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文化) |
(→文化)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語源== | ==語源== | ||
[[파일:효도 효.png|500픽셀|오른쪽]] | [[파일:효도 효.png|500픽셀|오른쪽]] | ||
− | 孝는 고대 봉건사회에서 숭배하는 | + | 孝는 고대 봉건사회에서 숭배하는 도덕 표준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을 “孝”라고 불렀다. 고문자의 孝자는 위 부분은 허리와 등이 굽고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의 모습이며, 아래쪽의 어린이([[子]])가 노인을 부축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노인을 공경하며, 노인을 보좌하는 것, 이것은 효도의 구체적 표현의 하나이다.<ref>谢光辉, 《常用汉字图解》, 北京大学出版社, 1999, p.66</ref> |
==文化== | ==文化== | ||
‘老’에 ‘子’가 더해진 모습, 즉 노인이 아들에게 업혀 있는 모습이 효도와 효자를 뜻하는 ‘孝’자이다. 이 글자는 나이든 부모를 자식이 등에 업고 모시는 모습, 즉 봉양하는 모습을 반영한 글자이다.<ref>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163</ref> | ‘老’에 ‘子’가 더해진 모습, 즉 노인이 아들에게 업혀 있는 모습이 효도와 효자를 뜻하는 ‘孝’자이다. 이 글자는 나이든 부모를 자식이 등에 업고 모시는 모습, 즉 봉양하는 모습을 반영한 글자이다.<ref>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163</ref> | ||
− | 옛날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부모에 대한 효도는 지극히 강조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를 받들고 자라서는 봉양해야 하며, 돌아가신다 해도 그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했고, 제사를 모셔 부모의 은덕을 기렸다. 그래서 ‘孝’는 | + | 옛날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부모에 대한 효도는 지극히 강조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를 받들고 자라서는 봉양해야 하며, 돌아가신다 해도 그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했고, 제사를 모셔 부모의 은덕을 기렸다. 그래서 ‘孝’는 ‘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주요한 2대 개념으로 인식되었으며, 나이든 노인들은 국가 차원에서 존중되었다. 그리하여 나이에 따른 노인의 명칭도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었다. 예컨대 60세 노인을 ‘耆’, 70세 노인을 ‘老’, 80세 노인을 ‘耋’, 90세 노인을 ‘耄’라 했다.<ref>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p.163-164</ref>이를 통해 한 문화권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관심을 두는 현상에 대한 어휘가 다양하게 발전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인은 환경의 특성상 ‘눈’에 관한 명사가 다양하게 발전되어 쓰이고 있다. |
− | + | 주나라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친 주요 교육 주제의 하나는 효도였다. 유가들은 효행을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안정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효에 대한 [[공자]]의 사상은 [[논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우 광범위하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모를 부양하고 시중들어야 하며, 돌아가신 후에도 또한 부모의 남긴 뜻을 받들어야 했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사회에서도 그들의 윗사람을 잘 따를 것이며 통치자의 총애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ref>허진웅,『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335</ref> | |
− | |||
− | 주나라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친 주요 교육 주제의 하나는 효도였다. 유가들은 효행을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안정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효에 대한 | ||
<big>'''孝의 갑골문 자형에 대한 다른 해석'''</big><br> | <big>'''孝의 갑골문 자형에 대한 다른 해석'''</big><br> | ||
− |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에서의 孝로 추정되는 글자는, 글꼴의 | + |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에서의 孝로 추정되는 글자는, 글꼴의 모양으로 볼때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아들이 노부모를 모신다는 뜻의 글자 형태(老+子)가 아니란 해석도 있다. <ref> 김덕균, 「은대 가족주의와 효문화 검토」, 『효학연구』, vol.25, 2017.</ref> 갑골문에 나온 孝에서의 하단부의 아들 子는 여기서도 분명하게 보이나, 상단부의 글꼴은 노인 노[[老]]가 아니라 봉할 봉[[封]]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ref> 최근 나온 曹錦炎, 沈建華編著, 甲骨文校釋總集(上海, 上海辭書出版社, 2006年)과 廖文豪, 漢字樹(北京, 北京聯合出版公司, 2013年)에서도 이 글자를 子와 封의 합문으로 정리했다.</ref><br> |
− | 갑골문에서 [[封]]은 흙으로 쌓아 그 위에 띠풀로 덮어서 만든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고, | + | |
− | 따라서 갑골문의 효(孝)란 글자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아니라 정치 경제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孝는 처음에는 자연성에 기초한 부모 공경의 모습과는 무관했고, 주대 청동기 금문 이후에서야 그 의미가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의미, 즉 | + | 갑골문에서 [[封]]은 흙으로 쌓아 그 위에 띠풀로 덮어서 만든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고, [[금문]]에서도 땅에 인공적으로 수목을 심어 경계를 표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ref>곧 분봉(分封), 봉강(封疆)의 봉이다. 갑골문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방(邦)도 띠풀로 경계를 삼은 형태이다. 분봉 받은 땅을 방이라 한 것이다.</ref><br> |
− | 조상에 대한 제사가 부모공경의 효라고 한다면, 이는 부모, 조상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공경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인만의 조상 제사의식이라면 이는 정치적 맥락에서의 정치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통치권의 정통성 확인과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 부모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을 한 것은 순수한 孝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목적 하에 부모공경의 제사를 이용한 것이라면 유교문화의 조상제사 기원은 일종의 정치 행위라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 + | |
+ | 따라서 갑골문의 효(孝)란 글자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아니라 정치 경제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孝는 처음에는 자연성에 기초한 부모 공경의 모습과는 무관했고, 주대 청동기 금문 이후에서야 그 의미가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의미, 즉 부모를 공경한다는 의미의 孝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商]]의 조상제사와 관련된 글자와 내용들이 충분하며 효를 창출할만한 충분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에도 그 당시에 우리가 흔히 인지하는 의미로서의 ‘孝’ 글자가 없는 것은 부모공경을 의미하는 ‘孝 ’개념이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 갑골문에 자주 등장하는 조상제사 관련 내용은 주로 집권층에 국한된,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머물렀다. 특권층만의 조상을 기리는 제사였기에 오늘날 윤리적 의미의 孝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br> | ||
+ | |||
+ | 조상에 대한 제사가 부모공경의 효라고 한다면, 이는 부모, 조상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공경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인만의 조상 제사의식이라면 이는 정치적 맥락에서의 정치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통치권의 정통성 확인과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 부모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을 한 것은 순수한 孝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목적 하에 부모공경의 제사를 이용한 것이라면 유교문화의 조상제사 기원은 일종의 정치 행위라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상나라는 주변 지역과 비교해서 중심국이었고, 이른바 ‘中商’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ref> 김경일, 「갑골문을 통해본 ‘中國’ 명칭의 문화적 기원」, 『중국학보』,vol.53, 2006, pp.28~32</ref>‘中’은 주변 사방의 ‘神’에 둘러싸인 공간적 중심에 상나라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며 강한 지배질서 체계를 구축하려는 뜻에서 스스로 절대적 존재임을 밝히며 주변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다. |
2021년 4월 23일 (금) 13:36 기준 최신판
語源
孝는 고대 봉건사회에서 숭배하는 도덕 표준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을 “孝”라고 불렀다. 고문자의 孝자는 위 부분은 허리와 등이 굽고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의 모습이며, 아래쪽의 어린이(子)가 노인을 부축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노인을 공경하며, 노인을 보좌하는 것, 이것은 효도의 구체적 표현의 하나이다.[1]
文化
‘老’에 ‘子’가 더해진 모습, 즉 노인이 아들에게 업혀 있는 모습이 효도와 효자를 뜻하는 ‘孝’자이다. 이 글자는 나이든 부모를 자식이 등에 업고 모시는 모습, 즉 봉양하는 모습을 반영한 글자이다.[2]
옛날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부모에 대한 효도는 지극히 강조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를 받들고 자라서는 봉양해야 하며, 돌아가신다 해도 그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했고, 제사를 모셔 부모의 은덕을 기렸다. 그래서 ‘孝’는 ‘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주요한 2대 개념으로 인식되었으며, 나이든 노인들은 국가 차원에서 존중되었다. 그리하여 나이에 따른 노인의 명칭도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었다. 예컨대 60세 노인을 ‘耆’, 70세 노인을 ‘老’, 80세 노인을 ‘耋’, 90세 노인을 ‘耄’라 했다.[3]이를 통해 한 문화권에서 특별히 주목하고 관심을 두는 현상에 대한 어휘가 다양하게 발전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인은 환경의 특성상 ‘눈’에 관한 명사가 다양하게 발전되어 쓰이고 있다.
주나라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친 주요 교육 주제의 하나는 효도였다. 유가들은 효행을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안정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효에 대한 공자의 사상은 논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우 광범위하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모를 부양하고 시중들어야 하며, 돌아가신 후에도 또한 부모의 남긴 뜻을 받들어야 했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사회에서도 그들의 윗사람을 잘 따를 것이며 통치자의 총애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4]
孝의 갑골문 자형에 대한 다른 해석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에서의 孝로 추정되는 글자는, 글꼴의 모양으로 볼때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아들이 노부모를 모신다는 뜻의 글자 형태(老+子)가 아니란 해석도 있다. [5] 갑골문에 나온 孝에서의 하단부의 아들 子는 여기서도 분명하게 보이나, 상단부의 글꼴은 노인 노老가 아니라 봉할 봉封자와 비슷하다는 것이다.[6]
갑골문에서 封은 흙으로 쌓아 그 위에 띠풀로 덮어서 만든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고, 금문에서도 땅에 인공적으로 수목을 심어 경계를 표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7]
따라서 갑골문의 효(孝)란 글자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아니라 정치 경제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孝는 처음에는 자연성에 기초한 부모 공경의 모습과는 무관했고, 주대 청동기 금문 이후에서야 그 의미가 설문해자에서 말하는 의미, 즉 부모를 공경한다는 의미의 孝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商의 조상제사와 관련된 글자와 내용들이 충분하며 효를 창출할만한 충분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에도 그 당시에 우리가 흔히 인지하는 의미로서의 ‘孝’ 글자가 없는 것은 부모공경을 의미하는 ‘孝 ’개념이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 갑골문에 자주 등장하는 조상제사 관련 내용은 주로 집권층에 국한된,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머물렀다. 특권층만의 조상을 기리는 제사였기에 오늘날 윤리적 의미의 孝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 부모공경의 효라고 한다면, 이는 부모, 조상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공경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인만의 조상 제사의식이라면 이는 정치적 맥락에서의 정치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통치권의 정통성 확인과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 부모조상에 대한 제사의식을 한 것은 순수한 孝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목적 하에 부모공경의 제사를 이용한 것이라면 유교문화의 조상제사 기원은 일종의 정치 행위라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상나라는 주변 지역과 비교해서 중심국이었고, 이른바 ‘中商’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8]‘中’은 주변 사방의 ‘神’에 둘러싸인 공간적 중심에 상나라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며 강한 지배질서 체계를 구축하려는 뜻에서 스스로 절대적 존재임을 밝히며 주변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다.
- ↑ 谢光辉, 《常用汉字图解》, 北京大学出版社, 1999, p.66
- ↑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163
- ↑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7, pp.163-164
- ↑ 허진웅,『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335
- ↑ 김덕균, 「은대 가족주의와 효문화 검토」, 『효학연구』, vol.25, 2017.
- ↑ 최근 나온 曹錦炎, 沈建華編著, 甲骨文校釋總集(上海, 上海辭書出版社, 2006年)과 廖文豪, 漢字樹(北京, 北京聯合出版公司, 2013年)에서도 이 글자를 子와 封의 합문으로 정리했다.
- ↑ 곧 분봉(分封), 봉강(封疆)의 봉이다. 갑골문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방(邦)도 띠풀로 경계를 삼은 형태이다. 분봉 받은 땅을 방이라 한 것이다.
- ↑ 김경일, 「갑골문을 통해본 ‘中國’ 명칭의 문화적 기원」, 『중국학보』,vol.53, 2006, pp.2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