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
語源
春자는 회의자이면서 동시에 형성자이다. 갑골문의 春자는 하나의 ‘日’과 세 개의 ‘木’과 ‘屯’자에 의해 구성되었고, 그중 屯(zhūn)은 春자의 독음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풀과 나무 새싹의 모습을 표현한다. 이것들이 조합된 전체 글자가 표현하는 것은, 따스한 햇살(日) 아래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屯) 초목(木)을 그려 놓고 봄을 표현한 것이다. [1] 당대 유우석의 시에 따르면 : ‘침몰한 배 옆으로 수많은 배들이 지나가고 병든 고목 앞에는 온갖 나무들이 봄을 맞는다.’ 이런 생기발랄한 모습은 오직 일 년의 첫 번째 봄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春자의 본래 의미는 ‘봄철’을 가리키고, 일 년 중 춘하추동 사계의 첫 번 째 이다. 음력의 1, 2, 3월과 같다.
달리 茻대신 艸가 들어간 萅으로 쓰기도 한다. 봄이 원래 뜻이며, 만물이 자라나는 계절이므로 욕정이나 춘정의 뜻이 나왔다. 또 봄부터 다음 봄까지의 시간인 한 해를 뜻하기도 하며, 동쪽을 상징하며, 술을 지칭하기도 한다. [2]
文化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사계 중 첫 번째 계절이다. 봄이 되면, 산과 들은 푸른색으로 물들고, 새싹이 피어오르고,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갑골문, 금문에서의 春자를 살펴보면, 여기저기 돋는 새싹 모양과 해를 나타낸 日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이 春자를 만들 당시 따뜻한 햇볕 아래 피어오르는 새싹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이 일 년을 사계절로 정확하게 구분했던 것은 아니다. 갑골문에는 단지 春과 秋 두 자만 나오고 冬과 夏가 없는데, 이 같은 사실은 최초에 춘추가 사계를 대표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墨子(묵자)’에 四時(사시)를 언급했는데, 그 순서가 춘하추동이 아닌 춘추하동이다.[3]
갑골문 시대인 상나라 때에는 여름과 가을로만 구분했고, 봄과 겨울의 구분은 주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여름과 가을이 봄과 겨울보다 먼저 나타난 것은, 일 년이란 시간 개념을 그들은 수확을 중심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4] 당시 고대인들에게 있어, 계절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량생산에 있어 언제 양식을 수확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