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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의 衆자는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걸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땅 위에서 노동하는 모양을 상형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태양 아래 김을 매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금문과 소전의 衆자는 위의 태양이 目으로 변했는데, 마치 노예 주인이 소처럼 큰 눈으로  노예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감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衆의 본래 뜻은 노예 무리를 가리켰는데, 뜻이 확장되어 ‘군중’, ‘모든 사람’, ‘여러 사람’을 가리키며, 동시에 사람이나 사물의 많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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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衆자는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걸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땅 위에서 노동하는 모양을 상형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태양 아래 김을 매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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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과 [[소전]]의 衆자는 위의 태양이 [[目]]으로 변했는데, 마치 노예 주인이 소처럼 큰 눈으로  노예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감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衆의 본래 뜻은 노예 무리를 가리켰는데, 뜻이 확장되어 ‘군중’, ‘모든 사람’, ‘여러 사람’을 가리키며, 동시에 사람이나 사물의 많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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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商 시대에는 서민庶民을 소인小人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경작지를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라의 토지를 경작하여 공납을 해야 하는 의무도 있었다. 서민은 노예 신분은 아니지만 세금을 체납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또는 죄를 지어서 노예로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주시기에 이르러 서庶와 중衆은 모두 토지를 경작하는 農奴를 가리켰는데 이들은 귀족들의 착취대상이긴 하였으나 완전히 노예계층에 속하지 않은 ‘준 노예계층’이었다.<ref>설문해자와 중국고대문화, 왕닝 외 2명, 학고방, p.8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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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商 시대에는 서민庶民을 소인小人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경작지를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라의 토지를 경작하여 공납을 해야 하는 의무도 있었다. 서민은 노예 신분은 아니지만 세금을 체납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또는 죄를 지어서 노예로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주시기에 이르러 서庶와 중衆은 모두 토지를 경작하는 農奴를 가리켰는데 이들은 귀족들의 착취대상이긴 하였으나 완전히 노예계층에 속하지 않은 ‘준노예계층’이었다.<ref>설문해자와 중국고대문화, 왕닝 외 2명, 학고방, p.84</ref>
  
邑(읍)에 모이는[聚] 사람들을 衆(중)이라고 한다. 뒷날 윗부분이 目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고대에 자형이 바뀐 매우 드문 예 가운데 하나다. 만일 그 目이 臣과 마찬가지 뜻을 지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神)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인(衆人)이 농사지은 것은 신전(神田)을 경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중인(대중)의 본래 존재 양식이었을지 모른다. 고대의 노예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사(神事)에 관여하였던 데서 기원하였던 것 같다.<ref>한자, 백 가지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황소자리, p.17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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邑(읍)에 모이는[[聚]] 사람들을 衆(중)이라고 한다. 뒷날 윗부분이 目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고대에 자형이 바뀐 매우 드문 예 가운데 하나다. 만일 그 目이 [[臣]]과 마찬가지 뜻을 지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인(衆人)이 농사지은 것은 신전(神田)을 경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중인(대중)의 본래 존재 양식이었을지 모른다. 고대의 노예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사(神事)에 관여하였던 데서 기원하였던 것 같다.<ref>한자, 백 가지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황소자리, p.175</ref>
  
또한 衆은 복사에서 “戊寅에 점을 쳐서 빈이 묻습니다. 왕이 가서 중衆을 거느리고, 경囧으로 하여금 경작을 하게 할까요?”, “경신庚申에 점을 쳐서 형兄이 묻습니다. 모든 중衆에게 명령하여 호위하게 할까요?”라고 하듯, 농경이나 군대와 관련된 일을 담당했는데, 그 행동은 왕이나 왕족의 직접적인 지휘와 명령을 받는 것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생산 노예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衆은 왕실이 여러 씨족에게 명령하여 이른바 진인進人으로서 왕실에 올려져 그 경영지에 배속되었던 듯하다. 衆은 아마도 일정 기간 사인[舍人:궁중의 곡물을 담당한 주나라의 관명]이나 방인[防人: 수비를 맡은 사람]처럼 본래 왕실의 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와 같은 복무자 집단이 은주 혁명기에 포로로 붙잡혀 인력人鬲이 되어, 주 초에는 한때 노예제에 가까운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본래의 노예제라고 할 수 없다.<ref>漢字의 世界, 시라카와 시즈카, 솔출판사, p.47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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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衆은 복사에서 “戊寅에 점을 쳐서 빈이 묻습니다. 왕이 가서 중衆을 거느리고, 경[[囧]]으로 하여금 경작을 하게 할까요?”, “경신庚申에 점을 쳐서 형兄이 묻습니다. 모든 중衆에게 명령하여 호위하게 할까요?”라고 하듯, 농경이나 군대와 관련된 일을 담당했는데, 그 행동은 왕이나 왕족의 직접적인 지휘와 명령을 받는 것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생산 노예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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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은 왕실이 여러 씨족에게 명령하여 이른바 진인進人으로서 왕실에 올려져 그 경영지에 배속되었던 듯하다. 衆은 아마도 일정 기간 사인[舍人:궁중의 곡물을 담당한 주나라의 관명]이나 방인[防人: 수비를 맡은 사람]처럼 본래 왕실의 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와 같은 복무자 집단이 은주 혁명기에 포로로 붙잡혀 인력人鬲이 되어, 주 초에는 한때 노예제에 가까운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본래의 노예제라고 할 수 없다.<ref>漢字의 世界, 시라카와 시즈카, 솔출판사, p.474</ref>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23년 11월 9일 (목) 14:11 기준 최신판

語源

무리 중.png

갑골문 衆자는 뜨거운 태양이 하늘에 걸려 있고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땅 위에서 노동하는 모양을 상형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태양 아래 김을 매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금문소전의 衆자는 위의 태양이 으로 변했는데, 마치 노예 주인이 소처럼 큰 눈으로 노예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감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衆의 본래 뜻은 노예 무리를 가리켰는데, 뜻이 확장되어 ‘군중’, ‘모든 사람’, ‘여러 사람’을 가리키며, 동시에 사람이나 사물의 많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文化

殷商 시대에는 서민庶民을 소인小人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경작지를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라의 토지를 경작하여 공납을 해야 하는 의무도 있었다. 서민은 노예 신분은 아니지만 세금을 체납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또는 죄를 지어서 노예로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서주시기에 이르러 서庶와 중衆은 모두 토지를 경작하는 農奴를 가리켰는데 이들은 귀족들의 착취대상이긴 하였으나 완전히 노예계층에 속하지 않은 ‘준노예계층’이었다.[1]

邑(읍)에 모이는 사람들을 衆(중)이라고 한다. 뒷날 윗부분이 目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고대에 자형이 바뀐 매우 드문 예 가운데 하나다. 만일 그 目이 과 마찬가지 뜻을 지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인(衆人)이 농사지은 것은 신전(神田)을 경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중인(대중)의 본래 존재 양식이었을지 모른다. 고대의 노예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사(神事)에 관여하였던 데서 기원하였던 것 같다.[2]

또한 衆은 복사에서 “戊寅에 점을 쳐서 빈이 묻습니다. 왕이 가서 중衆을 거느리고, 경으로 하여금 경작을 하게 할까요?”, “경신庚申에 점을 쳐서 형兄이 묻습니다. 모든 중衆에게 명령하여 호위하게 할까요?”라고 하듯, 농경이나 군대와 관련된 일을 담당했는데, 그 행동은 왕이나 왕족의 직접적인 지휘와 명령을 받는 것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생산 노예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衆은 왕실이 여러 씨족에게 명령하여 이른바 진인進人으로서 왕실에 올려져 그 경영지에 배속되었던 듯하다. 衆은 아마도 일정 기간 사인[舍人:궁중의 곡물을 담당한 주나라의 관명]이나 방인[防人: 수비를 맡은 사람]처럼 본래 왕실의 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와 같은 복무자 집단이 은주 혁명기에 포로로 붙잡혀 인력人鬲이 되어, 주 초에는 한때 노예제에 가까운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본래의 노예제라고 할 수 없다.[3]

  1. 설문해자와 중국고대문화, 왕닝 외 2명, 학고방, p.84
  2. 한자, 백 가지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황소자리, p.175
  3. 漢字의 世界, 시라카와 시즈카, 솔출판사, p.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