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후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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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유약하고 무능하며 꼭두각시에 불과한 혜제를 <본기>에 넣지 않고, 실질적으로 천하를 장악했던 여태후를 넣어 천자가 아닌데도 <본기>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게 했다. 이는 여태후가 제왕의 명성은 없었어도 실제적 제왕의 지위를 누렸다는 현실론에 근거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마천이 보기에 여태후가 황로학설을 추존해 도가의 무위를 다스림의 근본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을 과소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여태후가 전횡하여 유씨일족을 내몰고 노회한 공신들을 제거하거나 모욕해 세력을 구축한 것은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사마천은 한나라 초기의 중요한 정치 정쟁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아울러 여태후의 표독함, 간사함 등을 비롯해 여태후 일족의 몰락 과정까지 다채롭고 다양한 형상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 서술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사마천의 현실론은 그 대담성에서 평가를 받을만 하고, 평이 좋지 않은 여태후를 긍적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자했다는 점에서, 이 편은 <<사기>> 전체에서 독특한 한편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 편은 맹목상으로는 '기紀'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상 '전傳'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여태후 한 사람에게 서술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