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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가운데 중.png

고대 중국에서 깃발은 '유(斿)'로 알려진 여러 개의 띠로 구성되었다. 띠가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었는데, 왕의 깃발은 무려 12개나 되는 띠로 구성되었다. 갑골문금문에 나타난 ‘중(中)’자는 여러 띠를 지닌 깃발처럼 보이고, 한 개의 나무 조각이 장대의 중간에 묶여져서 장대를 튼튼하게 했는데 이 나무 조각을 ‘중(中)’이라고 했다. 장대 가운데 위치하여 상유와 하유를 가운데서 분리하여, ‘중(中)’은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안에’,‘속에’라는 뜻으로도 파생되었다.
한편 일반적인 사람의 처세의 태도 가운데, 어느 극단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한다. 중행(中行), 중용(中庸) 등이 그 예이다.

文化

중(中)’과 고대 중국의 군대

‘중(中)’자는 기원전 680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이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이다. 동주시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고 ‘중심에 위치한 나라’라 하여 ‘중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中)’자는 많은 학자에 의해 수없이 논의된 글자이다. 그 의미 해석은 다양하다.

(1) 외곽 가운데에 길 하나가 있는 모양

(2) 화살 하나가 과녁을 꿰뚫는 모습이라고 해석

(3) 깃발 장대 가운데 매달린 북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 중 두 번째 ‘화살이 과녁을 꿰뚫은 해석’은 두 개의 서로 다른 평면에서 화살과 과녁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다고 세실리아 링크비스트는 생각했다.[1] 그녀는 ‘중(中)’과 ‘여(旅)’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깃대 중심에 있는 원형의 ‘띠’가 무엇이냐는 점에 주목했다. 그녀는 ‘중(中)’을 고대 군대에서 깃발 장대에 걸었던 ‘북’이라고 여겼다. 진영의 가운데에 위치한 깃발에 군대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북’을 매달고 고수가 북을 치는 모습에서, 갑골문에 나온 ‘가운데 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여겼다.

중(中)’ - 부대 가운데 깃발에 북이 매달린 모습

전쟁은 옛날에 신들의 싸움이었다. 공공과 전욱의 싸움, 유궁국의 군주였던 이예와 물의 신 하백의 싸움, 은 왕조의 시조인 상갑미와 유역국의 군주의 싸움 등은 신화 속에서 많이 보인다. 고대에는 신과 인간의 세계는 아직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다. 신은 그대로 씨족의 수호신이자 씨족 그 자체였다. 신들의 애증이 씨족이나 영웅들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은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중국뿐만 아니라 그리스 서사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2]

북소리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의 힘을 불러일으키며 사람에게 신의 힘을 부여한다. 또한 북은 고대 중국에서 제왕의 권력과 군대의 지휘권을 상징했으며, 각 부대는 군 지휘관이 위치해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깃발을 중심으로 북을 크게 울려 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전쟁 때의 북소리는 신의 위엄을 떨치고 사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군의 승패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참고그림3‘의 갑골문에서 가운데 ‘띠’ 좌우에 그려진 부분은 ‘북’을 쳐서 울리는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 팽’의 갑골문, 금문에서도 북을 쳐서 소리가 난다는 표현을, 가운데 부분 옆에 사선으로 그어진 선을 볼 수 있다. ‘팽’과 ‘중’의 갑골문, 금문을 살펴보면 가운데 네모난 모양과 옆에 그어진 사선 등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中)’은 깃발 장대 가운데에 매달린 북의 의미로도 해석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3]

고대 중국인들은 중앙을 숭상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중앙을 숭상했다. 선진시대의 도시는 외부로 성곽을 쌓고, 그 중간에 다시 성을 쌓아 중앙에 왕궁을 세웠는데, 이를 중성(中城)이라고 했다. 이러한 중앙중심 사상은 지리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 중국(中國)은 중하(中夏), 중화(中華), 화하(華夏)라고도 일컬었다. 이것은 자신들의 나라가 천하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뿌리가 깊다. 은나라 사람들도 자기들의 관할지역이 사방의 중심구역에 있다고 믿어 자칭 중상(中商)이라고 칭했던 사실이 복사에도 나타난다. 은나라의 ‘殷’자에도 ‘中’의 뜻이 있다. ‘商’을 ‘殷’으로 개칭한 것은 반경이 ‘殷’이라는 곳으로 천도함으로써 생긴 국명이지만, 그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역시 ‘殷’이 천하의 중심지라고 믿은 심리가 깔려있다.

고대인들은 지상뿐 아니라 하늘의 뭇 별도 태미(太微)·자미(紫微)·천시(天市)의 삼원으로 나누고, 이 중에 자미원이 중심이라고 여겨 이를 자미궁(紫微宮) 또는 중궁(中宮)이라고 했다. 즉, 천제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紫는 황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궁(紫宮)·자금(紫禁) 등은 다 황궁의 뜻이다. 천상의 자미성을 황제의 거처에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북경에 있는 자금성(紫禁城) 역시 이전의 황궁을 개칭한 고유명사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고대 중국인들이 중앙을 숭상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東西南北中과 오색(五色>

유럽 남부와 소아시아의 사이에 위치하는 흑해(黑海)는 왜 흑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외국지명어원사전』에 이러한 해석이 나와 있다. “흑해의 남부는 모두 아시아 국가인데, 고대에 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흑색으로 북방을 나타냈기 때문에 북방의 바다를 흑해라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동남서북과 중앙의 5방위와 청적백흑황의 5색을 서로 연결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북경의 중산공원에 명청시대 황제가 토신(土神)과 곡신(穀神)에게 제사 지내던 사직단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위에 5색의 흙을 깔아 놓았다. 동남서북 순서대로 靑土, 赤土, 白土, 黑土 그리고 중앙에 黃土를 깔아 놓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볼 수 있는 5방위와 5색이 배합되었다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이다.
  1.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324
  2. 시라카와시즈카, “한자의세계”, 솔출판사, 2008, pp.225-226
  3. 시라카와시즈카, “한자의세계”, 솔출판사, 2008,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