과 동시에 그는 대만 타이완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레이 포이트빈트 볼티모어 국제담당 부사장은 직접 자리를 방문하여 천웨인에게 유니폼을 입혀줬다. 첸웨이인은 볼티모어 올리올스에서 4년 동안 뛰면서 3번이나 두자릿 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2년
지난 시즌 부상을 당한 영향으로 경기력이 부진했기 때문에 기대치가 높지 않았으나,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으로 팀내 에이스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천웨이인의 활약에 대해 같은 팀의 애덤 존스는 '첸세이셔널(Chen-sational)'하다고 표현했다.
2013년
부상 때문에 경기를 많이 소화하지는 못했으나, 나쁘지는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2014년
건강한 시즌을 보내며 대단히 좋은 성적을 냈으며, 사실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평이다.
2015년
아시아 투수들중에 거의 유일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마이애미 말린스 시절
첸웨인은 현재 마이매이 말린스와 5년 8000만 달러(약 970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6년째에는 1천600만달러짜리 구단옵션이 붙어 있어 모두 합하면 최대 6년 9천600만달러(약 1천16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첫 2년이 지난 뒤 시장상황을 봐서 옵트 아웃할 권리도 포함되어, 몸값이 더 오를 경우 2년 뒤 재차 FA를 선언할 수 있다. 참고로 마이애미는 지난 2011년 이후 FA 투수를 다년 계약으로 영입한 적이 없으며, 당시 4년 5천800만달러에 계약한 마크 벌리도 단 한 시즌만 기용한 뒤 토론토로 트레이드했다.
2016년
천웨이인은 생애 최초로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7년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거의 한 해 경기를 뛰지 못했으며, 후반기에 복귀하였다. 시즌후 옵트아웃을 할 수 있었지만 부진한 성적 탓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2018년
어느 정도는 부활했다는 평을 받는다. 풀타임 선발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데에는 성공해, 아예 나오지도 못했던 작년에 비해 어느정도 반등은 했다.
2019년 현재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해 말 그대로 '먹튀'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구단은 경기력 부진에도 불구하고 고액 연봉자인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방출설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천웨이인의 잔여 연봉은 4200만 달러(약 500억 원)으로, 일각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천웨이인을 방출하고 그의 자리를 마이애미의 미래에 공헌할 수 있는 젊은 투수를 위해 사용하는 게 좋다는 의견까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