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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나이에 맞지 않는 뛰어난 글솜씨를 보였다. 적은 나이인 22살의 나이에 진사로 급제했고, 과거시험을 주재한 구양수(歐陽修)가 후원해줬고,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했다. 26살이 되던 해에는 제과(制科)에도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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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20:54 판

<晚笑堂画传>의 소식 인물화

개요

소동파(소식蘇軾,1037년~1101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또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

생애

소식은 현 쓰촨성(四川省) 메이산(眉山)에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순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며, 이름은 식이지만 동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은 부유한 지식인 집안이면서 저명한 문인집안이었다. 소식은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이었고, 그의 동생인 소철 역시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이었다. 이 세 명의 부자를 삼소(三蘇)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식은 여섯 살 어린나이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능숙하게 글재주를 보였다. 19세에 결혼을 하고, 22세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진사 시험을 주재했던 당대의 글을 잘 짓기로 소문난 구양수(歐陽修)에게 극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때맞춰 돌아가셔서 삼년간 상을 치러야 해서 일을 하지 못하고 3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이후 소식은 현재 산시성인 봉상부(鳳翔府) 참판으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일을 수행했으며, 임기를 마치고 나서는 변경으로 돌아와 궁정의 사무를 담당했다. 1068년에 소식은 재혼을 했으며, 이 시기가 지나며 신법파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일생을 유배생활이나 각지 지방관 생활을 하며 보내게 된다. 1093년 선인태후가 죽고 신법당이 재집권하며 소식은 중국에서 가장 오지로 속하는 해남도로 귀양살이를 떠나게 되고, 결국 1101년 5월 쇠약해진 몸으로 겨우 살다 같은 해 7월에 세상을 떠나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과거급제까지

소식은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나이에 맞지 않는 뛰어난 글솜씨를 보였다. 적은 나이인 22살의 나이에 진사로 급제했고, 과거시험을 주재한 구양수(歐陽修)가 후원해줬고,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했다. 26살이 되던 해에는 제과(制科)에도 합격했다. 

관직생활

소식은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바로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3년상, 시묘살이를 마친 후 제과에 응시하고 급제하여 봉상부(鳳翔府) 참판으로 부임해 첫 관직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소식이 관리로 일을 시작한 시기가 신종황제가 새로운 개혁정치를 시작한 시기이다. 

1065년 부인 왕씨와 사별하고 그녀의 생전 모습을 <망처왕씨묘지명>에 담았다. 이듬해 아버지 소순마저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상을 치렀고, 다시 상경한 1068년은 신종이 즉위한 해이면서 소식이 재혼을 하고 변경으로 돌아온 해이기도 하다.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물자조달을 합리화하기 위한 균륜법, 농촌에 빈농을 보호하려는 청묘법 등의 신법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신법에 반대했던 구법파인 소동파는 중앙관직에서 해임되어 항주, 밀주, 서주, 호주 등의 지방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신법파와의 대립

유배생활

생애 요약

1037~1061(1~25세) 성장, 과거급제, 모친상 3년
1061~1071(25~35세) 관직생활, 왕안석과 대립 후 항주로 전출
1071~1079(35~43세) 항주, 밀주, 서주, 호주 지방관
1079~1085(43~49세) 황주로 유배 (신법당을 비판했던 것이 화근)
1085~1094(49~58세) 사면 복권 (신종 사망, 선인태후 섭정, 구법당 복권)
1094~1101(58~65세) 담주로 유배 및 사망 (선인태후 사망, 철종 친정, 신법당 복권)




작품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