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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 즉위했던 [[진시황]]은 이제 점점 성년이 되었다. 하지만 [[조 태후]]와 [[여불위]]와의 관계를 그칠 줄 몰랐다. [[여불위]]는 자신과 [[조 태후]]와의 외도가 발각이 될 까 두려워 거대한 음경을 가진 [[노애]]라는 인물을 몰래 데려와 [[조 태후]]와 정을 나누게 하였다. [[조 태후]]는 [[노애]]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노애]]는 태후의 권력을 등에 업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게 되고 거느리는 사람이 수천 명이 되었다. [[노애]]와 [[조 태후]]는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진나라]]의 왕으로 만들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진시황]]은 이 일을 상세히 밝히고 [[여불위]]가 관련이 되어있음을 알고 [[노애]]의 삼족을 멸하고 [[노애]]와 관련된 모든 자들을 처단하였다. 또한 [[노애]]와 [[조 태후]]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죽이고 [[조 태후]]를 먼 땅으로 내쫓았다. 원래라면 [[여불위]]를 처벌하여야 했으나 [[진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 중에 [[여불위]]의 빈객 출신들이 많았기에 마음대로 처벌할 수가 없었고 결국 [[여불위]]를 하남 지방으로 떠나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식객들이나 사신들이 [[여불위]]를 찾아가자 위기를 느낀 [[진시황]]은 [[여불위]]에게 편지를 보내며 옥죄었다. 이에 [[여불위]]는 독주를 마시고 자살을 하게 된다.
 
  
 
[[분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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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21:50 판

여불위

출생 ??
??(한나라 사람임)
사망 ?? 진시황 10년 권력에서 물러난 뒤, 자살한 것으로 기록됨.
생존시기 전국시대
주요 작품 여씨춘추

개요

여불위 그는 누구인가?

그는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대상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거상(巨商)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건만을 사고파는 상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에게서도 가치를 찾아내 사람마저도 투자대상으로 판단하는 비범한 상인이었고, 더 나아가 킹메이커이자 한 나라의 실세로 군림한 권신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인(異人)은 장양왕(莊襄王)이 되지 못했을 테고, 진시황(秦始皇)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즉, 그가 없었다면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秦)나라 또한 없었다. 이 정도로 그는 중국 역사에 영향력이 큰 존재이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처절하기 짝이 없다. 진시황의 아버지가 여불위라고 믿는 관점에서 보면 여불위는 그의 친아들 진시황에게 협박을 받아 끝내 자결하고 말았다. 한때 나라의 왕 노릇을 하던 그가 초라하게 자결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불위 관련 인물관계도

생애

불분명한 출생연도와 출신

그의 안목과 기개: 기화가거

화양부인을 사로잡은 그의 재력과 지력

대업을 위해 바친 애첩

하늘도 도와주는 순풍 여불위

노애의 오만함, 여불위의 몰락

보이지 않는 미래, 눈앞에 놓인 독주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