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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역사사.JPG

史는 고문에서 事와 글자의 형태가 동일하다. 갑골문은 찌르고 사냥하는 도구인 을 손에 쥐고 있는 모양으로 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은 상단에 작살이 있는 나무 막대 모양으로 사냥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고대에는 사냥을 본업(事)으로 삼았기 때문에 손으로 을 쥐는 행위가 일반적인 일(事)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事는 다시 , 吏, 使로 분화되었다. 事, 史, 吏, 使는 분명 동일한 유래를 가진 글자이다.

文化

史는 축문을 담는 용기, 곧 축고기를 나뭇가지에 매단 형태다. 『설문해자』의 해설에 따르면 이 글자는 ‘가운데를 집는다.’라는 뜻으로, 사관이 공정하게 서술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해석은 중국인의 역사 개념을 보여주는 매우 이치에 맞는 해석으로 여겨지지만 갑골문과 금문을 살펴보면 글자의 형태가 분명히 다르다. 史의 형태는 곧고 올바르다는 의미를 지닌 과는 다르다. '가운데'라는 관념은 글자의 형태로 그 내용을 표현하기 힘들다. 중앙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뜻하는 의 형태는 동그라미를 관통한 모습으로, 깃발을 의미한다. 갑골문 복사에는 中의 위아래에 깃발을 붙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史는 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부분이 축고기 형태로 되어있다.
복사(卜辭)에 보이는 史는 사제라고 부른 내제 즉 왕실 내부의 제사에 사용되었던 글자다. 史는 축사, 무사라고 불린 것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는 신관이었다. 그것이 기록관이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史는 원래 한정된 왕족만이 모여 지내는 왕실 내부의 제사였다. 무정시대에는 왕족 복사, 다자족 복사라고 불린 복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양식적인 면에서 일반적인 복사와는 달랐다. 즉, 史는 이들 왕족들이 자신들의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였다. 이 제사의 목적은 조상에게 비는 것이었기 때문에 복사에는 “고사를 해야하는가.”라고 점친 내용이 보인다. 즉, 告와 史는 서로 비슷한 제사였다. 글자 역시 告는 축고기를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형태이며, 史는 축고기를 손으로 받들고 있는 형태를 형상화한 글자이다. 史는 축문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신에게 기도해 무언가를 꾀한다는 뜻이다.[1]

주석

  1. 시라카와 시즈카, 윤철규 역,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2009, p.119