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숙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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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포숙아가 각자 주군을 옹립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다가 제환공의 즉위로 사안이 마무리되자 관포지교의 우의를 발휘한 대목은 감동적이다. 《국어》〈제어〉에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 관중과 포숙아가 각자 주군을 옹립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다가 제환공의 즉위로 사안이 마무리되자 관포지교의 우의를 발휘한 대목은 감동적이다. 《국어》〈제어〉에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 ||
공자규가 생두에서 피살된 직후인 기원전 685년 포숙아가 수레에 실려가는 관중을 풀어주고 공자규를 섬겼으나 보위에 올리지 못하고 절개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자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은 법이오. 우리 군주는 뜻이 크고 식견이 높으니 그대의 도움을 받는다면 능히 패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오. 공을 천하에 높이고 이름을 제후들 사이에 드날리는 것이 어찌 필부의 절개를 지켜 무익한 죽음을 취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소.” 라 하였다. 제환공에게는 관웅의 재주가 뛰어나니 속히 발탁할 것을 건의하면서 “신이 듣건데 ‘천한 몸으로는 능히 귀한 곳에 나아갈 수 없고,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를 부릴 수 없고, 소원하면 능히 부모에게도 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관중을 등용하려면 상국의 지위를 하사하고, 국록을 높이고, 부형에 대한 예로 영접해야 합니다. 무릇 상국이란 군주 다음가는 자이니 서로 가벼이 대하면 군주 또한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비상한 사람에게는 비상한 예로 대우해야 합니다. 군주는 우선 택일부터 하고, 교외까지 나가 그를 영접하십시오. 설령 원수일지라도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예의로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하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라고 하자 제환공이 이를 받아드려 관중을 등용하고 패업을 달성했다. | 공자규가 생두에서 피살된 직후인 기원전 685년 포숙아가 수레에 실려가는 관중을 풀어주고 공자규를 섬겼으나 보위에 올리지 못하고 절개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자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은 법이오. 우리 군주는 뜻이 크고 식견이 높으니 그대의 도움을 받는다면 능히 패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오. 공을 천하에 높이고 이름을 제후들 사이에 드날리는 것이 어찌 필부의 절개를 지켜 무익한 죽음을 취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소.” 라 하였다. 제환공에게는 관웅의 재주가 뛰어나니 속히 발탁할 것을 건의하면서 “신이 듣건데 ‘천한 몸으로는 능히 귀한 곳에 나아갈 수 없고,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를 부릴 수 없고, 소원하면 능히 부모에게도 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관중을 등용하려면 상국의 지위를 하사하고, 국록을 높이고, 부형에 대한 예로 영접해야 합니다. 무릇 상국이란 군주 다음가는 자이니 서로 가벼이 대하면 군주 또한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비상한 사람에게는 비상한 예로 대우해야 합니다. 군주는 우선 택일부터 하고, 교외까지 나가 그를 영접하십시오. 설령 원수일지라도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예의로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하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라고 하자 제환공이 이를 받아드려 관중을 등용하고 패업을 달성했다. | ||
+ | ==참고문헌== | ||
+ | *신동준 저, 『춘추전국의 영웅들2, 재상의 시대를 열다』, 한길사, 2011. | ||
+ | *이중톈, 『춘추에서 전국까지』, 김택규 역, 글항아리,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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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일) 14:19 판
포숙아(鲍叔牙)
포숙(鮑叔).(?-前644年).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 젊어서 관중(管仲)과 친하게 사귀었는데, 관중의 집이 가난하고 어머니가 연로하여 항상 관중을 도와주면서 막역지교(莫逆之交)를 나누었다. 제양공(齊襄公) 때 공자(公子) 소백(小白)의 사부가 되었다. 나중에 제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공자 소백을 따라 거(莒)로 달아났고, 관중은 공자규(公子糾)를 따라 노(魯)나라로 달아났다. 양공이 피살되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다투었는데, 관중이 소백의 귀로를 습격하여 소백의 대구(帶鉤, 허리띠)를 맞추었다. 소백이 죽은 척하고는 먼저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니, 그가 제환공(齊桓公)이다. 환공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자 사양하고 투옥된 관중을 석방해 그를 재상의 자리에 앉히라고 권했다. 환공이 그 말을 따라 관중을 재상에 임명했다.
관중을 돕다 (義助管仲)
포숙아는 관중의 절친이었다. 관중이 가난하던 시절 포숙아는 그의 생활을 도와주어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었다. 후에 관중은 제양공의 동생 공자규를 섬기고, 포숙아는 공자규의 동생 공자소백을 섬겼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관포지교는 크게 세 가지 사실을 전제로 성립하였다. 첫째, 주인공인 관중과 포숙아 모두 젊었을 때 장사를 할 정도로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둘째, 그럼에도 두 사람은 모두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학문을 닦았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공자규와 공자소백의 스승이 되었다. 셋째, 재주는 관중이 뛰어났으나 인품 면에서는 포숙아가 훨씬 위였다. 매번 관중이 앞서 계책을 내거나 일을 저지르고, 그가 낭패한 상황에 처할 때 마다 포숙아가 변호하였다. 관포지교는 두 사람이 재(才)와 덕(德)을 결합시켜 죽을 때까지 변합 없는 우정을 나눈 것이 특징이다. 초한전 당시 목을 벨 정도의 위험에도 생사를 함께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자랑했던 같은 〈열전〉의 진여(陳餘)와 장이(張耳)가 문득 원수로 돌변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경지교는 관포지교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매우 격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것이 잘못 전개되면 오히려 조잡해질 수 있다. 애정과 증오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한쪽이 깊어지면 그와 반대되는 경향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산이 높으면 계곡 또한 깊어지는 것과 같다. 문경지교는 우정의 강도가 높은 만큼 증오의 강도 또한 커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의협들의 우정이다. 비장한 맛은 있으나 상대적으로 그윽한 맛이 적다. 이와 반대로 관포지교는 무부(武夫)보다는 문인(文人)의 색채가 짙다. 관중의 재와 포숙아의 덕이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만일 관중과 포숙아 모두 재덕을 겸비했다면 결코 관포지교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서로의 재덕이 충돌하며 다툼을 벌였을 공산이 크다.
기인 관중에게 지은을 베푼 포숙아
관중은 훗날 포숙아를 두고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 라고 하였다. 포숙아가 부모에 준하는 은덕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관안열전〉에 나오는 관포지교의 배경을 보면 관중이 포숙아에 대해 이런 찬탄을 하게된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젊었을 때 시장에서 함께 장사한 적이 있다. 바닷가에 접해있던 제나라는 어염이 발달했기에 두 사람 모두 생선 장사에 나섰을 공산이 크다. 언제나 장사가 끝나면 관중은 포숙아보다 배나 되는 이익을 가지고 돌아갔다. 포숙아를 따르는 사람들이 불평하자 포숙아가 말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다. 내가 그에게 더 가지고 가도록 사양한 것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관중은 세 번이나 전장을 이탈했다. 사람들이 비겁한 자라 비웃자 포숙아가 말했다. “그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다. 자기 몸을 아껴 길이 늙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려는 것이다.”세 번째 일화로는 두 사람이 어떤 일을 합작할 때 아이디어를 낸 관중의 계책이 실패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관중을 어리석다고 비난하자 포숙아가 말했다. “모든 사업에는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마침 공교롭게도 그가 사업을 할 때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었을 뿐이다.”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네 번째 일화는 관중이 일찍이 3명의 주군을 모셨다가 세 번 모두 쫓겨난 적이 있다. 사람들이 관중을 불초한 자라고 비난하자 포숙아가 그를 변호했다. “사람이란 누구나 불우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가 때를 만나기만 하면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것이다.”
제환공에게 관중의 등용을 건의한 포숙아
관중과 포숙아가 각자 주군을 옹립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다가 제환공의 즉위로 사안이 마무리되자 관포지교의 우의를 발휘한 대목은 감동적이다. 《국어》〈제어〉에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공자규가 생두에서 피살된 직후인 기원전 685년 포숙아가 수레에 실려가는 관중을 풀어주고 공자규를 섬겼으나 보위에 올리지 못하고 절개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자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은 법이오. 우리 군주는 뜻이 크고 식견이 높으니 그대의 도움을 받는다면 능히 패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오. 공을 천하에 높이고 이름을 제후들 사이에 드날리는 것이 어찌 필부의 절개를 지켜 무익한 죽음을 취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소.” 라 하였다. 제환공에게는 관웅의 재주가 뛰어나니 속히 발탁할 것을 건의하면서 “신이 듣건데 ‘천한 몸으로는 능히 귀한 곳에 나아갈 수 없고, 가난한 자는 부유한 자를 부릴 수 없고, 소원하면 능히 부모에게도 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관중을 등용하려면 상국의 지위를 하사하고, 국록을 높이고, 부형에 대한 예로 영접해야 합니다. 무릇 상국이란 군주 다음가는 자이니 서로 가벼이 대하면 군주 또한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비상한 사람에게는 비상한 예로 대우해야 합니다. 군주는 우선 택일부터 하고, 교외까지 나가 그를 영접하십시오. 설령 원수일지라도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예의로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하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라고 하자 제환공이 이를 받아드려 관중을 등용하고 패업을 달성했다.
참고문헌
- 신동준 저, 『춘추전국의 영웅들2, 재상의 시대를 열다』, 한길사, 2011.
- 이중톈, 『춘추에서 전국까지』, 김택규 역, 글항아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