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표비
개요
공표비는 171년(후한)의 예서비이며 공자의 자손인 공표(孔彪)의 묘비이다. 정식 명칭은 漢故博陵太守孔府君碑이며 비문예서, 원석은 산동성 곡부 공묘(山東省曲阜孔廟)에 보관되어 있다.[2]공표비는 한비(漢碑) 중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비석이다. 그 이유로는 문자의 마멸이 심하고 불명확하다는 점과 문자의 완성도가 동시대 예서비와 비교했을 때 미숙하다는 점이 있다. 그러나 그 미완성 자형 가운데 한비 최고 걸작인 조전비(曹全碑)와 유사한 부분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특징
다른 한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세(波勢:물결처럼 흔들리는 필법[3])는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다. 다른 한비보다 파책(波磔:옆으로 긋는 획의 종필을 오른쪽으로 흐르게 뻗어 쓰는 필법[4])을 극단적으로 길게 쓰는 특징이 있으며 파책에 비해 글씨 아랫부분 비율을 적게 함으로써 파책을 강조하고 글씨를 납작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른 한비와의 비교
한비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공주비(孔宙碑)는 공표의 형제인 공주(孔宙)의 묘비이다. 공표비보다 7년 이른 164년에 새겨진 것이며 완성도가 아주 높은 비석이다. 공주비가 한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반면, 공표비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문자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것과 다른 후한 예서비에 비해 문자가 미완성인 것이 그 이유이다.
일본의 서예가 上小倉一志는 자신의 글로 공표비와 조전비를 비교하여 용필법이나 자형의 공통성을 설명하고 있다. 완성도가 높은 조전비에 비해 공표비는 미숙한 부분이 많이 있으나 글씨의 비율이나 균형이 비슷해 보인다. 또 한비에는 획을 쓸 때 붓을 강하게 멈추는 필법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공표비, 조전비처럼 붓을 쓱 빼듯이 쓰는 필법은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君자같은 경우 대부분의 석비에서는 정방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그려지는데 공표비와 조전비는 납작한 자형으로 그려졌다. 이처럼 같은 시대의 다른 석비들과 비교를 하였을 때 공표비와 조전비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특징이 있는 점에서 이 두 석비의 용필법 근본이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上小倉一志는 공표비가 조전비보다 14년 일찍 건립되었다는 점과, 두 석비가 인접하는 지역에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공표비는 조전비 작자가 예전에 만든 작품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고 한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