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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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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외 3인, 사계절 출판사
 
*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외 3인, 사계절 출판사
* <<중국통사>>, 범문란, 꿈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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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통사>>, 범문란, 우종사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신성곤, 윤혜영, 서해문집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신성곤, 윤혜영, 서해문집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시공사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시공사
 
[[분류:중국의 역사]]
 
[[분류:중국의 역사]]

2016년 6월 21일 (화) 14:44 판

안사의 난의 배경

7세기 후반이 되면서 율령통치가 동요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대한 표현으로 도호를 들 수 있다. 도호란 일반 민호가 국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타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무후대부터 현종대에 걸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자연재해나 관리들의 폭정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지의 겸병에 의한 소농민의 몰락과 유랑 혹은 과도한 부,병역의 편중 부담이 그 원인이었다.

이에 대해 국가에서 기존의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었다. 따라서 객호를 본적지로 송환시켜 호적에 재등재시키는 기존의 방식에서 객호의 존재를 인정하고 거주지의 호적에 등재토록 하는 등 정책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병농일치를 기반으로 한 부병제의 운용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결국 742년에 변경에 10개의 전진이란 군사통치기구를 두었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절도사를 두면서 점차 직업적인 모병제도가 일부 도입되었다. 이는 병제 전반이 부병제에서 모병제로 이행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당조에 재정의 부담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부병제는 자비부담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당조가 군대를 유지하는 데에 별다른 재정부담이 없었지만, 모병제로 바뀌면서 병사의 의료와 식량 및 생활비까지 지금해야 하는 등 부담이 늘어났다. 이들을 거느리고 있던 절도사의 세력은 계속 강화되었고, 병사와 절도사 사이에는 수양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맺는 가부자관계라는 사적인 관계가 성행해 군대 내에 사조직이 만들어졌다. 절도사는 일번적으로 장성 밖에서는 무장이, 장성 안에서는 문관이 겸임토록 했지만 점차 중앙정계에 영향력이 없는 무관이나 이민족 출신을 장성 내의 절도사로 임명하게 되었다.

안사의 난

안록산은 소구드 계통의 혼혈인으로 평로절도사의 양아들이었다가 그의 사후에 평로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범양절도사와 하동절도사를 겸임해 세 번진을 장악했는데, 휘하의 병력이 당조 전체 병력의 37%에 달했다. 이는 정말로 어마무시한 수치이다. 당의 주 병력을 안록산이 혼자 다 거느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수치이다. 이후 755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양국충과의 권력다툼 끝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한달 만에 낙양을 점령하고 반년 만에 장안을 점령해 대연을 건립했다.

그러나 각 지방에서의 강력한 저항과 위구르족의 반격을 받았다. 이후 반란군의 내분이 발생해 둘째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되었다. 또 안경서는 부당인 사사명에게, 사사명은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장군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이회선이 사조의를 죽임으로써 반란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9년 동안 화북지역을 전란으로 몰아넣은 이 반란의 영향은 매우 지대했다.

안사의 난의 영향

반란 전부터 궁핍하던 재정이 한층 더해졌다. 이것은 호구 수가 반란 전 890만 호에서 반란 직후에 290만 호로 격감한 데서 알 수 있다. 또 반란에 가담했던 절도사들이 거의 그대로 지역을 장악한 채 분권적인 행동을 취했다. 게다가 부병제는 완전히 무너져 모병제로 전환되었고, 균전제조용조제도 완전히 붕괴되었으므로 율령제 지배는 여기서 완전히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당조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이제 새로운 지배방식으로의 전환 없이는 더 이상 존속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외 3인, 사계절 출판사
  • <<중국통사>>, 범문란, 우종사
  •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신성곤, 윤혜영, 서해문집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