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왕실의 쇠퇴와 춘추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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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왕실의 쇠퇴와 춘추시대의 도래

주 왕실의 쇠퇴

주의 동천

서주 중기부터 주나라 왕실의 세력은 쇠약해졌고 동천 이후, 제후들의 보호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주 왕실의 쇠퇴를 몇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서주와 비교했을 때 동주의 영토는 매우 감소하였다. 동천 이후 이전 영토의 일부는 진(秦) 양공에게 사여되었고, 옛 도읍 호경을 비롯한 일부의 영토는 견융족(犬戎族)에게 점거당했다. 또 일부 지방은 제후들에게 침탈 당해 춘추 중기 이후 실질적 주나라의 영토는 당시 중소 제후국의 영토와 비슷한 정도였다. 또 조빙제도가 그 의미를 상실하게되었다. 천자의 권위가 높던 서주 때, 제후가 천자에 정기적으로 조빙하던 제도가 있었는데, 춘추시대에 이르러서는 조빙제도가 유명무실 해졌다. 영토와 백성이 감소하고 제후들의 조빙마저 끊기자 주나라 왕실의 재원은 바닥나게 된다. 주 평왕(平王)이 죽었을 때 장례비용이 없어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 장례비용을 구걸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대의 규모 역시 축소되었다. 서주시대의 주 천자는 최소 14사의 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동주시대에 이르러 그 수가 감소하여 주의 군사력은 제후국보다 못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주 천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제후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춘추시대

춘추 오패

주나라의 봉건제는 혈연적 종법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덕분에 초기에는 결속력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혈연관계가 약화되자 결속력 역시 약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주 왕실의 세력이 약해지자 제후국의 세력이 강력해지고 주 왕실 중심의 봉건 질서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일반적으로 주의 동천 이후를 춘추시대의 시작이라고 본다. 춘추시대에는 약 140여개의 국가가 존재했는데 이들중 가장 세력이 강성했던 다섯개의 나라를 춘추오패라고 한다. 춘추라는 명칭은 공자의 책 제목, 《춘추》에서 유래한다. 봉건적 질서를 대신하여 등장한 것이 회맹의 질서였다. 주 천자가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하고 있었던 춘추시대 초기의 회맹은 명분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실리를 추구하는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최초의 회맹은 제 환공의 규구회맹인데 제 환공은 존왕양이의 명분으로 제후들을 불러 모았다. 이를 통해 춘추시대 주 왕실의 세력은 약했지만 명목상의 권위는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중기와 다르게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 명목상의 권위마저 사라지게 된다. 제후국이 아니던 초, 오, 월이 패자가 되면서 존왕양이 명분은 점차 퇴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