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
Onyukang2011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12월 25일 (일) 18:42 판
개요
시대가 복잡해지면서 전서를 간략화 시킨 예서가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는 진나라때 발원하여 隸人 정막이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나 민간인들이나 하급관리들 사이에 이미 서서히 변화가 진행되어 온 서체로 진나라의 사무가 번잡하고 많아지자 전서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 획을 간략히 하면서 생겼다. 이 예서는 한 대에 이르러 정치 경제적인 안정과 더불어 장식적인 조형성을 가미하여 팔분예서로 변화 발전하였다.[1]
기원
隸書라는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책은 한나라의 班固의『漢書˙藝文志』에 "감옥에 일이 많아지자 간단하고 쓰기 쉬운 문자를 개발하여 노예들의 일을 다루는데 사용하였다." 라고 하였다. 許愼의『說文解字˙序』에서도 "관청의 감옥이 일이 많아짐에 따라 처음으로 간략하고 쓰기 편한 예서로 일을 신속히 처리 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예서라는 명칭의 사용은 漢代때 부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서의 자양적 기틀은 오랜 역사적, 사회적 필연에 의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秦系文字 자료를 보면 春秋以後부터 점점 그 형태가 예서와 가까워지다가 춘추말기에 이르러 예서의 풍격을 띄게 된다. 이는 육국문자가 草率해지면서 이것이 바로 예서의 先導가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 출토되고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할 때 戰國初期는 예서가 형성된 시기임이 확실하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