店
語源
형성자. 广(집 엄, 의미부)와 占(차지할 점, 소리부)로 구성되었으며 '가게'를 뜻하는데, 어떤 고정된 위치를 차지한(占) 곳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건물(广)이라는 뜻이다.[1]
한편 『汉字树』에서는 '집 막(屋棚) 아래에서 사람들에게 점치던 곳' 지금의 '가게'라는 의미를 낳았다고 해석하고 있다.[2]
文化
중국 고대 사람들 중 ‘점쟁이’는 점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사기(史记)》에는 전국시대 제(齐)나라 재상이 점쟁이를 이용해서 대장군 전기(田忌)를 모함했던 고사가 기재되어있다.[3]
제나라 재상 성후 추기(邹忌)와 대장군 전기는 불화가 있었고, 그는 수하에 책사 공손한(公孙闲)을 두었는데, 거듭 전기를 모함하는 계책을 올렸다.
한 번은 공손한이 전기의 부하인 척 사칭하는 사람을 보냈는데, 2백냥의 은을 가지고 가 점쟁이 집에서 말했다.
“대장군 전기가 위나라를 공격해서, 삼전삼승을 거뒀는데,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나는 그의 측근이니, 현재 우리가 왕위를 도모하는데 네가 우리를 위해 점을 쳐보게나. 길한가, 길하지 않은가?”[4]
오래 지나지 않아, 재상 성후 추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점쟁이를 붙잡아 제나라 왕 앞에서 대장군 전기가 역모를 꾀했다고 무고하게 하니, 대장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글자 店이 지금의 '가게'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기(史记)》에서 언급된 것처럼 점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음을 수 있다.
店이 '가게'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당(唐)나라에 방문했던 승려 엔닌(円仁)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엔닌은 당에서 머무는 동안 숙식을 해결했던 여러 시설에 관해 기록했는데, 구법승이라는 개인적 신분으로 엔닌은 보통원(普通院), 일반 가택(家宅), 그리고 점(店)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또한 당(唐)나라 때는 店이 창고, 상점, 여관 등 복합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소규모 향촌이나 초시(草市, 시골 장터)에도 店이 있었기에 엔인은 시장과 마을을 지나면서 店을 숙박시설로 이용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