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개자추
개자추는 진문공과 19년을 함께하며 같이 유랑한 사람이다. 진문공이 혜공에게 쫓겨 위나라를 갔을 때, 진문공은 여러 날 먹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다. 일행은 오록이라는 지방에서 농부에게 음식을 구걸했는데도 흙 한 그릇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 때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굶주린 진문공의 배를 채워주었다. 진문공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효심이 지극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노모를 봉양하였다. 진문공은 고국에서 돌아와 그동안 함께한 이들의 공로를 조사하여 상을 주려 했다. 하지만 개자추가 고향에 갔던 것을 알지 못하고, 사방으로 수소문을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진문공은 개자추를 찾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는 방을 각지에 붙였다. 개자추의 집에도 그 방이 붙여졌는데, 개자추는 노모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 제가 문공을 따라다닌 것은 그가 진나라를 구할 수 있는 덕망을 지녀 도와야겠다는 자발심에서 나온 행동이었지 논공을 바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 — 박인수, 춘추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그는 오로지 진나라의 안위만을 원하고 논공행상을 바라지 않은, 애국심 있고 청렴한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그의 뜻을 이해하고, 둘은 아무도 몰래 면산으로 숨었다. 평소 그와 절친했던 해장은 그가 그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다시 사라진 것을 안 뒤 수소문하여 모자가 면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진문공에게 알리자 그는 산의 곳곳을 찾아다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진문공은 그의 효심이 지극함을 알고 궁리한 끝에 산에 불을 지르게 된다.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그가, 노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산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흘 밤낮 동안을 기다려도 모자는 나오지 않았고,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모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숨져 있었다. 진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산의 이름을 개산으로 바꾸고, 사당을 지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불에 타죽은 개자추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날을 전후하여 불을 사용하지 않은 찬 음식을 3일동안 먹게 했다. 이는 중국 한식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