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환
풍환(馮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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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시기 | 전국시대 |
별칭 | 풍훤(馮諼) |
개요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의 식객(食客)중 한 사람으로, 사기의 맹상군열전과 전국책, 열국지 등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맹상군의 식객이 되기 전 신원은 파악할 수 없고, 출생과 사망 시기 역시 불분명하다. 맹상군이 위기에 처하고 식객이 모두 떠나갈 때, 그의 곁에 남아 기지를 발휘하여 대책을 마련해 준 일화로 유명하다.
맹상군의 식객으로 들어가다
풍환은 본래 가진 것이 없는 거지 출신으로, 맹상군이 식객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먼 길을 짚신 한 짝만 신고 찾아온다. 맹상군이 그에게 "선생은 먼 길을 오셨는데, 저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으십니까?" 라고 묻자 풍환은 "특별한 재주는 없으나, 공이 선비를 잘 돌봐준다고 하니 이 한 몸 의탁하려 왔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당시 맹상군은 식객을 세 분류로 나누어 머물게 하며 관리하고 있었다.맹상군은 그를 식객으로 받아들이고, 식객이 머무는 곳들 중 가장 낮고 별 특기가 없는 하객만 머무는 전사(傳舍)에 풍환을 머물게 한다. 하루는 맹상군이 풍환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 전사를 담당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그가 검을 두드리며 "장검아, 장검아, 돌아가자! 생선반찬이라곤 먹을 것이 없구나!"长剑长剑回去吧!吃饭没有鱼。”라고 노래를 부르며 불평을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맹상군을 풍환을 중객이 머무는 행사(幸舍)로 옮기게 조치를 취한다. 며칠이 지나고 어느날 풍환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장검아, 장검아, 돌아가자! 문을 나서려 해도 차가 없구나!" 长剑长剑回去吧!出门没有车。” 맹상군은 또 그 즉시 식객들 중 가장 높은 상객들이 머무는 대사(代舍)로 그를 옮기고 다른 식객과 동일하게 수레를 내어준다. 하지만 풍환은 멈추지 않고 그 다음에도 "장검아, 장검아! 우리집을 부양할 돈이 없구나" “长剑长剑回去吧!没有钱养我家。”라고 말하며 불평을 토로했다. 맹상군은 그의 태도가 매우 언짢았으나, 그의 집에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돈까지 내어준다. 그 이후 풍환은 더이상 검집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의를 사다
풍환이 맹상군의 식객으로 머문지 일년이 지났을 때 즈음, 맹상군은 자신의 고향 땅인 설에 1만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맹상군은 3천여명의 식객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봉토에서 거둬드리는 세금으로는 이들을 대접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맹상군은 식읍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등의 대부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돈을 갚지 않자 누군가를 내려보내 돈을 거둬드리려 했다. 마침 누군가가 "저 빈객이 덩치가 크고 말도 잘하지만 별다른 재주가 없으니 빚을 받는데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고 풍환을 추천하자, 맹상군은 풍환에게 "나는 평소 너무 바빠 선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오. 선생께서 나 대신 빚을 받아와주길 바라오. 괜찮으시겠소?" 라며 이 일을 맡기를 청한다. 풍환이 수락하자 맹상군을 곧바로 그를 내려보내기로 결정한다. 출발하기 전, 풍환이 맹상군에게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라고 묻자, 맹상군은 "우리 집에 무엇이 부족한지 보고 사오시오"라고 답한다.
풍환은 설 땅에 도착해 맹상군의 돈을 빌려 쓴 사람들의 차용증을 대조해보고 총 10만전의 이자를 거두어들였다. 돈을 걷은 후 풍환은 몇 마리의 소와 몇 동이의 술을 산 다음, 돈을 빌리 빚쟁이들에게 차용증을 가지고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잔치를 베푼다. 한 바탕의 잔치가 열린 다음, 풍환은 한 명 한 명의 차용증을 대조해보고는 돈을 갚을 능력이 되는 자에게는 이리적으로 기한을 정해주고, 돈을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의 차용증은 불태워버린다. 빚쟁이들이 영문을 모르고 기뻐하자, 풍환은 "맹상군 공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드린 까닭은 농사를 짓고 상업을 할 자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함이었소. 본래 공께서는 이자를 받을 마음이 없었지만 공은 식객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어 내게 돈을 받으라 명하셨소. 이제 차용증을 대조해보니 지불할 수 있는 돈은 모두 청산되었고 가난한 자의 차용증은 모두 불태웠소. 이 모든 것은 맹상군 공의 은혜이니 여러분은 부디 잊지마시오!" 라고 말하였다. 그 즉시 주민들은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며 만공의 은혜에 감격하였다.
맹상군이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풍환을 불러 대뜸 말했다. "나는 선생에게 이자를 받아오라 했는데, 선생은 돈을 거두자마자 바로 소와 술을 사고, 또 차용증을 불태웠소. 선생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오?" 풍환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 부디 공자는 서두르지 마십시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회를 열지 않았다면 어떻게 채무자들을 찾아 오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채무자가 오지 않는데, 누가 이자를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지불 기한이 정해졌으니, 기한 내에 충분히 이자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8년, 10년 기한을 줘봤자 갚을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도망치기 마련입니다. 만약 공이 이자 내기를 강요한다면, 돈은 얻지 못하고 나쁜 명성만 얻을 것 입니다. 제가 이렇게 쓸모 없는 차용증을 불태움으로 설 주민들로 하여금 당신을 존경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좋은 일입니다. 제가 떠날 때, 공은 나에게 부족한 물건이 무엇인지 보고 사오라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엔 금은보화가 넘쳐나는데, 유독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의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를 사가지고 온 것입니다" 맹상군은 이를 듣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 바탕 울음을 쏟아내며 "되었소, 선생은 가서 쉬시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풍환을 더 냉담하게 대하였다.
맹상군을 구제하다 - 교토삼굴(狡兎三窟)
제나라 민왕은 초나라와 진나라가 계획적으로 민왕과 맹상군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헛소문에 넘어가, 맹상군이 높은 공을 세워 본인에게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 하며 바로 맹상군을 직무에서 면직시켰다. 그러자 맹상군의 휘하에 있던 식객들이 모두 하나같이 줄줄이 맹상군의 곁을 떠나 흩어지기 시작한다. 오직 풍환만이 그의 곁에 남아 전심전력으로 맹상군을 모셨다. 맹상군은 의기소침한 채로 자신의 봉지인 설 성구에 돌아가 일 없이 한가로이 집에만 머물렀다. 하루는 맹상군은 시내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멀리서 사람들이 늙은이를 모시거나 어린아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풍환에게 "선생이 나에게 준 정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 교활한 토끼는 굴이 세 개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공자께는 설 성구 한 곳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공자께 다른 두 개의 안전한 굴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 한 곳은 진국의 함양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입니다." 라고 회답했다. 풍환은 맹상군과 함께 할 것을 맹세하고, 맹상군은 그에게 많은 금과 수레를 주었다. 풍환은 그 길로 즉시 수레를 타고 진나라로 향했다.
풍환은 진나라로 향하는 길에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에 들러 민왕을 만났다. 민왕을 만나 풍환은 "대왕께서는 진왕이 맹상군을 데리고 가려 함을 알고 계셨습니까?"라고 숨을 가쁘게 쉬며 급한 모양새로 물었다. 민왕을 놀라며 그것이 사실이냐고 되물었고, 풍환은 "저는 제눈으로 그들이 수레 백대를 보내고, 심지어 금 천근을 우리에게 가지고 온 것을 보았습니다."라 답했다. 또한 "맹상군 공이 아직 진국으로 가지 않아 다행이지만, 만약 맹상군 공이 진나라의 재상이 된다면 우리 제나라는 이대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즉시 맹상군 공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더 많은 봉토를 주어야 합니다." 라 덧붙였다. 또 풍환은 의심하는 민왕에게 "맹상군은 제나라의 오랜 신하이니, 이를 거절하진 않을 것 입니다. 비록 진나라가 강대하다곤 하나, 우리의 오랜 재상을 데려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