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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년 왕박의 봉기로부터 628년 마지막 민란의 영수 양사도(梁師都)가 새로 일어난 당왕조에 의해 진압되어 전국이 다시 통일될 때까지 18년 동안 무력민란과 궁정쿠데타는 무려 136번이나 일어났다. 국내 도처에서 일어나는 반란 속에서 각기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였던 [[이연]](李淵)은 아버지 이병(李昞)의 작위를 이어 당국공이 된 인물이다. 태원 유수를 맡고 있던 이연은 병력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 남하하여 장안(섬서성 서안)을 공격한 다음 양광의 손자 양유(楊侑)를 황제로 세우고 양광을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했다. 이어서 618년 우문화급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양광을 목졸라 죽인 다음 양광의 조카 [[양호]](陽皓)를 앞세워 북진해 낙양으로 가려했으나 여의치 않자 양호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장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연도 양유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양광의 열다섯 살 난 손자 [[양동]](陽侗)이 낙양에서 즉위하여 수 왕조의 황제가 되어 이듬해인 619년까지 버텼다. 그러나 재상이었던 [[왕세충]]에 의해 양동은 죽임을 당하고 결국 수 왕조는 39년만에 멸망했다. | + | 611년 왕박의 봉기로부터 628년 마지막 민란의 영수 양사도(梁師都)가 새로 일어난 당왕조에 의해 진압되어 전국이 다시 통일될 때까지 18년 동안 무력민란과 궁정쿠데타는 무려 136번이나 일어났다. 국내 도처에서 일어나는 반란 속에서 각기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였던 [[당 고조|이연]](李淵)은 아버지 이병(李昞)의 작위를 이어 당국공이 된 인물이다. 태원 유수를 맡고 있던 이연은 병력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 남하하여 장안(섬서성 서안)을 공격한 다음 양광의 손자 양유(楊侑)를 황제로 세우고 양광을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했다. 이어서 618년 우문화급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양광을 목졸라 죽인 다음 양광의 조카 [[양호]](陽皓)를 앞세워 북진해 낙양으로 가려했으나 여의치 않자 양호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장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연도 양유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양광의 열다섯 살 난 손자 [[수 황태제|양동]](陽侗)이 낙양에서 즉위하여 수 왕조의 황제가 되어 이듬해인 619년까지 버텼다. 그러나 재상이었던 [[왕세충]]에 의해 양동은 죽임을 당하고 결국 수 왕조는 39년만에 멸망했다. |
2016년 5월 10일 (화) 19:08 판
수(隋, 581~619)는 동진(東晋)이 멸망한 뒤 2백여 년간의 계속된 분열과 남북조의 대립 끝에 천하 통일을 이뤄낸 통일국가이다. 수나라를 창건한 북주(北周)의 대귀족 출신 수 문제 양견(楊堅)은 단호한 개혁 조치를 취하여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함과 동시에 지방 행정의 간소화를 단행하였다. 이로써 문제의 선정이 실시된 지 20여년 만에 국가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하여 역사상 선정으로 일컬어지는 ‘개황의 치’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2대 황제였던 수 양제는 대규모 토목 공사(대운하건설, 동도건설)와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백성들의 반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혼란기를 거쳐 수나라는 결국 39년 만에 멸망하였고 당(唐)이 세워졌다.
수나라 건국
양견은 주정제(周靜帝)가 아직 어리다는 구실을 대고 황궁에 들어가 섭정을 통해 정사를 돕던 중 기회를 틈타 정권을 잡게 된다. 581년 2월, 양견은 주정제를 협박하여 황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수국공(隋國公)에서 스스로 수왕(隋王)이 된다. 양견은 사후 문제(文帝)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통일과정
양견은 북의 강대한 국력을 계승하여 순식간에 내부를 안정시키고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587년 양견은 남량제국의 마지막 황제 소종(蕭琮)을 불러 입조시켰다. 소종이 장안에 오자 바로 남량제국을 없애 남량은 건국 86년 만에 사라졌다. 이듬해인 588년에 양견은 진 제국에 총공격을 퍼부었다. 진 제국은 남북조시대를 통틀어 폭군이 없었던 유일한 정권이었지만 마지막 황제 진숙보(陳叔寶)는 유명한 혼군 가운데 하나였다. 588년에 양견은 둘째아들 양광(楊廣)을 원수로 삼고 재상(상서좌복야) 고경(高熲)을 원수부 비서장(장사長史)으로 삼아 52만 병력을 동원하여 진 제국을 향해 진군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이듬해 정월 진군은 흩어졌고 진의 수도 건강이 함락되어 근 4백 년 동안 이어오던 대분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역대 황제별 주요 사건
제호(帝號) | 이름 | 재위기간 | 주요사건 |
---|---|---|---|
문제 | 양견 | 581~604년 | 581년 주정제가 퇴위하고 양견이 즉위, 수나라가 건립됨 589년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 |
양제 | 양광 | 604~617년 | 604년 수양제가 수문제를 죽이고 황위에 오름 605년 대운하 건설 시작 611년 왕박 농민봉기 611~614년 수양제가 세번 고구려를 침략함 616년 와강군 봉기 617년 이연이 태원에서 군사를 일으켜 장안을 공략 |
공제 | 양유 | 618년 | 618년 수양제가 강도에서 시해되고 수나라가 멸망 |
수나라 멸망
611년 왕박의 봉기로부터 628년 마지막 민란의 영수 양사도(梁師都)가 새로 일어난 당왕조에 의해 진압되어 전국이 다시 통일될 때까지 18년 동안 무력민란과 궁정쿠데타는 무려 136번이나 일어났다. 국내 도처에서 일어나는 반란 속에서 각기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였던 이연(李淵)은 아버지 이병(李昞)의 작위를 이어 당국공이 된 인물이다. 태원 유수를 맡고 있던 이연은 병력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 남하하여 장안(섬서성 서안)을 공격한 다음 양광의 손자 양유(楊侑)를 황제로 세우고 양광을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했다. 이어서 618년 우문화급은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양광을 목졸라 죽인 다음 양광의 조카 양호(陽皓)를 앞세워 북진해 낙양으로 가려했으나 여의치 않자 양호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장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연도 양유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양광의 열다섯 살 난 손자 양동(陽侗)이 낙양에서 즉위하여 수 왕조의 황제가 되어 이듬해인 619년까지 버텼다. 그러나 재상이었던 왕세충에 의해 양동은 죽임을 당하고 결국 수 왕조는 39년만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