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금산사 보고서 2014650014 신경섭 1월 8일 오후 3시 반, 대만에서 이 시기는 우기라 하여 1달을 기준으로 절반이상의 시간을 비와 함께 보낸...)
 
1번째 줄: 1번째 줄:
금산사 보고서
 
2014650014
 
신경섭
 
 
 
1월 8일 오후 3시 반, 대만에서 이 시기는 우기라 하여 1달을 기준으로 절반이상의 시간을 비와 함께 보낸다 한다. 우리가 가는 날 역시 흔한 열대지방 우기의 날씨대로 비가 굉장히 많이 왔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금산사의 험한 산길을 올라감에 있어서는 비가 멈추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비가 그친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산 전체는 안개로 뿌옇게 보였다. 버스기사님 말씀에 의하면 5m 앞도 제대로 안 보인다고 들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올라간 금산사는 내리자마자 그 풍경이 나에게는 마치 신선이 사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첩첩산중의 중턱에 자리한 절과 뿌연 안개구름이 절을 에워싸는 모습과 사람의 왕래가 적어보이는 금산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한참 감탄 속에서 금산사에 들어가자 절안은 또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정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며 여러 불상들을 보던 중 스님분이 관람에 있어서 주의사항을 얘기해주시면서 이곳에 대해 가볍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여 궁금증만 커지게 되었으나, 후에 무슨 말을 하셨던건가 하고 이 금산사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계기가 되었다.
 
1월 8일 오후 3시 반, 대만에서 이 시기는 우기라 하여 1달을 기준으로 절반이상의 시간을 비와 함께 보낸다 한다. 우리가 가는 날 역시 흔한 열대지방 우기의 날씨대로 비가 굉장히 많이 왔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금산사의 험한 산길을 올라감에 있어서는 비가 멈추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비가 그친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산 전체는 안개로 뿌옇게 보였다. 버스기사님 말씀에 의하면 5m 앞도 제대로 안 보인다고 들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올라간 금산사는 내리자마자 그 풍경이 나에게는 마치 신선이 사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첩첩산중의 중턱에 자리한 절과 뿌연 안개구름이 절을 에워싸는 모습과 사람의 왕래가 적어보이는 금산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한참 감탄 속에서 금산사에 들어가자 절안은 또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정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며 여러 불상들을 보던 중 스님분이 관람에 있어서 주의사항을 얘기해주시면서 이곳에 대해 가볍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여 궁금증만 커지게 되었으나, 후에 무슨 말을 하셨던건가 하고 이 금산사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금산사는 九分지역에서 오래된 대불사 중에 하나로서 지리상으로는 시내를 기준으로 약간 외곽 쪽에 위치해 있다. 그 중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만 보자면 금산사원이라는 명목으로 지어진 건물은 1930년대 九分이 일제에 의해 금광이 개발된 초기이다. 이후 금광사업의 발달로 크게 흥행하게 된 대양회사에게 그 주변에서 사원 건축을 지원해 달라 부탁을 하였고 대양회사는 흔쾌히 승낙하며 본당 토지를 기부한다. 이후 중간중간에 건물을 추가로 더 지으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이름 역시 중간에 일본의 불교 (일본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곧 해방이후인 1945년에 다시 금산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후에 2001년 대대적인 전면 공사 이후 2006년이 되어서야 금산사는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먼저 금산사는 九分지역에서 오래된 대불사 중에 하나로서 지리상으로는 시내를 기준으로 약간 외곽 쪽에 위치해 있다. 그 중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만 보자면 금산사원이라는 명목으로 지어진 건물은 1930년대 九分이 일제에 의해 금광이 개발된 초기이다. 이후 금광사업의 발달로 크게 흥행하게 된 대양회사에게 그 주변에서 사원 건축을 지원해 달라 부탁을 하였고 대양회사는 흔쾌히 승낙하며 본당 토지를 기부한다. 이후 중간중간에 건물을 추가로 더 지으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이름 역시 중간에 일본의 불교 (일본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곧 해방이후인 1945년에 다시 금산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후에 2001년 대대적인 전면 공사 이후 2006년이 되어서야 금산사는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2018년 1월 22일 (월) 14:27 판

1월 8일 오후 3시 반, 대만에서 이 시기는 우기라 하여 1달을 기준으로 절반이상의 시간을 비와 함께 보낸다 한다. 우리가 가는 날 역시 흔한 열대지방 우기의 날씨대로 비가 굉장히 많이 왔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금산사의 험한 산길을 올라감에 있어서는 비가 멈추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비가 그친지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산 전체는 안개로 뿌옇게 보였다. 버스기사님 말씀에 의하면 5m 앞도 제대로 안 보인다고 들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올라간 금산사는 내리자마자 그 풍경이 나에게는 마치 신선이 사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첩첩산중의 중턱에 자리한 절과 뿌연 안개구름이 절을 에워싸는 모습과 사람의 왕래가 적어보이는 금산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한참 감탄 속에서 금산사에 들어가자 절안은 또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정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며 여러 불상들을 보던 중 스님분이 관람에 있어서 주의사항을 얘기해주시면서 이곳에 대해 가볍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여 궁금증만 커지게 되었으나, 후에 무슨 말을 하셨던건가 하고 이 금산사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금산사는 九分지역에서 오래된 대불사 중에 하나로서 지리상으로는 시내를 기준으로 약간 외곽 쪽에 위치해 있다. 그 중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만 보자면 금산사원이라는 명목으로 지어진 건물은 1930년대 九分이 일제에 의해 금광이 개발된 초기이다. 이후 금광사업의 발달로 크게 흥행하게 된 대양회사에게 그 주변에서 사원 건축을 지원해 달라 부탁을 하였고 대양회사는 흔쾌히 승낙하며 본당 토지를 기부한다. 이후 중간중간에 건물을 추가로 더 지으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이름 역시 중간에 일본의 불교 (일본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나 곧 해방이후인 1945년에 다시 금산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후에 2001년 대대적인 전면 공사 이후 2006년이 되어서야 금산사는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또한 금산사 안에 지어진 코끼리상과 사자상과 같은 건축물 역시 인상 깊었다. 이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등 예의를 갖추며 함께 이 절을 수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금산사 입구 기준으로 오른쪽을 보게 되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돌계단이 나오게 되는데 이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7개의 구덩이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 100개의 계단과 7개의 구덩이는 그 당시 금광산업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하였는데 정확히 알아보기에는 자료가 부족하였다. 얼추 추정하기로는 구덩이는 금광 갱도를 열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재 7개의 구덩이는 금광이 닫은 이후 방치된 채 버려져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금산사는 九分지역 사람들에게 불교적인 믿음 아래 신앙생활을 펼칠 수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한적한 삶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는 해안에 접해있는 산속 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여유로움을 보여 준다. 그리고 우리가 갔을 당시의 금산사는 굉장히 한적한 것을 넘어서 적막하였으나 여름철에는 그곳에서 행사와 같은 것을 통해서 홍보를 하며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마치며 느꼈던 점 중 조사에 있어서 너무 아쉬웠던 것이 정보의 부족이었다. 지우펀의 시내, 타이베이의 여러 관광명소들의 대한 정보는 넘치고 있었지만 금산사는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보는 커녕 사진조차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재밌다고 소문난 곳이나 자극적인 활동이 있는 곳의 재미 역시 좋겠지만 한번쯤은 조용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를 하는 여행 역시 의미있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