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冢은 높고 큰 무덤을 말하며, 갑골문과 금문, 맹서 등에서 자형의 구조가 모두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위쪽은 방의 형상 아래쪽은 가축인 돼지의 형상을 그린 것으로, 이는 고대인들이 가축과 함께 거주했던 원시 풍속을 반영한 것이다. [[家]]와 자원(字源)이 같으며,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집(家)이라면 죽어서는 무덤(冢)에 묻힌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소전(小篆)에 이르러 豕에 한 획이 추가되어 豖을 쓰고, 宀은 勹으로 그려져 무덤의 튀어나온 모양을 나타내어 집이 아님을 구분했다. 한대(漢代) 사신비(史晨碑)에 쓰인 예서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왼쪽에 [[土]]를 추가해 塚를 사용한다. | 冢은 높고 큰 무덤을 말하며, 갑골문과 금문, 맹서 등에서 자형의 구조가 모두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위쪽은 방의 형상 아래쪽은 가축인 돼지의 형상을 그린 것으로, 이는 고대인들이 가축과 함께 거주했던 원시 풍속을 반영한 것이다. [[家]]와 자원(字源)이 같으며,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집(家)이라면 죽어서는 무덤(冢)에 묻힌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소전(小篆)에 이르러 豕에 한 획이 추가되어 豖을 쓰고, 宀은 勹으로 그려져 무덤의 튀어나온 모양을 나타내어 집이 아님을 구분했다. 한대(漢代) 사신비(史晨碑)에 쓰인 예서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왼쪽에 [[土]]를 추가해 塚를 사용한다. | ||
2018년 12월 16일 (일) 23:08 판
語源
冢은 높고 큰 무덤을 말하며, 갑골문과 금문, 맹서 등에서 자형의 구조가 모두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위쪽은 방의 형상 아래쪽은 가축인 돼지의 형상을 그린 것으로, 이는 고대인들이 가축과 함께 거주했던 원시 풍속을 반영한 것이다. 家와 자원(字源)이 같으며,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는 집(家)이라면 죽어서는 무덤(冢)에 묻힌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소전(小篆)에 이르러 豕에 한 획이 추가되어 豖을 쓰고, 宀은 勹으로 그려져 무덤의 튀어나온 모양을 나타내어 집이 아님을 구분했다. 한대(漢代) 사신비(史晨碑)에 쓰인 예서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왼쪽에 土를 추가해 塚를 사용한다.
文化
소나 말, 양 등이 노천에서 사육되던 것과 달리 돼지는 인간이 거주하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 사육되었다. 이는 당시 돼지를 단순히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육하기 위해 종종 거세를 했는데, 거세한 돼지는 상대적으로 신체가 나약해 노천에서는 사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가축들과 달리 돼지만 지붕 아래에 있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돼지는 신석기시대 이후 중국 남부지방과 중앙평야에서 고기를 공급하는 중요한 가축이었고, 농경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육되던 동물이었다. 즉 상나라와 주나라 때 돼지는 고기 공급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대 중국의 무덤에서 다른 동물의 뼈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비해, 돼지의 뼈는 자주 발견된다. 豖은 사육된 돼지로 몸체에서 생식기가 잘려나간 형상을 그린 것으로, 즉 거세된 돼지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1] 혹은 豖을 발을 묶은 돼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봤을 때, 이는 순장(殉葬) 풍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여기서 고대 중국의 장례 문화와 당시 사회 풍속을 엿볼 수 있다. 돼지의 발을 묶은 것은 산 채로 무덤에 함께 묻기 위함이었다. 죽은 이가 내세에 필요할 것으로 여겨져 함께 묻는 배장품(陪葬品) 중 돼지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고대 중국에서 돼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熊国英, 『图释古汉字』, 齐鲁书社
廖文豪,『汉字树5 : 汉字中的建筑与器皿』,中国商业出版社
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영남대 중국문학연구실, 1993
- ↑ 허진웅,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