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해
호해(胡亥) | |
---|---|
| |
출생 |
B.C 230? 진(秦)나라 함양 |
사망 |
B.C 207 |
생존시기 | 진(秦)나라 (재위 : B.C 210 ~ B.C 207) |
별칭 | 이세황제(二世皇帝) |
목차
개요
진나라의 2대황제로서 성은 영(嬴), 이름은 호해(胡亥)이다. 진시황의 18번째 아들로,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에 의해 이세황제(二世皇帝)의 자리에 올랐으나, 정치에 관심이 없고 대규모 토목 사업을 강행했으며 민심을 살피지 못했다. 결국 재위 3년만에 자결하고, 진(秦)은 멸망한다.
(재위기간 : B.C 210 ~ B.C 207)
생애
진시황의 죽음, 간신들의 역할로 왕위에 오르다
시황제 37년 10월, 황제는 다섯 번째 지방 시찰 길에는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 그리고 시황제가 친히 아끼는 막내아들 호해가 동행했다. 순행 중 사구에 이르렀을 때, 시황제의 병이 더욱 깊어졌고 황제는 장남 부소에게 왕위를 넘기고자 유서를 남긴다.
해당 유언은 다음과 같다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으로 돌아와 짐의 유해를 맞이하고 장례를 거행하라”
시황제는 장남 부소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르고 뒤를 이어 황제가 되라는 뜻을 전했지만 이들 일행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호해를 황제로 만들 음모를 꾸몄다. 조고는“아직 천자의 승하도 공표되지 않았고 장례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을 승상에게 의논 하겠소? 그렇기 때문에 일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빨리 처리해야합니다.”라며 호해를 설득했고, 이후 승상 이사를 만나 부소가 왕위에 오른다면 승상으로 몽염이 기용될 것이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그리하여 시황제의 유언을 꾸며 호해를 태자로 세운 후, 부소에게 내리는 조서를 작성했는데, 서한을 받은 부소는 눈물을 흘리며 자결했다. 이를 사구정변이라 한다.
허수아비 군주의 삶, 신하들의 세력다툼으로 조정이 엉망이 되다
이세황제 집권 1년차
이세황제 원년, 황제의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고, 조고는 호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나랏일을 전담했다. 호해는 재위 초기, 어린 나이와 적은 경험으로 백성들의 복종을 걱정하며, 나약하게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이세황제는 조고와 이를 의논했고, 요동으로 순행을 갔다 돌아온 뒤, 본인을 따르지 않는 대신들과 공자들에 대항할 방법을 고안한다. 조고는 “무엇보다도 법을 엄격히 하고 처벌을 가혹하게 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연좌제를 적용하여 모든 일가 친척을 죽여 없애고, 궁중에서는 대신들을 없애며 폐하의 가족까지 멀리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시황제께서 임명한 옛 신하들은 모두 파면하고 폐하께서 신임하는 사람만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폐하는 베개를 높이 베고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호해는 엄격한 법을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두 조고에게 처벌하게 하였고, 조고는 즉시 대신들과 여러 공자들을 죽이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는 물론 몽염 장군을 비롯한 왕자 12명을 시장에서 공개 처형했다. 또한, 호해는 “아방궁을 버려두고 완공하지 않는다면, 이는 선제께서 거행한 일이 잘못이었음을 밝히는 것이오.” 라며 아방궁을 다시 지었다. 이에 사람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진승·오광의 난이 발생했다.
이세황제 집권 2년차
겨울에 진섭이 보낸 주장 등의 무리가 서쪽으로 나아가 병사의 숫자가 십만이었다. 이세황제가 크게 놀라 여러 신하들과 상의하였고, 소부 장한이 말했다. “여산에 죄수들이 많으니 그들을 사면하시고 무기를 주어 도적을 무찌르십시오.” 이세황제가 즉시 천하에 대사면을 내린 후, 주장의 군대를 격파하러 보냈다. 이에 이세황제는 진승을 성보에서 죽이고, 항량을 정도에서 무찔렀으며 위구를 임제에서 죽였다. 조고는 이를 견제하며 “선제께서는 천하에 군림하여 제압하신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여러 신하들이 감히 그릇된 짓을 하거나 사악한 말을 진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나이가 한창 젊으신 데다 이제 막 즉위하셨는데 어째서 공경들과 함께 나랏일을 정하십니까? 일이 잘못된다면 이는 신하들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천자가 ‘짐’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실로 군신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뜻입니다" 이에 이세는 늘 궁중에 머물며, 조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함께 모든 일을 결정했다. 그 후로 공경들이 천자를 알현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어졌으며, 도적들은 더욱 많아졌다. 어느 날, 우승상 풍거질, 좌승상 이사, 장군 풍겁이 간언하여 말했다. “관동 지방에서 도적 떼가 일어나자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니 죽거나 도망치는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도적들이 많아지는 것은 수송하는 일이 고달프고 세금도 많기 때문이다. 청컨대 아방궁 짓는 것을 잠시 멈추시고 변방의 요역과 운송을 줄여주십시오” 조고는 본인과 대척하는 신하들을 자연스럽게 제거할 수 있었다. 호해는“짐이 즉위하고 두 해 사이에 도적 떼가 일어났는데도 그대들은 막지 못했고, 이제와서는 선제께서 손대신 사업을 버리려 하니 이것은 위로는 선제께 보답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짐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자리에 있는 것이냐?”라며 이들의 죄를 심문하게 했고, 풍거질과 풍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사는 옥에 갇혔다 오형을 받았다.
비극적인 죽음과 진나라의 멸망
이세황제 집권 3년차
조고는 승상이 되어 마침내 이사를 심판하여 처형했다. 항우가 진나라 장수를 물리치고, 장한의 군대가 퇴각했으며, 연나라, 조나라, 제나라, 초나라, 한나라, 위나라는 모두 스스로 자리에 올라 왕이 되니, 함곡관 동쪽에서부터 거의 모두 진나라 관리를 배반하고 제후들에게 호응했다. 조고는 이세황제가 화가 자신을 살해할까 염려하여 천자를 바꿔 공자 자영을 왕위에 올리려 한다. 그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염락에게 관리를 부르고 군대를 일으키도록 했으며, 이세황제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데 죽음 직전에 그는 자신의 잘못을 직접 간언하는 환관을 만나게 된다.“그대는 어찌하여 일찌감치 나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신이 감히 아뢰지 않았으므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신이 일찍 아뢰었더라면 이미 처형되었을 것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염락은 병력을 동원하여 이세황제를 향하도록 하였고, 이세황제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호해 형의 아들 공자 자영을 진나라 왕으로 삼고, 더 이상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조고는 천하를 누리기를 기대하였으나, 왕위에 오른 자영은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
관련인물 및 일화
진승•오광의 난
이세황제 집권 2년차 7월, 대규모 강제 노역이 시작되었고 진승과 오광은 소대장격 인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비때문에 기한 내에 도착할 수 없게 된 진승과 오광은 이들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며 부소와 항연의 행세를 하고 반란을 도모한다. 백성들은 대부분 진나라 왕조에 등을 돌렸고, 진승은 진성을 점령한 후 지방 유지들을 모아 자신의 뜻을 설명했다. 진승은 스스로 자리에 올라 초왕이 되었으며, 진현에 머물면서 여러 장수들을 보내 땅을 점령하게 했다. 그들은 진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연합하여 서쪽으로 향했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동쪽으로 보낸 알자가 와서 반란이 일어났음을 이세황제에게 보고했고, 반란군 내부에 분열이 생겨 장수들은 오광을 죽이고 머리를 진승에게 바쳤다. 이에 패색이 짙어진 진승과 오광의 난을 제압하게 된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
이세황제 집권 2년차 8월 기해일에 조고가 모반을 일으키기로 하고는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되어 시험을 하고자 한다. 조고는 주요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황제에게 사슴을 선물로 바쳤고, “폐하를 위해 귀한 말을 한 마리 데려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세황제가 웃으며 “에이 이게 어떻게 말이란 말이요”라고 하자, 조고는 대신들에게 직접 보이겠다고 말했고, 사슴이라고 답한 자는 살고 말이라 말한 자는 죽었다.
참고문헌
1. 사마천, 김원중 역 「사기본기」, 민음사, 2015, 250-274쪽
2. 사마천, 김진연 역 「사기 (1)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 서해문집, 2002, 290-302쪽
3. 사마천, 김진연 역 「사기 (3)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 서해문집, 2002, 96-105쪽
4. 두산백과
5. 중국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