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막야
개요
간장(干將)과 막야(莫耶)는 춘추전국 시절 중국의 고사에 등장하는 한 쌍의 명검과 그들을 만든 명공(名工) 부부의 이름이다. 보통 양검인 웅검을 간장이라 하고 음검인 자검을 막야라 한다. 고사성어로 쓰일 경우 좋은 칼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인다.
역사
오월춘추
오월춘추 제4 '합려내편'
합려의 즉위 후, 합려는 오자서를 행인[1]으로 삼아 제후의 사신을 접대하는 등 객례를 맡게하고 함께 국정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오자서는 안군치민의 다스림을 펴서 가까운 군주는 따르게 하고 먼 곳의 제후는 제압해야 함을 주장하며 성곽을 건설하여 수비태세를 갖추고 창고를 가득채워 군사를 잘 먹이고 훈련시켜야 함을 주장했다. 이후 축성과 함께 군사력을 늘리고자 군사들에게 전술, 말타기를 교육시켰으나 사용할 무기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또 전에 월나라에서 명검 세자루를 바쳐온 일이 있었는데 합려는 이 명검들을 보물로 여겼다. 상기 이유들로 인해 간장과 막야라는 검장에게 청하여 명검 두자루를 만들게 했다. 간장은 오나라 사람으로 월나라의 구야자와 함께 한 스승에게서 검장수업을 한 명장이었고 막야는 간장의 처이다. 간장은 오산의 정기가 서린 철정을 캐고 천지사방 육합의 정기가 서린 구리를 캐서[2] 천기와 지기를 살펴 음양을 조화시켜 쇠를 녹이고자 했으나 좀처럼 녹지 않았다. 간장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3]
막야가 말하기를
“왕께서 당신에게 명검을 만들게 하신지 석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명검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간장이 대답했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소.”
막야는 남편에게 말했다.
“신물이라 할만큼 훌륭한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반드시 사람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얻은 후에야 명검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간장이 말했다.
“전에 나의 스승께서도 이 같은 일이 있었는데 스승님 부부가 함께 용광로에 몸을 던져넣은 이후에야 쇠를 녹일 수 있었소. 이후에 나는 그들을 추모하여 마로 만든 띠를 두른 채 제사를 지내고 난후에야 감히 산에서 쇠를 캐고 주금을 했고 지금 쇠가 녹지 않는 건 그때와 같은 이유일까요?”
막야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도 사람의 몸으로 쇠를 녹여야 할 것을 아시고 몸을 불살라 명검을 만들었는데 어찌 첩이 이를 어려워 하겠습니까?”
막야는 두발과 손톱, 발톱을 깍아 몸을 정결히 한 후 용광로에 뛰어 들었다. 이에 간장은 어린 여성과 남성 300명으로 하여금 용광로를 두드리면서 불을 때게 하니 비로소 쇳물이 녹아 내려 간신히 두자루의 명검을 만들 수 있었다.[4] 이렇게 명검 두자루를 만들고 양검인 간장에는 거북무늬를 새겼으며 음검인 막야에는 물결무늬를 새겼다. 간장은 두 자루의 명검중 웅검인 간장은 숨기고 자검인 막야만을 바쳤다. 검을 받은 합려는 매우 흡족해 하며 소중히 여겼다. 때마친 노나라 권력자 계손이 사신으로 왔는데. 막야를 계손에게 바쳤다. 계손이 칼을 빼어보니 칼날에 기장만한 흠이 있었다. 계손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아름다운 검이다. 비록 상국의 장인이라도 이보다 잘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대저 검이 만들어 졌으니 오나라는 패자가 될것이나 칼날에 흠이 있기에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어찌 이를 받을 수 있겠는가?” 라고하며 돌아갔다. [5]
수신기
수신기 11권
초나라에 검을 만드는 장인 간장과 막야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초나라 왕을 위해 검을 만들었으나 3년이나 걸렸다. 초왕은 화를 내며 간장을 죽이려 했다. 검은 자검과 웅검 두 개였다. 당시 막야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왕을 위해 검을 주조하는데 3년이 걸렸소. 왕이 극대노했으니 필시 나를 죽일 것이오. 당신이 만일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애가 성인이 되면 ‘집을 떠나 남산을 향해 가라. 동 위에 난 소나무가 보일 것이다. 그 나무 북쪽에 검이 있을 것이다’라고 이르시오.”
간장은 자검인 막야만 들고 초왕을 알현하러 갔다. 왕은 크게 노했고 결국 간장을 죽였다. [6] 막야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적비라고 했다. 훗날 적비가 장성하자 어머니에게 물었다.
“제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나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초왕을 위해 검을 만들었단다. 그런데 완성하는 데 3년이나 걸리자 왕이 노해 죽였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너에게 ‘집을 나가서 남산으로 향하다가 소나무가 돌 위에 난 곳을 보면, 그 북쪽에서 검을 찾아내라’고 당부하셨다.”
적비는 집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산은 보이지 않았으나 소나무가 주춧돌 위에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도끼로 기둥 북쪽을 깨뜨렸고 아버지의 검을 찾았다. 검을 찾은 적비는 어떻게 복수할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한편 초왕은 꿈을 꿨는데 미간이 한 척은 될 정도로 넓은 아이[7]가 초왕에게 복수 하겠노라 말했다. 왕은 곧 천금의 현상금을 걸고 간장의 아들 적비를 수배했다. 적비는 이 소문을 듣고 산속에 숨어 애절한 노래를 부르며 떠돌았다. 하루는 우연히 어떤 협객과 조우했다 협객이 물었다.
“자네는 젊은데 어찌 그토록 비통한 노래를 부르는가?”
적비가 대답했다.
“저는 간장과 막야의 아들입니다. 초왕이 제 아비를 죽였기에 복수하고자 합니다!”
협객이 말했다.
“자네 머리에 현상금이 걸렸다더군. 자네, 자네의 머리와 검을 모두 내게 주게. 내가 자네를 위해 대신 복수해주겠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스스로 목을 베었다. 적비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와 검을 받들어 협객에게 올렸다. 머리없는 그의 몸은 여전히 뻣뻣하게 서 있었다.
“결코 자네의 바람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걸세.”
그제야 시신은 푹 쓰러졌다. 협객은 적비의 머리를 들고 초왕을 찾아갔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것은 용사의 머리이니 큰 솥에 넣어 끓여야 할 것입니다.”
초왕은 그 말대로 했으나 사흘밤낮이 지나도 머리가 물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뛰어올라 눈을 부릅뜨고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의 머리가 물러지지 않으니 청컨대 왕께서 직접 솥 앞으로 가시어 그를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물러질 것입니다.”
초왕은 솥으로 다가갔다. 그때 협객의 검이 휙 소리를 내며 단번에 왕의 목을 베었다. 협객은 자신의 목도 베었다. 세 개의 머리가 함께 흐물흐물 물러지자 구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솥안의 고깃국을 셋으로 나눠 장사를 지내고 한번에 합쳐 삼왕묘라고 불렀다. 여남군 북의춘현 경내에 있는 삼왕묘가 이것이다.
서술의 차이
오월춘추에서는 오나라를 배경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간장, 막야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오나라 멸망의 복선도 보여준다. 합려의 집권당시에는 오나라의 전성기였으며 따라서 오월춘추에서 바람직한 군주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특징들을 보여주는데 당시 오나라가 우수한 철기문명과 그를 바탕으로 한 보병전술이 유명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수신기에서는 초나라를 배경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간장,막야가 만들어진 이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검 자체보다는 그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갈등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어리석고 포악한 군주의 부정적인 측면 또한 많이 묘사되는데 ‘초인목후이관’, ‘각주구검’ 등의 고사를 보면 후대 역사에서는 초나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간장과 막야의 설화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수신기에서는 간장막야 설화의 증거물로 삼왕묘를 들고 있는데 이는 전설이라는 장르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구전으로 전승된 이야기들을 옮겨담은 수신기의 제작과정으로 고려해본건데 전승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추가되다보니 군주의 덕목을 칭찬하는 내용보다는 상대적으로 군주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토로하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여 이들을 심판하는 내용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
주검
루쉰의 새로 엮은 옛이야기- 주검(鑄劍)
내용의 대부분은 수신기에 나와있는 간장과 막야 설화와 비슷하나 아들의 이름이 '미간척'으로 설화와는 다르다. 또 다양한 현대적 문학 기법들이 사용되었는데 미간척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간장의 날이 무디다는 점을 통해 표현하고 초반의 쥐를 잡는 장면과 마지막의 솥안에서 머리가 춤추는 장면을 대비하는 등이 해당된다. 루쉰의 소설의 절정은 마지막에 왕을 암살하는 장면으로 금 솥안에서 미간척의 머리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왕을 유혹하다가 결국 왕을 암살하고 왕의 머리를 자른 자객, 왕, 미간척의 머리가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데 끝까지 삶의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왕의 모습과 복수를 완수하려는 미간척과 암살자의 모습이 대비되어 극적인 반전요소를 준다. 이후 각종 신하와 대신들이 솥을 보며 한참동안 회의하는 장면을 통해 이들의 무능력함을 비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서적
오월춘추 / 조엽 景仁文化社, 2004
수신기(수신기=搜神記 : 신화란 무엇인가) / 간보 지음 임대근, 서윤정, 안영은, 옮김 동아일보사, 2016
루쉰소설전집 / 루쉰 지음 ; 김시준 옮김 을유문화사, 2008
고사성어
그 외
- ↑ 나라를 찾아오는 사신 접대를 맡는 관직. 대행인과 소행인이 있다.
- ↑ 당시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따라서 구리로 검을 만든 것.
- ↑ 철은 구리에 비해 녹는 점이 높다.
- ↑ 전승에 따라 머리 카락, 손톱 발톱만 넣었다는 설부터, 음모를 넣었다는 설, 300명의 어린 여성을 함께 넣었다는 설등이 있다.
- ↑ 이는 복선이 되어 합려의 아들인 부차(夫差)대에 가서 오나라는 월나라의 구천에 의해 멸망한다.
- ↑ 혹은 더 좋은 명검을 만들까봐 죽였다는 설도 있다.
- ↑ 이는 이후 루쉰의 소설에서 아이의 이름이 미간척이 되는 모티브를 제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