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지교
춘추시대 비교적 중원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던 조(趙)나라는 오랑캐와의 접촉이 많았다. 이에 무령왕은 오랑캐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배워야 한다며 유목민족의 전투병인 기마병을 도입하고, 말 타기 좋도록 위아래가 하나로 연결된 오랑캐의 복장을 군복으로 채택하였다. 호복기사(胡服騎射).그 결과 조나라는 다른 나라와의 싸움에서 연전연승 하였고, 당시 서방의 강대국이었던 진(秦)나라의 미움을 사 표적이 되고 만다.
그럴 즈음 진나라가 조나라에 회담을 요청했다. 임금끼리 만나서 화합을 다지자는 요청이었다. 이를 위해 조나라 임금이 진나라를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나라 임금은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아리송했다. 혹여나 억류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진나라를 방문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회담에 응하지 않으면 조나라는 '겁쟁이 나라’라는 소문이 날 것 같았다. 조나라 임금은 측근인 염파와 인상여를 불러 상의했다. 인상여는 자신이 잘 해결할 수 있다며 일단 회담에 응하자고 했고, 인상여가 임금을 수행해 국경을 넘었다.
두 임금은 회담을 하면서 술자리를 벌였다. 회담 도중, 진나라 신하는 진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나라의 성 15개를 넘겨줄 수 없겠냐고 했다. 그러나 인상여는 우리 조나라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진나라의 수도 함양성을 넘겨줄 수 없겠냐고 받아쳤다. 이런 식의 말이 오고 갔고, 결국 회담은 깨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조나라는 인상여의 적절한 임기응변 덕분에 진나라의 콧대를 누를 수 있었다. 이에 조나라 임금은 인상여를 칭찬하면서 상경이라는 최고 벼슬을 내렸다.
인상여가 벼락출세를 하자, 염파가 발끈했다. 염파의 계급도 상경이었지만, 인상여의 직급이 더 높았던 것이다. 염파는 자신은 전쟁터를 무수하게 누빈 공으로 떳떳하게 벼슬을 받았는데, 인상여는 보잘것없는 ‘세 치 혀’를 놀려서 자신보다 높은 자리를 받았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인상여는 염파가 자신을 벼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인상여는 화가 났지만 염파를 피해 다녔다. 길거리에서 마주칠 것 같으면 수레를 돌리도록 했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다. 인상여의 이런 행동은 손가락질 대상이 되었고, 인상여의 측근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불만의 목소리에 인상여가 말했다.
“진나라가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파와 다툰다면 그것은 진나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염파를 피한 것이다. 나는 진나라의 임금에게도 큰소리를 쳤던 사람이다. 얼마든지 염파를 상대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 문제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윗도리를 벗은 채, 회초리를 한 짐 가득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부형청죄(負荊請罪).
염파와 인상여는 화해했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문경지교(刎頸之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